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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증명을 참을 알게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증명은 이러한 문제를 품고 있다. 증명자체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수 있나?
증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동어반복이다. 증명을 증명하면 그것은 순환논리이기 때문이다.
즉 증명 자체의 참을 보장하는 것은 어떤 입증체계가 아니라 직관적인 앎이다.
A=A 임을 아는 것은 어떤 증명때문이 아닌, 그저 그것이 인간의 인식안에서 참으로 현상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A=A 로 현상하는 것은 곧 그것의 실체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증명할수 없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것이 참이란 것은 너무나 자명하게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형이상학의 의미를 보여준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은 증명 저 너머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다.
우리가 A=A 임을 아는 것은 그것이 참임을 알게 해주는 어떤 직관-intuituition-적인 마음의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신을 증명할수 없어도 분명 신은 있거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증명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참이다.
증명은 참을 전달하기 위한 어떤 매개체이지, 참을 인식시키는 유일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참의 세계는 증명의 세계보다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철학의 기조는 "회의" 이었다. 세계에대한 경이심 보단 회의 였던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로 부터 시작된 근대적 합리주의는 분석과 냉철한 판단을 모토로 삼지만 거기 안에는 근원적인 부정이 있다.
회의란 속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부터 유래 한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은 자기보호적이고, 외부세계에 대한 부정, 즉 초월의 부정이 있다.
긍정과 부정에서 긍정보단 부정을 시작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부정은 긍정의 틀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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