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베이징(北京)에서 '한·중 경제발전 과정 비교'라는 주제로 본사 주최 중앙경제포럼이 열렸다. 통역 놓고 하는 국제행사라는 게 뻔한 터라서 그러려니 하고 구경 삼아 참석했었다. 그러나 웬걸. 꼬박 네시간 동안 시종일관 흥미진진했었다. 처음에는 양쪽 다 점잖게 나갔으나 이내 토론이 열기를 뿜기 시작했고, 이따금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었다.
이날 토론의 스타는 중국 측의 피성하오(皮聲浩) 중신(中信)국제연구소장이었다. 중국 입장에서 본 한국경제의 문제점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 그는 한국경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을 잘 모르지만"이라며 의례적인 겸손으로 말문을 열더니, '부자병' '민주정치병' 운운해 가면서 오늘의 한국경제를 조목조목 박살내는 게 아닌가.
그의 말을 요약하면 대충 이랬다. 한국 국민은 부자병에 걸려서 부자도 아닌 주제에 부자처럼 신용카드를 긁어대면서 흥청거리고 있는가 하면, 노동자 봉급은 더 잘사는 대만·싱가포르·홍콩보다도 높으니 어찌 나라경제가 잘되길 바라는가.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파업이 마음대로 횡행하는 것은 민주정치병에 걸린 탓이다. 역대 대통령이 쇠고랑을 차지 않나, 탄핵당하는 그런 정부가 어떻게 나라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나. 정부가 중소기업을 독려하는 것은 좋으나 경제를 끌고가는 대기업들을 너무 몰아세운다. 아무리 개방이 좋다 해도 국내 금융기관을 외국한테 그렇게 막 넘겨주면 국가적으로 골치아픈 일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느냐.
심지어 그는 서울의 낮 거리 풍경까지 시비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야 할 시간에 쓸데없이 길거리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경제가 열심히 돌아가겠느냐는 것이었다. 한국경제가 국제경쟁력의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한국경제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왕년의 각오와 다짐으로 돌아가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게 그의 처방전이었다.
피성하오 소장은 1988년부터 한국을 아홉번이나 다녀간 지한파(知韓派) 경제학자. 한국과 중국이 정식 수교하기 전부터 중국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마치 박정희·전두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대기업 관계자들이나 소위 '꼴보수' 학자들의 볼멘소리들을 그대로 대변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옳든 그르든 한국경제에 대한 그의 진단은 거침없고 확신에 차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의 말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그의 진단과 분석이 탁월했다든지,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런 비판들이 중국 쪽에서 노골적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 주목거리다. 표현은 안 했어도 '우리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발전하고 있는데, 별것도 아닌 변방 소국 주제에 뭐 그리 으스대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느냐'는 비아냥이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 운운하는 대목에 가서는 '한국의 살 길은 다시 왕년의 헝그리 정신으로 재무장하는 것'이라는 식의 무슨 정신교육 훈화처럼 들렸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중국한테 먹히고 마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최근까지도 한국은 중국에 훌륭한 선생이요, 좋은 성공모델이었다. 실제로 한국경제를 본받아 정책과 제도를 여러 분야에서 벤치마킹해 왔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배우던 학생이 가르쳐온 선생을 한심하게 여기며 걱정하는 형국이 돼버리지 않았나. 더구나 걱정해주는 내용이 국민의 정신자세가 글렀고, 나라를 운영하는 기본틀이 잘못됐다고 점잖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8년 만에 가본 베이징. 외견상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변화가 얼마나 격렬하게 진행돼 왔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몇몇 한국기업을 직접 찾아가 보니 그런 감회는 더했다. 명색이 경제기자라면서 8년 동안이나 베이징 땅을 밟은 일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또 다른 8년 후에 베이징을 방문한다면 도대체 무슨 변화를 실감하게 될 것인가. 두렵기만 하다.
이제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오히려 우릴 깔보는거냐?국민 의식 좋아하네.완전히 후진국 그 자체인 국민의 정신자세는 중국이 더 심할텐데?
카인(Cain):뉴트럴 블레이드의 주인공.순하고 선한 인물이었으나 어릴때부터 불행했던 시절의 경험에다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잇달아 배신당하면서 타인을 극도로 불신하게 됐고 오로지 복수만을 목표로 살아가게 됨.
