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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cience_58770
    작성자 : 유키니온
    추천 : 0
    조회수 : 1661
    IP : 122.45.***.229
    댓글 : 20개
    등록시간 : 2016/04/28 15:17:29
    http://todayhumor.com/?science_58770 모바일
    과학과 기독교 신학의 관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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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럽게 현대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 써봅니다.

    밑에 글은 일단 존 폴킹혼의 '과학으로 신학하기'의 책의 2장 내용을 수업시간에 발제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최신의 신학에서 다뤄지는 내용이고, 과학과 신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최신적인 토론의 내용입니다.

    신학자 그룹중에 과학자로 생을 보내다가 늦게 신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람으로는 존 폴킹혼, 테디 피터스, 이안바버, 아서피콕등이 있습니다.

    신학이 진리다. 과학이 진리다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에게 배울 점은 무엇이고, 도움을 줄수 있는 부분을 알아보는 내용입니다.

    신학적인 내용이 다소 있긴하지만 어렵지 않는 글이니, 올려봅니다.

    책의 저자인 존 폴킹혼은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 교수 였습니다.

    기존의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벗고 보시면 보시기 편하실 겁니다.


    이글을 쓰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과학게에 더 이상 쓸데없는 기독교글이 안올라오길 바라는 면도 있습니다.







    과학으로 신학하기 2장 담론

     

    들어가는 말

    2장에서는 20세기 과학 발전의 결과로 변화한 과학 담론의 방법과 이것이 과학으로 신학하기에게 함의하는 바를 논한다. 이전에는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 왔던 것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물리학자들은 쿼크와 같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포함하는 물리 세계의 실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에 대한 타당한 근거로 이해 가능함(intelligibility)”를 내세운다. 불확정성을 따르는 양자적 존재들은 우리에게 보편적인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물리세계의 이러한 성격은 어떤 모양새인지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합리적인가?”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것에 열려 있으면서 주어지는 현실적 해답을 지지할 증거를 요구하는 질문인 당신으로 하여금 그러하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학적 통찰은 우리 신학자들에게 자기 분야를 사유하는데 도움을 준다.

    2장에서는 두 가지 담론에 대해 그린다. 첫째는 과학의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방법론의 변화가 과학과 신학의 관계 속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과학과 신학의 충분히 검토된 이유 있는 믿음이라는 공통점 과 그 외의 차이점에서 나오는 교훈이 신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둘째는 윤리적 쟁점에 관한 담론이다. 이는 가치에 관한 문제로부터 공식적으로 거리두기를 한 과학의 윤리적 문제를 진술하는데 더 큰 시야를 확보할 필요성에서 신학의 필요성을 대두한다.

     

     

    첫 번째 담론 : 과학의 변화

    초기의 물리학자들은 이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상식적인 생각과 그것을 밀접하게 연관된 것을 수학적으로 정말하게 정립하는 접근 방식에 의존했다.(59) 아이작 뉴턴과 그 후계자들이 묘사했던 분명하고 질서 잡힌 세계는 세속의 경험 속에서 지각된 성격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상대성이론 및 양자이론의 발견과 함께 급격하게 변했다. 유전학자 홀데인은 자신의 동료 물리학자들이 일어낸 일을 비평하면서 우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기묘할 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기묘한 것은 아닌가?”(60)라고 이야기 한다.

    상대성이론은 모든 관찰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시간 경험을 주장하는, 뉴턴의 가정을 폐지했다.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사고방식의 변혁에 집중하게 하였다. 이 변혁은 포갬 원리(superposition principle)라는 중요한 양자 가정이 기인한다. 이 기초적인 양자 개념은 상식적으로 결코 함께 섞일 수 없는 가능성들의 결합을 용인한다. 말하자면 전자(轉字)는 특정한 위치, 여기에 위치한 상태 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상태에서는 어딘가 다른 곳, 거기에 있을 수도 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기 힘든 이런 상태들의 존재는 양자 세계가 불분명하고 상상할 수 없는 성격이 있다는 사실을 즉각 가리킨다. 양자 세계는 일련의 과정들이 필연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개연적인 결과의 세계이다.(61) 이러한 포갬 원리로부터 양자 담론의 나머지 세 특성들이 유도된다. 거기에 함축된 불분명함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더욱 명확하게 표현될 수 있음이 발견되었다. 고전물리학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모두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동시에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에서는 위치나 운동량 중 하나는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이 둘을 동시에 측정할 수는 없다.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게 된다. 양자물리학에서의 인식적 접근은 고전물리학에서 유효했던 것의 절반까지만 도달할 수 있다. 양자세계에 대한 모든 사고방식은 지식의 한계에 순응해야 한다. 양자세계에서는 뉴턴의 명쾌함을 요구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모두 실패하게 된다.(62)

