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의 겨울은 추웠고
2년의 긴 군생활을 끝으로 난 전역할 수 있었다.
그리고 08년.
애매하게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군대에 갔던터라
08년의 상반기는 알바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택한 곳이 편의점.
집 근처라 출퇴근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고르게 됐는데
야간 시간대가 걸리기는 했지만
호프집 알바도 다년간 해봤으니 그냥 하기로 했다.
그러기를 4~5개월이 지나고
편의점 일이 익숙해질 무렵
그 사건이 있었다.
새벽의 편의점은 한가하다.
특히 2시~5시 까지는 거의 손님이 없는 편이다
그 날도 거리는 한적했고
손님도 띄엄띄엄 오는둥 마는둥 했다.
졸음도 오고 지루해지는 새벽 5시쯤
딸랑딸랑-
하는 손님의 입장소리가 들렸고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나는
소리에 반응하며 "어서오세요" 라는 인사와
손님 맞을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딸랑 거리는 소리는 있었는데
손님이 없었다.
아니, 안 보였다는게 맞을까
뭐지? 라는 생각을 잠시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훅 하며 뒷덜미를 잡아끌었고
거친 남자의 숨결과 함께
목 아래 차가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억세고 거친 손길이였고.
차가운 무언가는 칼날이였다.
식칼보다는 짧고
과도보다는 길었던 칼.
강도였다.
칼날이 아닌 칼등으로 목에 대고 있음에도
몸이 덜덜 떨리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강도가 끌고가는데로
반항조차 못하고 그대로 끌려갈 뿐이였다.
반항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새꺄
돈만빼고 간다.
강도는 편의점 창고에 날 밀어넣고
준비해온 밧줄로
내 두손을 묶었다.
손을 묶고는 바지 양쪽 주머니와
뒷주머니를 확인하며
핸드폰이 있는지 다른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고는
두 손을 뒤로 묶고 무릎꿇게 시키고는
창고에 있던 마른걸레로 내 입에 재갈 물리듯 물려놓았다.
그리고
창고 문을 닫고는 잠가버렸다.
... 무서웠다.
이대로 죽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칼에 찔리지 않았다는 거에
위안을 삼았다.
창고는 밖에서 잠그는 구조이기에
도망 칠 수도 없었고
도망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망가다가 잡히면?
칼로 찌르는거 아냐?
죽지는 말아야 하는데... 아직... 죽기 싫은데...
헤어진 옛 여친
군대 동기들
부모님
돈 떼먹고 아직 안 갚은 쌍늠
다음 주 만나기로 한 이사간 친구
별별 사람들이 다 생각이 났다.
내가 죽으면 슬퍼해주려나?
강도는 돈만 갖고 정말 가는건가?
얼굴을 봤으니 죽이는건 아닐까?
그때,
창고문이 다시 열리고 강도가 들어왔다.
야 저거 돈통에 얼마 없네
금고 어딨냐
돈 숨겨두는데 어딨어
편의점 포스(계산대)에는
많은 돈을 보관하고 있지 않는다
어느정도의 금액이 쌓이면
정산을 하는데 정산하고 난 금액은
창고 한쪽의 금고에 넣어두는 식으로
(제일 위에 저금통처럼 구멍이있는 금고)
계산대에는 계산에 필요한 소량의 금액만 있게끔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다.
창고의 금고는
사장말고는 비밀번호를 알 수 없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대로 얘기했다.
금고가 있기는 한데
사장만 비밀번호를 알아요...
거짓말하는거 아니냐며 칼로 찌를까봐
내 심장은 미칠듯이 뛰고 있었다.
그때 딸랑- 하며 손님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이런 씨발
강도는 창고를 나서며
계산대 쪽으로 향했고
손님에게 해코지 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내 우려와는 다르게
그 놈은 태연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 태연히 계산하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더 무서웠다.
냉철한 새끼, 담담한 강도 새끼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찌르는거 아닐까
몸이 떨렸다.
딸랑 하는 소리가 한번 더 들리고
손님이 나가나 싶었는데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나 보다.
그 순간이 내게 기회였다.
창고엔 아까까지 갖고놀던 내 핸드폰이 있었고 (강도가 오기전)
창고가 어두웠기에 물건이 있던 선반에 놓인
내 핸드폰은 발견하지 못했던 듯 싶었다.
다행히 선반이 높지는 않았는데
손이 뒤로 묶여있었기에
핸드폰을 집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치만 머리를 쓴다면?
머리로 핸드폰을 밀어 바닥에 떨어트리고
다행히 과자박스가 많았던 창고라
핸드폰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뒤로 묶인 손에 핸드폰을 쥐고는
아직 깨있을 사장에게
구조요청 문자를 보냈다.
