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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는 100%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야기로 각색없이 구성하였습니다.>
중종 때는 왜적의 침입에 상당히 민감한 시기였습니다.
그 유명한 삼포왜란도 중종 5년에 일어났으며, 그 이후로도 왜선 한두 척이
조선 남해안 근처에서 서성이며 조정의 신경을 긁는 경우가 잦았죠.
그래서인지 중종 시기는 이 왜구에 대한 방비에 아주 많은 논의가 있었고
실제로 꽤나 열심히 대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중종 18년 5월 27일, 황해도 관찰사 소세양이 치계를 하나 올립니다.
그 내용을 대략 보면,
‘왜선 1척이 풍천에 정박하여 8~9명이 육지로 올라와 촌가에서 밥을 빌어먹고 다녀서,
부사 이계장과 사포 만호 허모와 함께 달려가 그 중 1명을 사로잡으니,
나머지 7~8명이 모두 칼을 뽑아 대항하다가 바다로 들어가 도망갔다‘는 보고였습니다.
이 일은 조정에 짐짓 충격을 주었는데 대부분의 왜적들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남해안에서 자주 출몰하였고 그 때문에 조정에선 남해의 방비는 많이 신경을 썼으나
서해안, 그것도 충청도도 아닌 황해도에 왜구가 출몰했다는 건 그들의 행동범위가
아주 넓어졌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작년엔 회령포에 왜구가 출몰했을 때
왜구를 단 한 명도 죽이거나 사로잡지 못한데다
조선 수군이 허둥지둥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망신을 당한지라 조정에선 바짝 긴장한 상태가 되었죠.
때문에 비록 선박 한 척이 출몰한 것임에도 중종은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도망간 배가 연해로 들어갔다면 분명히 충청도나 전라도 등을 경유할 것이고
연해의 여러 진에 조치하여 혹시 모를 변고에 대비하라는 서신을 보내게 합니다.
또 사로잡은 왜인은 서울로 압송하게 하며,
병조(현재의 국방부격인 관청)에 이 모든 사안을 보고하게 하지요.
다음 날 이어 올라온 황해도 관찰사 소세양의 보고에
사로잡은 왜인에 대한 심문 내용이 대략 적혀있는데 그 내용인 즉,
생포된 왜인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필담으로 심문을 했는데
‘배가 몇 척이며 사람은 몇 명이 여기에 왔느냐.’ 하고 물으니
왜인이 대답하기를,
‘배 1척은 50명이 탔고, 또 한 척은 40명이 탔으며 1척은 26명이 탔다.’
하였고,
또 다시 묻기를 ‘어디서 왔느냐.’ 하고 지도를 보여주니
그는 손으로 평안도 덕도를 가리켰다고 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왜적의 활동 범위가 평안도까지 이르렀다니... 예삿일이 아니었지요.
이에 삼정승인 남곤, 이유청, 권균과 육조가 모두 모여 의논합니다.
대신들의 의견은,
‘지난해에도 왜구들이 회령포를 침범하였으나,
회령포는 대마도와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인데도 침략의 형태가
그렇게 심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남쪽 지방에는 병사, 수사가 있어서 항시 방비를 엄중히 하고 있으므로,
비록 조그마한 변란쯤 있다하더라도 특별히 장수를 파견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황해도는 본디 방비의 계책이 없는데다 지금 왜변이야말로 너무 뜻밖의 일이어서
인심이 요동하니 후일의 걱정거리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변방의 일은 비변사(병조 내에서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가 의당 참가하여 의논해야하니,
그들과 의논하여 방비에 대한 대책을 세움이 옳다 여겨집니다.‘
이에 비변사로부터 구체적인 방비와 왜적 소탕 대책이 이루어지는데 그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황해도 풍천의 일로 대책 회의가 이루어지고 3일 후,
또 다른 소식이 전라도 수군 절도사 정윤겸으로부터 올라옵니다.
‘5월 24일 남포도 관한일 초도에 왜선 1척이 정박하고 있다는 보고에
병선 10척을 정돈하여 출발하였고
25일 대묵도 서변에 왜선이 정박한 걸 발견하고
1백보 남짓한 거리까지 추격하여 전투를 벌였습니다.
(자세한 전투 내용은 생략하고)
왜적 20명이 배에서 뛰어나와 물로 뛰어들어 헤엄쳐 가므로 모두 쏘아 잡았고,
또 16명은 화살을 맞고 익사하였으며,
배 안에도 화살을 맞고 불에 타 죽은 자가 꽤 있었습니다.
혹시나 배 갑판 아래 살아 숨어있는 자가 있을까 염려되어
배가 본판만 남도록 모조리 타버리기를 기다렸다가 그날 밤에야 회군하였습니다.
이에 왜인의 머리 20급과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활과 칼 등을 함께 봉하여 올려 보냅니다.‘
시기를 보니 풍천에서 난리친 그 왜적은 아닌듯 보이나
사로잡은 왜인이 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들려온 갑작스런 승전보였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회령포에서의 수치를 씻기에 충분한 승전보였지만
중종은 마냥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왜선이 나타난 시기가 풍천에서와 비슷한 것이 그들과 관련된 왜선일 수 있으며,
왜적이 침입이 빈번해지는 게 삼포왜란 이후 축소한 교역량을 늘리기 위해 화친을 유도하려는 수작으로 해석한 것이지요.
또한, 그들의 상당수가 타 죽었기 때문에
적이 원망하는 마음에 더욱 분탕질을 칠 수 있다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고요.
이에 전라 수군 절도사 정윤겸을 칭찬하면서도,
승전으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유념하라고 강조하면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왜변에 대비하여 방비를 엄격히 하도록 하고
각 지역의 해안가 조업활동까지 금지하도록 합니다.