    이러한 물리학의 결과는 세 가지 교훈을 전한다. 첫째 교훈은 일반적으로 적용가능한 철학적 교훈을 제공한다. 모든 존재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식론은 없다. 모든 존재는 오직 실재적이고 개별적인 본성을 따르는 방식으로만 알려질 수 있다. 다른 존재들은 다른 방식으로 알려질 것이다. 토마스 로런스는 신이 어떻게 알려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이 실재적으로 알려지는 방식을 통해서만 결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과학의 맥락에서 수행되는 신학은 틀림없이 이 금언을 따라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결과는 일상세계에서 작동하는 논리와 비교할 때 양자 세계는 전혀 다른 논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일상세계는 배중률을 기초로 하지만 양자세계에서는 A(여기)A아님(저기)의 서로 다른 포갬에 상응하는 무한한 영역에 걸친 중간적인 것들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양자논리라고 부를 수 있는 훨씬 기묘한 형태의 논리가 이 세계에서 작동한다.

    세 번째 결과는 양자 물리학의 내재적인 불확정성이 존재들로 하여함 다른 환경에서 상당히 다른 행동을 하게 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빛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가진다. 고전물리학에서는 파동과 입자는 서로 다른 성질이기에 공존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자마당이론은 어떻게 파동-알갱이 이중성이 정합적으로 가능한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를 제공한다.(64)

    양자적 실체의 낯설고 파악하기 어려운 본성을 이것이 실재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가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야기했다. 실증주의자들은 양자적 실체는 이론적 상상이 만들어 낸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근사하게 정확한 계산을 해내기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서 존재론적으로 진지하게 취급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상당수 물리학자들은 이 생각에 단호하게 저항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물리 세계의 연구를 통해 배운 것을 실재론적 관점에서 본다. 만일 과학자들의 발견이 우주의 실제 본성을 여러 국면에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순수과학은 대부분의 동기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광자와 전자가 존재한다고 믿어야 비로소 화학적 사실에서 초전도체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찰되는 수많은 현상들의 깊은 의미를 알 수 있다. 바로 이 이유로 우리는 이 현상들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신학은 보이지 않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믿음을 옹호하기 위해 변명거리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과학에 빚을 지게 된 셈이다. 존재론의 열쇠로서 이해 가능함이라는 기준을 가정한 경우는 버나드 로너간의 토마스주의적 사고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그는 신이 이해의 제한 없는 행위’, 즉 그 존재와 본성이 창조된 실재의 성격을 설명해 줄 열쇠가 되는 일자(the one)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있음의 개념은 곧 이해 가능한 전체 범위에 대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66)

    그렇기에 과학자들의 취하는 인식론적 입장은 비판적 실재론이다. ‘비판적은 물리적 실재가 부분적으로 베일을 가려 있고 간접적으로 조우하는 경우가 번번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과학자들은, 사물들의 참된 본성을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겨진 채 사물들의 외양만 어렴풋이 나타나는 칸트의 안개 속에서 자신들이 길을 잃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에겐 인식론(자연에 대한 지식)이 존재론(사물들의 실제 본성)으로 인도하는 믿을 만한 안내자이다.(67)

    우리는 과학의 맥락 속에서 수행되는 신학이 양자물리학의 유비로부터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우리가 양자 물리학으로부터 넘겨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예기치 못한 것일지라도 실제로 경험된 실재의 성격과 조응하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 양태를 채택하도록 하는 합리적인 격려뿐이다. 일상적 경험과 상식적 기대는 모든 형태의 합리적 담론들이 거기에 꼭 들어맞아야 하는 프로쿠스테스의 침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사고 형식은 숙고 대상의 실제 본성에 순응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유한한 표현 능력을 넘어서는 무한한 신의 실재와 만남에는 환원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는 부정신학의 주장들 또한 적절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의 기준에서 우스워 보이거나 합리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도 인간 탐구의 모든 영역에서 잘 선별된 경험들은 최대한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68)

     

    첫 번째 담론 : 이유 있는 믿음

    양자마당이론이 발견됨으로써 파동-입자 이중성이라는 역설이 해소되기 25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아무리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경험일지라도 선택의 여지없이 이 현상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지점은 신학과 유사하다.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역설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일관한 조화를 제공하지 못한 채, 부활한 그리스도의 대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간의 범주와 신의 범주 모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 팔꿈치로 밀어내서 과학적 이해가 새로운 통차로 나아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학적 이해도 신적인 실재와 만남이 밀쳐 내서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게 된다. (69)

