천정배 전 의원이 탈당과 출마의 변으로 ‘호남 정치의 복원’을 내세웠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관악을에 출마하는 정동영 전 의원은 겉으로는 진보 정치를 내세우지만, 암묵적으로는 호남 지역 정서에 따른 표를 기대하고 있다. 또, 국민모임 게시판이나 정동영, 천정배 지지 사이트에 들러보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탄핵!’ 외치던 잔민당 난닝구들 - 이 단어는 대다수 합리적인 호남 유권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고, 말 그대로 2003년 분당 시 민주당에 남아서 반 노무현의 길을 걸었던 소수의 호남 유권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 이 2015년에 환생하여 문재인 대표를 고꾸라트려서 새정련을 통째로 잡수시겠다, 점잖은 말로 야권 교체하겠다는 말쌈을 쉽게 접한다. 건성으로 생각하면, 제1야당의 정치에 실망한 호남 유권자들이 이런 호남 신당을 만들자는 말들에 솔깃하기 쉽다.
하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서 내년 총선에서 호남 기치를 내세운 신생 정당과 기존 새정련이 각각 후보를 낸다 치자. 만에 하나 호남 정치를 외치는 신생 정당이 일정 부분 먹혀들었을 때 그 호남 신당과 새정련이 호남 의석을 나누어 가질 것이다. 새정련이 앞서든, 신생 정당이 앞서든 호남 의석 대부분을 반 새누리당 정당이 가져간다.
그러나 이번 관악을 사례를 보면서 느끼겠지만, 수도권, 충청권, 제주에서는 야당 난립에 따른 표 분산으로 야당 의석이 전멸하기 쉽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야권이 분열되도록 온갖 여론 공작을 펼 것이다. 지금 4.29 재보궐 선거 후보 중에 방송 인터뷰에 제일 많이 불려 나가는 후보가 정동영이다. 박근혜가 장악한 어용 방송과 종편에서 정동영을 집중 부각시켜 주는 것은 이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관악을 선거 전략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참패하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왜소해지고 분열된 두 호남당과 호남을 제외한 전국을 석권한 공룡 새누리당으로 의회가 구성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 호남의 고립이 심화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고, 노동자, 서민의 권익이 더 위축되고, 이 땅에 불의가 판을 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다.
현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는 호남 유권자와 호남 지역 외의 개혁적 유권자가 합하는 ‘민주당’ 모델이 가장 이상적이다. 호남 유권자들과 호남 외의 개혁적 국민들이 따로 정당으로 쪼개지면,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참패할 수밖에 없다. 이래서 호남지역주의만 내세워 야권을 분열시키는 정치가 무서운 것이다. 양식 있는 정치인이라면 지역주의를 부르짖어서는 안 된다. 제1야당의 노선, 전략, 정당 활동의 미흡한 부분이 분당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하나의 당 안에서 치열한 투쟁과 협상을 통하여 조정해 나가야 한다.
정동영과 천정배는 지역주의에 기대어 지역 정치의 맹주 자리나 탐하며 무슨 진보를 말하고, 무슨 호남 정치를 부르짖는가? 겉으로 아무리 그럴 싸하게 명분으로 치장하더라도, 결국에는 야권 분열을 통해 새누리당에 절대 의석을 갖다 바쳐서 호남 고립을 심화시키는 ‘호남 배반’의 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호남의 양식 있는 유권자부터 지역주의로 엄청난 불장난을 저지르려는 정동영과 천정배에게 엄하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엄한 회초리를 들어 두 분열주의 정치인을 낙선시키는 것만이 그나마 제1야당 새정련을 중심으로 한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고, 영남 패권주의 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된다. 새정련은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정치인을 보유하고, 전국적 지지 기반을 가진 정당이이서 그렇다. 만에 하나 정동영, 천정배가 대권 욕심이 있다면, 새정련으로 들어와서 정정당당히 대선후보 경쟁을 벌이는 것이 온당하다. 호남지역주의를 외치는 천정배 식의 호남 자민련 창당으로는 정권 교체는 고사하고 호남 고립만 자초한다.
ps. 오늘 선거운동 마지막 날이라 조용히 지낼까 맘 먹었는데, 한겨레 신문 곽병찬 대기자가 쓴 '재보선 참사를 기억하자' 라는 칼럼을 접하고, 다시 한번 제 주장을 펼 용기가 나서 재게시하게 되었습니다.
곽병찬 대기자의 칼럼을 보실 분은
언론인이든, 일반 유권자이든 간에 자기 자신, 자기 회사, 자기 지역, 자기가 지지하는 정파의 이익보다는 나라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즉 대의를 위해 옳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런 용기를 한겨레 신문의 곽병찬 대기자에게서 발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