죽을 뻔한 그를 제국의 여장군 레이즌이 거두어주었고 카인은 그녀에 의해 암살자로 키워졌다
레이즌은 그를 그저 자신의 도구처럼 이용했고 그 또한 나중에 복수를 이룬다음 레이즌에게 자신을 도구로 이용한 대가를 치루려고 마음먹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럴 명분이 생겼으며 그는 총 3명에게 복수하는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한명에겐 실패했으며 한명에겐 성공했다.마지막 목표 레이즌은 성기사들의 지도자 다르에게 기습을 당해 살해당했으며 카인은 죽어서도 그녀를 쫓아가 복수를 이루기 위해 자결한다
후치 네드발(Hooch Nedval):평범한 소년에서 나중에는 핸드레이크도 꿈쩍 못하게 할 정도로 성장한 인물.일행중에 독서가이면서도 동시에 독설가인 칼(Karl)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뛰어난 독설을 퍼붓기도 한다.
코윈(Corwin):앰버의 아홉 왕자중 한명이자 소설의 주인공.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이자 숙적 에릭과 싸우다 패해 유배당함.두번째는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벌였다가 또 패배.눈을 잃고 장님이 되어 지하감옥에 처넣어짐.5년 뒤 탈옥.
세번째 시도끝에 앰버를 장악함.왕좌를 차지하는 일만 남았으나 그럴 새도 없이 형제를 암살했다는 혐의와 적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다른 형제 제라드에게 두들겨 맞은 다음 살해 위협을 당한다.
앰버의 국왕이자 그들의 아버지인 오베론에게서 왕위를 이어받으라고 명을 받았으나 그는 그것을 거부했다.(심경에 변화가 있었다.)
모든 일의 원흉 브랜드를 저지하기 위해 다른 형제들과 협력했고 오베론이 맡긴 심판의 보석을 '혼돈'까지 가지고 가야하는 임무를 받았지만 도중에 브랜드에게 빼앗긴다.
우여곡절끝에 브랜드는 죽은줄만 알았던 형제 케인의 화살에 목이 뚫히면서 죽었고 코윈은 너무나 먼 거리를 여행했는데다 혼신의 힘을 다해 '패턴'을 만든 후유증으로 기운이 쇠진해 쓰러져버렸다.
블레이즈(Bleys):앰버의 아홉 왕자중 한명.코윈과 더불어 에릭에게 대항하다가 코윈과 동맹을 맺고 앰버로 쳐들어갔으나 난공불락의 콜버 산 등정중 추락해 생사불명됨.소설 후반부에 '혼돈'을 공격할때 휘하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 앰버군과 합류했다.
간달프(Gandalf):마법사.3시대 1000년경에 서역에서 배를 타고 나타났다고 한다.최종목적은 사우론을 쳐부수는것이었다.
이센가드에 정착한 사루만과는 달리 그는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았다.
3시대 2941년에 벌어진 다섯 군대 전투에서 서로 전쟁을 벌이려던 엘프,난쟁이,인간들을 결집시켜 스마우그의 보물을 노리고 쳐들어온 고블린 대군을 격파시켰다.(프로도의 양아버지 빌보 배긴스도 이 전쟁에 참가했다)
3시대 3019년에는 반지 원정대를 이끌었고 모리아에서 발록과 격전을 벌여 승리했다.같은 해에 반지 전쟁에서도 활약을 했고 마침내 사명을 다한 그는 서역으로 돌아갔다.
아라곤(Aragorn):남왕국 곤도르의 시조 이실두르의 후손.스트라이더,도론길 등등 많은 별명을 가졌다.브리에서 곤경에 처한 프로도 일행을 리벤델까지 이끌었으며 모리아에서 추락한 간달프를 대신해 반지 원정대를 이끌었다.헬름 협곡에서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으며 펠레노르 전투에서 패색이 짙은 로한-곤도르 연합군을 구원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반지 전쟁에서 승리한뒤 3시대 2000년 이후 천년간 비어있던 왕좌에 올랐으며 그의 치세에 곤도르는 번영을 구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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