    물리세계의 놀라운 성격 대문에 과학은 종종 흥분하게 된다. 다음 실험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예측 불허하다. 이 사실은 과학자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질문이 그것이 합리적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이 인간의 섣부른 예측에 순응하기를 번번이 거부한 결과, 새로운 제안이 대하여 과학자들이 묻는 자연스러운 질문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러하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가 되었다. 이러한 형식의 질문은 받아들일 수 있는 대답의 형식을 미리 제한하지 않는 편견 없는 질문이면서도, 제안된 이해가 무엇이든 증거가 주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엄중한 질문이기도 하다. 신학이 과학의 맥락에서 설득력 있고 성공적으로 수행되려면 이러한 질문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식의 접근은 고전적인 방식인 위로부터 아래로 사고하기와는 대조된다. 위로부터 논증 방식은 가정된 일반적 원리들에서 출발하여 고려되는 특별한 문제들을 향해 내려가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듯이 제시된 토대적 개념들이 애초에 가정되었던 분명함과 확실함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상당히 자주 망상이었음을 밝혀졌다. 더 겸손하게 접근해 가는 아래로부터의 논증은 전전을 이루기에 더 좋은 방법이다. 위로부터의 논증을 통해서 양자이론을 발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리학자들은 포갬 원리라는 반직관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위해서는 저항할 수 없게 그 방향으로 밀어 대는 자연이 필요했다.(71) 마찬가지로, 역사 내 신의 게시 행위들은 증언하는 성서를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노력은 교회로 하여금 삼위일체와 성육신을 떠올리도록 몰아냈다. 합리성 본질은 사유를 사유되는 대상의 본성과 일치시키고자 노력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다른 영역에서 실재와 조우할 경우에는 합리적인 표현의 형태도 명백하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72)

    지금까지의 변함없는 저자의 결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잘 동기부여 되고 신학적으로 정합적인 믿음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실 나의 기독교 신앙과 이해가 이러한 믿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73) 이러한 합리적 담론은 과학의 맥락에서 신학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데 필수적이다. 특히 신학은 역사적 증언의 신뢰성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성서는 신이 구술한 오류 없는 교과서인 양 취급되어서는 안 되며, 이스라엘 역사의 전개 과정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독특한 현상을 통해 형성된 신의 계시 행위를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73)

    과학자들이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치고 이미 해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가 성서적 증거를 세심하게 평가함으로써 복음의 편견 없는 사실적 보고인 것을 아니라 훨씬 더 정교한 무엇인가라는 점을 쉽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해석하여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특정한 종교적 확신을 심어 주려고 했다. 그들은 시간을 초월한 진리를 지시하는 해석을 제공할 분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복음은 완전히 신화적 이야기일 뿐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았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증거가 되는 토대들을 드러내고 평가하는 도전을 환영해야 한다. 성육신의 종교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신화가 단지 감동을 주는 상징적 이야기가 아니라 실현된 신화라는 주장에 기초한다. 이점은 신학이 질문 많은 과학의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함을 의미한다. 신학적 이해에 이렇듯 증거에 기초해서 접근하는 일은 과학적 추론과 명백한 사촌 관계에 있다.(74)

    두 분야 모두 증거에 호소하지만 증거의 성격 현저하게 다르다. 과학은 가능하다면 언제든 원하는 대로 되풀이할 수 있는 상황들을 탐구하면서 일반적이고 반복 가능한 과정들을 다룬다. 과학은 이 능력을 실험이라는 위대한 비밀 병기로써 구현하며, 그리하여 성공적인 실험이 지닌 호소력으로 언제든 강력한 확신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에서조차도 이런 반복의 힘이 완전히 보편적인 참은 아니다. 물리학적 우주론과 진화생물학등 역사 관찰 과학들은 연구를 위한 특별한 상황을 원하는 대로 고안하는 과학 일반의 능력이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어졌으며, 사용할 수 있는 단편적인 증거에 기초해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직접적인 인간의 조작을 통해 원하는 대로 더 많은 증거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75) 관찰과학에서의 이해의 진보는, 과학이 운 좋게 부분적인 지식을 얻게 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최상의 설명을 추론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만 한다.(76) 과학과 다른 형태의 인간의 경험에서는 대부분 인격적 요소가 제한 없는 반복 가능성을 제거해 버린다. 신이라는 초인격적인 존재와의 만남은 그 성격상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반복된 효과를 유발하려고 신적인 것을 조작하려는 어떤 시도도 단지 주술을 부리려는 부당한 오류를 저지르는 일일 뿐이다. 기독교 신학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살림, 죽임-죽음, 부활에 얽힌 독특하고 중요한 사건들의 중언에 비판적으로 의존한다. 물론 이를 통해 전달되는 통찰은 믿는 이의 개인적 경험과 기독교 공동체의 통합적 경험 속에서 상관관계를 찬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반대로, 기독교 이해는 기초적인 계시 사건들의 관점에서 주어진, 그리고 이 계시 사건들에 대한 교회 공동체 내의 판단에 의해서 주어진 평가를 따르는 독실한 개인들이 경험을 자신의 감정에 순수하게 주관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전달된다.(76)

