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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 콘돔. 세탁기.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 세가지 요소는 훗날 여성 해방이라는 역사적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역사란 것은 마치 복잡한 기계 같아서 작은 톱니바퀴들의 모임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탐욕스런 정치가, 범죄에 대한 전사회적 두려움, 인간행동제어기술의 발달이라는
이 세가지 요소가 파멸이라는 결말로 인류를 이끌 폭탄의 톱니바퀴였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욕심많은 정치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탐욕을 충분히 실현시킬수 있을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
과거 건설업계에 몸담고 있었던 그의 계획은 쉽고 간단했다.
그의 지인들로 가득찬 회사에 발주하고, 그 수익금을 나눈다.
그에게 필요한 한가지는 '국민을 위하여'라는 대의적 명분이었다.
때마침 그 '명분'이 나타났다.
여성만을 노려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마의 출현이 그것이었다.
살해과정에서의 잔혹성과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전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그는 과거 강간으로 1년6개월을 징역살이한 전과자였다.
언론은 정치가의 편이었다.
언론은 그가 전과자라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재범 방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칼럼이 매일같이 실렸고,
기자들은 강간 피해 여성을 찾아내서 인터뷰하는 짓까지 저질렀다.
여기까지가 연쇄살인마의 역할이었다.
연쇄살인마를 향한 분노의 화살은 전과자를 향해 옮겨갔다.
정치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범죄가 사라진 도시' 계획은 시작됐다.
역시 간단하고 쉬운 계획이었다.
'한창 주목받고 있는 기술인 행동제어기술을 죄질이 나쁜 전과자들에게 적용한 후 그들만을 모은 신도시를 건설하자.'
말하자면 전자발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고 이상한 계획이었다.
도시 건설의 필요성에 관한 문제, 범죄자의 인권에 관한 문제와 같은 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란게, 민주주의란게 그런것 아닌가?
옳고 그름보단 많고 적음이 중요했고, 그 많고 적음은 언론이 결정했다.
정치가는 자신의 탐욕을 채워줄 수단이 필요했고, 민중은 자신의 분노를 해소할 수단이 필요했다.
22조라는 엄청난 돈이 투입되었다.
그 중 얼마가 진짜 도시 건설로 가고 얼마가 정치가의 배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22조의 가치는 아니더라도 도시는 건설되었다.
여기까지가 정치가의 역할이었다.
처음 얼마간 도시는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도시 안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된건 도시 바깥의 사람들이었다.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런데 동기가 전혀 없었다. 남자와 여자들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까진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었다.
묻지마 범죄는 이미 흔한 범죄가 되었지만, 둘이서?
둘이 범죄를 같이 저질렀다는 것은 어느정도의 계획성이 있었다는 것인데,
여자 둘이서 계획적으로 우연히 만난 한 남자를 살해한다? 단순한 묻지마 살인으로 보기엔 조금 이상했다.
끈질긴 조사 끝에 그들이 자백한 살해 동기는 충격적이었다.
'도시로 가고 싶어서'
골칫거리였다.
만약 그들을 그냥 도시로 보내준다면 후에 그들을 모방한 범죄가 재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도시에 보내지 않는다면 다른 범죄자가 동기를 숨기고 도시에 가는 것을 피할 수도 있다.
이전까지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던 도시의 문호를 일정한 조건하에 개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찾아왔다.
인간은 묶여있는 호랑이보다 야생고양이를 더 두려워했다.
물론 도시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선 제어장치, 일명 리바이어던의 장착이 필요했지만,
범법행위만을 제어하는 장치였기때문에 정부가 인간 조종계획을 꿈꾸고있다는 음모론자를 제외하곤
아무 거부반응없이 수술을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리바이어던을 장착했다.
다시 도시밖으로 나가려는 일반인들은 나갈때 굳이 제거 수술을 받지 않았다.
어차피 하지 않을 행위에 대한 제한을 풀기위해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바이어던을 착용한 사람들이 과반을 넘어가고 점점 많아질수록 리바이어던의 장착은 일종의 의무처럼 자리잡기 시작했다.
'범죄를 제어하는 장치를 달지 않겠다는 것은 범죄를 행하겠다는 것과 동의어 아닌가?'라는 논리가 사회 전역에 확산됐다.
정부에서도 여론을 받아들였다.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에 한해 리바이어던 착용을 의무화했고,
리바이어던을 착용한 사람에 대해 세금감면과 같은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다.
혜택이 점점 더 많아질수록 미착용자에 대한 의심과 불안은 커져만 갔다.
'돈을 준다고 해도 굳이 수술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미착용자는 줄어들었고 그에 대한 박해도 심해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미착용자의 범죄율이 40%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과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일반인 중 대부분이 착용자쪽으로 넘어갔으니
가만히 있던 미착용자쪽의 범죄율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집 앞에 전용 CCTV설치, 통화내역 제출 의무화 등 도를 넘은 감시와 의심이 쏟아졌고,
대부분은 버티지 못하고 착용자 쪽으로 돌아섰다. 미착용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가 되었다.
도시는 완전히 개방되었다. 범죄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착용자는 리바이어던 때문에, 미착용자는 감시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못했다.
그건 다음세대까지도 유지됐다.
자신은 나쁘게 살아도 자식만은 착하게 살길 바라는 것이 부모된 자로서의 당연한 마음이다.
범죄는 완전히 사라졌고 경찰은 미착용자에 대한 감시자를 제외하곤 모두 사라졌다.
처벌과 감옥 또한 사라졌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짓는 순간 그 행위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이 선한지 알면 누구나 선을 행한다.
소크라테스의 세상이 되었다.
그 속에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라져갔다.
선하다는 것이란 무엇일까?
선을 알고있는 사람이 선한가, 선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이 선한가?
모든 사람이 선해지길 원했다. 그래서 내 딸 같이 범죄의 희생양이 더 이상 나오질 않길 바랐다.
더 이상 범죄의 희생양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르다. 이건 내가 원한 세상이 아니다.
모두가 선한 세상을 바랐지, 모두가 선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을 바란게 아니었다.
나는 이 시대의 마지막 범죄를 저지르기로 결심했다.
선에 대한 의지도, 범죄를 막을 수단도, 범죄에 대한 처벌도 사라진 지금
리바이어던마저 사라진다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다.
거기에서 가장 먼저 죽는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거기까지가 개발자의 역할이니까.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