이에 남곤이 아뢰기를,
왕명이 옳기는 하나 해변에 사는 백성들은 해산물을 채취하여 생활을 영위하는데,
왜변이 아직 급하지 않음에도 조업을 완전 금지 시키면
빈민의 생계가 막연해지니 일단 황해도에 일어난 왜변에 관한 진위를 제대로 파악하고
다시 조치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에 중종도 수긍하고 그리하게 합니다.
6월 4일 드디어 황해도 풍천에서 사로잡힌 왜인 중림(中林)이 서울로 도착합니다.
다음날 그에 관한 진술 내용을 남곤이 자신의 의견과 함께 올립니다.
‘포로된 왜인 중림의 진술서에
’중국에 조공을 위해 가다가 사나운 바람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하니,
그놈의 간교한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대답한 내용이 모두 온순하고 크게 어긋난 데가 없습니다.
마침 일본 사신이 서울에 와 있으니 도망간 왜인들에게
‘지금 너희 나라 사신이 우리나라에 와 있으니
만일 너희들이 정말로 조공차 간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너희 나라 사신과
함께 돌아가야 할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항복하라.‘ 할 경우
저들이 정말 조공하러 간 사람이라면 반드시 순종할 것이고
이 일을 지금 서울에 있는 일본 사신에게 말하여 함께 돌아가도록 한다면 교린(交隣)하는 좋은 도리가 될 것입니다.‘
의외로 왜선이 왜적이 아닌 중국으로 조공을 간 조공선일 가능성이 높은 거였죠.
사실 처음 올라온 보고도 왜적이란 느낌보다는 조난자라는 느낌이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의견을 들은 중종은 남곤의 생각이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다만 걱정인 건 며칠 전 왜적으로 추정되는 일본 배를 불태우고 일본인을 전멸시켰는데,
만약 그 배가 중림의 일행 중 하나고 정말 그들이 조공차 간 사람들이라면
무고한 일본 조공선을 조선 군대가 박살낸 게 되어버린 것이죠.
여하튼 중종은
‘아뢴 바의 의도가 과연 온당하다. 왜노들은 교활하여 비록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으나,
그 진술의 대강을 살펴보니 조공차 가다가 표류된 자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금 전라도에 나타난 왜선의 경우 우리 국경을 범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명분 없이 그들을 섬멸하였으니 상황이 조금 난처해질듯 하나,
‘우리 국경을 범하려 했기에 그렇게 했다.’는 식으로 둘러댄다면 될 것이다.
만일 도망간 왜선이 우리 뜻을 믿고 항복하면 이유를 묻고 처리하되
비록 듣지 않고 그냥 가더라도 끝까지 추격하지는 말라고 황해도 관찰사와
경기도 및 하삼도에 유시하라.‘
하니 정원(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혹은 임금에게 보고하는 직책)이 반대하기를,
‘그들을 불러 타이르라는 뜻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만,
왜적인지의 여부를 확실히 모르는 이때 추포하지 말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겨집니다.
지금 왜적들이야 궁한 도적이나 다름없으니 비록 남쪽을 향해 간다 하더라도
어찌 국경을 침범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하여 우리 장수에게 그들을 제멋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고
추적하지 말게 한다면 저들은 우리의 깊은 뜻을 모르고 본국으로 돌아가서는
반드시 ‘조선의 국경을 지키는 군영은 방어가 해이하여 우리 배가 돌아올 적에
아무도 추적하지 않았다.‘ 할 것이니, 그럼 우리나라를 가벼이 보고 다른 뜻을 품을까 염려됩니다.
이는 국가 안보에 좋지 못할듯하니 각도(各道)에 하서하기를
‘황해도에 지금 나타난 왜선은 일본 사신이 중국에 조공차 가다가 표류된 선박인 듯하니,
의당 추포는 해야 하나 꼭 죽일 것까지는 없다.‘ 하는 게 옳다 여겨집니다.’
이에 삼정승도 동의하여
‘이미 방비를 튼튼히 하라고 각도에 유시했는데 갑자기 다시 추포하지 말라하면,
변방의 기강이 해이해질 뿐 아니라, 저들 역시 우리나라를 가벼이 여길 것이니
옳지 못한듯합니다. 지금 변방의 우리 장수들은 무사 안일에 젖어 방비에 대한 모든 일이 허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수들의 마음을 흐리는 전교를 내려선 안 됩니다.‘
하니 중종 역시 그 의견이 맞다 여겨 따릅니다.
조정의 의견이 결정된 후 사로잡지 못한 왜선을 설득하기 위해 중림에게 묻기를
‘네가 황해도에 있는 너의 동류에게 글을 써 보내서 항복해 오도록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하니 중림이
‘그렇게 하면 매우 좋겠습니다.’ 하며
그들을 설득하는 글을 중림이 친필로 작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화살에 매서 쏘거나 돌을 싸서 던져 전달하면 조선의 뜻을 알고 항복해올 거라는 계획인 거지요.
개인적으로 도대체 서해 바다에서 도망간 왜선을 어떻게 찾고 의견을 어떻게 전달할까 싶긴 하지만,
만약 성공만한다면 이보다 좋은 해법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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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시작과 결과를 완벽히 파악한 후 글을 썼는데
이번엔 대충 상황만 파악한 채 글을 써 내려가네요.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또 이야기의 스케일이 조정 내에서 투닥투닥하는 것과 달리 작지 않기에
얼마나 글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용두사미(사실 용두도 아니지만..-_-;)가 될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일단 써내려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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