    신학에서 독특성이 갖는 불가피한 역할은 과학자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도 사람인자라 무한한 반복에 열려 있는 경험과 이해만이 참된 중요성을 갖는다는 전제에 기초해서 사는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할지에 대해 반성할 것이다. 이간의 삶을 사는 누구라도 인격적 만남에 내재한 모호성과 선명한 독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77)

    사람들이 이따금 과학은 사실을 다루고 신학은 단지 의견을 다룬다고 주장함으로써 과학 담론과 신학 담론 사이에 선을 그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오류가 있다. 앞서 살펴봤듯 해석이 개입되지 않은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마이클 폴라니는 과학이 필연적으로 인격적 활동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학적 연구는 실험적 해석(원치 않는 배경사건들의 거짓 효과를 성공적으로 배제하는 일등의 해석)과 이론적 평가(성공적인 이론들을 실험과 일치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실험적 발견들을 있는 그대로 읽지 않는다. 발견은 또한 창조적인 상상력 훈련을 필요로 한다)에 대한 암묵적 판단 기술을 훈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78) 과학은 개정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의 성취가 아니라 우리가 합리적으로 따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통찰들에 도달한 경우를 맥락으로 한다. 절대적으로 압도적인 논증은 우리 수중에 없다. 이성은, 과학에서 건 신학에서건 할 것 없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명을 확보하는 일과 같은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잘 동기부여 된 믿음을 추구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은 인식론적 겸손을 일으키는 깨달음을 준다. 그러나 이것이 인식론적 마비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인격적 지식은 단지 어느 정도의 지적 헌신과 대담성을 요구할 뿐이다. 물론 신학 또한 이해를 추구하면서 즉각적으로 겸손하고 대담해야 한다는 이 요구를 동일하게 공유한다. 신학이 자기 자신의 탐구 과정에서 이유 있는 믿음에 호소하려 한다는 사실은, 신학이 그저 공허한 의견들만 팔고 있다는 주장이 오류임을 보여준다. 신학은 아래로부터 위로 사고하기는 어떤 지적 도전의 가능성도 뛰어넘는 신앙주의적 확실을 주장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합리적 정당성에 도달하고자 애쓰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자들은 참으로(이유 있는) 신앙으로서 살지 (확실한) 전망으로 살지 않는다.(80)

    폴라니의 저술들에게서 중요한 주제중 하나는 과학에 대한 믿음에 헌신할 필요성이다. 과학적 담론은 공시적이다. 과학적 지식은 선형적으로 축적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회의하는 그런 무자비한 방법은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진리 탐구를 추구하려면 기꺼이 과거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개념은 변하며 언젠가 수정이 필요해 진다. 그러나 아무리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대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속성의 끈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아인슈타인 이후에도 뉴턴이 완전히 틀렸다고 여겨지지 않았고, 다만 그의 개념들이 제한적으로만 타당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고전역학만으로도 화성에 탐사 위성을 충분히 보낼 수 있다. 과학자들이 대응원리를 통해 고전물리학을 복권 시킨 것을 주목해야 한다.(82)