차마 목소리가 들릴까봐
전화는 할 수가 없었다 ...
짧고 간단한 문자였다.
강도 !!!
라는.
그 두글자와 느낌표를 치는 10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
미치도록 무섭고 떨리고 불안하며 긴장됐다.
그리고 행여나 사장이 전화라도 할까봐
핸드폰 전원을 꺼두고
핸드폰은 과자박스 사이에 끼워두었다.
이 다음부터는 운에 맡길뿐이였다.
사장이 문자를 보고 신고를 하던가
강도가 돈을 강탈하고 나서던가
내가 찔리던가...
강도는 한두번 계산을 하더니
그게 익숙해졌는지
창고와 매장을 드나들며 돈이 될만한 것들을 찾는 와중에
손님이 오면 계산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줬다.
그러기를 5분정도가 지났을까.
난 어두운 창고에
두손이 묶인채 무릎꿇고 앉아서
멍하니 있을뿐이였고
간혹 들리는 딸랑- 소리와
손님들의 수고하세요- 소리가
아직 강도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 새끼 잡아!!
야 이 새끼야!!
@$^@$!@^&!~!!
!%!^$%^%&#!@!
등등의 소리가 들리고
뭔가 우당탕탕 하는 거친 소리가 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난 일어섰고 창고문에 귀를 가만히 대보니
매장은 조용했다.
뭔가 일이 있는게 분명했다.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손을 앞으로 당겨 묶인 줄을 이빨로 풀고
창고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설마 피가 튀고 누가 쓰러져있고
이런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였는데
매장엔 아무도 없었고
매장밖 파라솔과 의자가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
어둡고 적막하던 창고에 있다 나와서 그런지
매장의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왠지 거슬렸다
강도는 간건가?
용감한 시민들이 강도인걸 눈치채고 해치웠나?
경찰이 온건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살았다는 생각에 몸이 한번 더 떨리기 시작했다.
난... 안죽었다...! 살았어!!!
..
우당탕탕 소리의 정체는 경찰이였다.
다행히 사장은 내 문자를 봤고
(사장은 가게가 두개라 새벽에 일을 한다. 다른 가게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보니 전화기가 꺼져있기에
뭔가 일이 터졌구나 하는 생각에 발빠르게 경찰에 신고를 했더랜다.
그리고 출동한 경찰이
강도를 샤샤샥 체포한 것.
강도를 잡고 난 후 경찰은
내게 사건의 경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동행을 요구했고
사장과 통화 한 후
사장이 도착하고 난 뒤에야
경찰서에 가서 이것저것 진술을 할 수 있었다.
난 경찰서를 그때 처음 가봤다.
그것도 형사계에.
모든 진술이 끝나고
경찰이 경찰차로 편의점까지 배웅 해주었다.
난 이때 경찰차도 처음 타봤다 ㅋㅋ
사장은 밤새 고생이 많았다며
피곤할테니 얼른가서 자라고 얘기했고
난 그저 이따 밤에 뵈요
라는 말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니.
.....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무서웠던 그 새벽의 시간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목에 칼이 들어왔던 순간이며
거칠게 잡아끌던 손이며
창고에 가두고 손을 묶던 강도의 모습
그 목소리 등등이
하나둘씩 터져나오며 내 몸에 두려움을 주었다.
도무지 잠도 오지 않았고
뭔가 먹고싶지도 않았기에
냉장고에 들어있던
소주를 들이키고 난 후에
잠에 들 수 있었다.
그 날 오후
TV에 나갈거라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가
두세번 왔는데
엄마가 다 거절했다.
혹시 얼굴이 나오면
뭔가 해코지가 있기라도 할까봐였다.
엄마는 아들이 강도를 만났다는걸
그 인터뷰 요청 전화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내가 말도 안하고 술먹고 잤으니
그런 일이 있었는줄 전혀 몰랐더랜다.
그런 아들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약국에서 우황청심환도 두개 사오셨다.
사장은 출근해도 괜찮겠냐며
저녁쯤 전화가 왔고
난 문제없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했다.
강도를 만나고 출근한 그 다음날, 사장은
강도가 혹시 또 들면 벨을 누르라며
비상벨을 설치했고
강도와 맞서싸우라며 3단봉도 준비해 놓았다.
..실제로 그때와 같이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이면
둘 다 생각이나 날지 모르겠다.
그 사건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무서웠고
잊기 힘든 사건중에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내 친구들은 가끔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곤 하는데
"목에 칼이 들어올때 어땠어?"
라고 물으면
"무서웠어. 진짜 무섭더라."
라고밖에 할말이 없다.
무서운거 말고는 정말.. 생각이 안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