    신학은 더 나은 통찰과 이해를 통한 발전과 수정을 개방할 필요성이 있다. 니케아 공의회의 삼위일체 교리나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의된 그리스도의 두 본성 이론이나 그 어느 것도 신약성서에서는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여기서 통찰해야 할 관점은 교회의 경험과 일치해 온 사고를 알리는 것이지 사고가 취해야 할 절대적으로 최종적인 형태에 대해서 세밀한 진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심오한 주제들을 탐구하는 일일 수세기에 걸쳐 이어져 내려왔다. 어떤 이들은 교리의 발전이 성령의 인도 하에 일어난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신학의 주제가 안고 있는 어려움으로 인해 신학의 사고방식의 변화는 과학보다 느리다.(83) 그렇다고 신학 분야가 어느 모로 보아도 수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과거의 생각들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신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며, 그것이 과학의 맥락 속에서 수행될 때는 특히나 분명하게 수정과 변화에 열려져 있어야 함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본유적으로 통시적인 주제를 가진다. 교리적 발전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 관계를 지속할 때 가장 잘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신학 역시 자신만의 대응 원리를 필요로 한다. 현재를 사는 신학자들이 더 이전 세기를 살았던 신학자들보다 우월하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84)

    과학적 맥락에서 신학을 하는 것 유익하다. 이것은 이들 간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 간의 표면적인 차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실재에 대한 개방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으로, 신학과 과학은 지적 사촌관계이다. 신학과 과학은 이유 있는 믿음을 추구하여 진리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단짝인 셈이다.(85)

     

    두 번째 담론 : 윤리적 쟁점

    과학의 맥락에서 중요하고 어려운 윤리적 쟁점들은 과학의 진보를 지속적으로 유효하게 하는 기술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분별을 필요로 한다. 과학이 윤리적 쟁점을 다루게 된다면 그 것은 다른 방면의 과학적 기회를 포기하게 만든다. 또한 과학 자체는 윤리적 판단을 행동에 옮기는 데 필요한 통찰을 제공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과학자로서 자연 과정의 일반적 성격에 대한 사실적 정보를 제공한다.(86) 순수한 과학적 통찰들은 윤리적인 결정에 제한적인 역할만을 한다.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의 원천을 사용하는 문제들에 대해 사회가 취하는 태도에 과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만 관심을 기울인다.(87) 또한 과학적 평가는 그럴싸한 결과들에 대한 유용한 분석을 제공할 수 있으나, 새로운 과정에 대한 안정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89)

    순수한 과학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판단 행위는 신학적인 통찰과 판단에 의지해야 할 수 밖에 없다. 요즘 태아 연구에 대한 윤리적 타당성에 논쟁이 뜨겁다. 의료 윤리학자들 사이에서 합의 된 것은 인간 인격은 언제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고, 그러기에 환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의료 과학자들이 과학자로서 할 수 없는 말은, 초기 태아가 정말로 이미 충분한 인간 인격인지, 그래서 그에 뒤따를 절대적인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는 과학자들이 대답할 수 없는 과학 분야의 바깥에 있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오직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통찰과 판단 활동에 의지해야 답할 수 있는 문제이다.(90)

    과학의 맥락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긴 해도 그 해결책을 찾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과학은 그러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지적 풍토에 일반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다. 이것은 세계가 매우 경이적이고 질서 정연하고 풍부하다는 것에 대한 과학의 설명에 기인한다. 과학에서는 가치라는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본유의 가치라는 개념을 할당하는 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세계를 그려 낸다. 과학의 맥락에서 사용하기 적합한 윤리적 선전 문구가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자연을 위한 선택이라는, 생태학적 존중 개념을 표현하는 문구일 것이다.(91)

    과학의 맥락 속에서 신학은 과학의 진보가 제공하는 기술적 가능성들이 계속 증가하며 확장함에 따라 일어나는 수많은 윤리적 쟁점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윤리적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신학의 원천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93)

     

    나가는 말

    발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문구는 신학자들은 참으로 이유 있는 신앙으로 살지 확실한 전망으로 살지 않는다.” 현대에서 목회자들은 궁극적인 답변을 쉽게 사용한다. 그리고 그 것에 대해서 결코 의문이나 의심을 품지 못하도록 교인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런 목회 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결코 바뀌지 않는 절대적 진리라고 아주 쉽게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결코 그것에 대한 이유 있는 근거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라는 껍질을 입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조차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성이 가지는 한계를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신학도가 해야 할 것은 보다 더 이유 있는 신앙을 추구하는 일이다. 특별한 경험을 보다 특별하게 하고, 그러면서도 보다 보편적으로 신앙을 설명하는 것, 이것은 통시적인 주제를 가지고 현대사회에 맞는 동시적 주제로 만드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과학과 신학을 접목할 때 그것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담론 속에서 그 방법론을 배우고, 과학이 답변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윤리적 쟁점에 대해 보다 큰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올바른 신학과 과학의 관계 일 것이다. 발제를 준비하면서 현대 신학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관점을 많이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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