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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글을 씁니다.
요즘 이래저래 친일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와서 가볍게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1. 면 서기는 친일파인가? 'S씨의 일기'
우리는 종종 '친일'을 말 그대로 '일본과 친했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동화정책'을 일본이 사용하였다고 한다면
일본식 교육을 받은 이후 세대들에게는 일본식 사고방식이 자연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일상적 차별'은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으로서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 한 연구자가 '식민지의 회색지대'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식민지 조선에는 '억압과 저항'이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일정 부분 규율화되었던 측면이 있다.
그렇죠.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만 일제강점기를 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S씨의 일기>를 봅시다.
참조로 S씨는 1930년대 중후반 면 서기급의 인물이며, 경북 상주 출신이었습니다.
중농 집안에서 태어난 S씨는 대구로 유학을 갔다가 집안 형편이 안 좋아져서 상주로 돌아옵니다.
그는 도시였던 대구를 열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약을 믿지 않고 한약의 효과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상주에서 면 서기를 하면서 일제의 '농촌진흥운동'을 돕기도 합니다.
예컨대 당시 시행되었던 '금주령'에 따라서 각 집에서 술을 빚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울함'에 이기지 못하여 집에서 술을 빚어 먹다가 자신이 벌금을 내기도 합니다.
일기를 보면 '우울'이라는 말이 전쟁기에 접어들면 접어들수록 늘어납니다.
이러한 '일상사'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2. 경성 유학생 강상규: '일상' 속에서의 독립운동가와 일반 사람들의 '회색지대'
우리는 '사건'으로서의 독립운동만을 배웁니다.
'항거'하였다, 싸웠다, 투쟁하였다.
민족주의였다, 사회주의였다.
그러나 인물로서의 독립운동가를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강상규는 1919년생의 전북 옥구군 사람으로, 부유한 집 자제로서 경성에서 유학하고 있었습니다.
옥구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노인들이 들려주는 딱지본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조웅전이나 류충렬전 같은 것을 말이죠.
그러다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합니다. (아마 1937년?)
수재급인 경우에만 진학할 수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 내에서도 전교 212명 중 5등이었죠.
일본인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이 사람은 뭔가 '일'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강상규는 1941년 체포됩니다.
그리고 강상규의 일기가 압수되면서 '10년 독립계획'의 전모가 드러납니다.
당시 일제는 전체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동맹국 독일의 파시스트 영화인 레니 리펜슈탈의 <민족의 제전>을 상영합니다.
강상규는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히틀러전>이라든지 <나의 투쟁>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손자병법>을 열심히 읽고 딱지본 소설을 읽은 결과 '군사훈련'을 하고 '거병'하여 일제를 무찌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황당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의 호적상 나이는 1922년생이었습니다.
즉 학제상 19살이 생각한 '투쟁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제가 만든 교육 체제와, 당시 몇 개 되지 않았던 조선어 딱지본 소설을 통해서
자신 나름의 '투쟁 방법'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는 해방 후 좌익 계열에서 활동하다가 행방불명이 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히틀러'나 '손자병법'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배운 것'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조선 민족으로 태어나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빌리자면
일제는 '친일 엘리트'라는 '꽃'으로 강상규를 호명하려 하였지만
강상규는 일상적 차별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호명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김대중을 '창씨'했다고 비판하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심지어 창씨에 '개명'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강상규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형, 친구, 학우,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 속으로 들어올 것을 설득하였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1939년 방학에 강상규는 고향 옥구에 내려가서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송점윤(27세)-국봉술(28세): 군의 이야기는 탁상공론이다. 이치는 그러하겠지만 우리들로서는 이렇게 먹고 지낼 수 있으므로 이것으로 좋지 않은가. ... 게다가 군은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진다고 말했지만 사실 일본은 조금도 질 것 같지 않다. ...
오맹옥(25세)-고용언(26세): 그런 짓을 하면 목표인 독립은 될 수 없다. 먼저 경찰에 붙잡혀서 형무소행이 고작이다. 군은 오늘날 우리 조선인의 생활이 나쁘다나쁘다 말하지만 이 사바세계 어디에 그런 좋은 곳이 있는가. ...."
일상생활에 바쁘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하냐는 반응입니다.
요즘 운동권들이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알바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는 반응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이 대단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독립운동가가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일상 속의 군중: 기회를 엿보며
전시체제기(1937~1945) 그렇다면 민중은 조용히 있기만 했을까요?
아닙니다. 두 가지 사례를 봅시다.
1) 화장실 낙서
아시다시피 징용-징병은 당시의 일반적인 사례였습니다.
그 호된 삶 속에서 민중은 욕을 하였습니다.
물론 "조선독립만세"도 있었지만
"이완용 黃犬子(ㄱㅅㄲ)', '이완용 요리점(변소가 이완용의 식당이라는 뜻 - 필자)
''일본은 졌다, 천황은 바보', '일본인 바보, 조선 4~5년 후 독립', '천황은 나쁜 바보놈'
'내지인('일본인')을 죽이자', '일본인을 죽이자' 등등.
꾸준히 화를 눌러 참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시국좌담회'
일제는 경찰을 이용해서 조선 민중의 생각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민중이 언제든 들고 일어나면 ... 전쟁 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쟁 홍보'를 하기 위해서 경찰이 조선 민중을 모아 놓고 '시국좌담회'을 합니다.
대략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 2. 내선일체를 확실히 하여 대동아공영권을 이루자.
그리고는, 반드시 '질문'을 하라고 합니다.
경찰이 배석한 '시국좌담회'의 분위기는 살풍경하였을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문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938~40년 '시국좌담회' 결과를 모아보니 다음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1. 너희 중일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데, 정말 이기고 있기는 한거야?
2. 왜 소련, 미국, 영국 등의 강대국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을 좋아하는거야?
3. 일본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서 이길 거라는데 왜 물가는 계속 뛰는거야?
4. 조선인 징병한다는데, 왜 잘 사는 집 자식들은 군대에 안 가?
5. 내선일체한다면서 차별은 왜 해?
이런 의문점들이 깔려 있는 질문을 '우회적'으로 하더란 말입니다.
즉 집합 개념으로서의 '민중'은 '기회'를 엿보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4. 얼렁뚱땅 '회색지대'를 친일의 범주에 넣으려는 경향에 반대하여: 친일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위개념이다!
옛날에 뉴라이트 계열이 친일파 논쟁이 한창 있을 때 100분토론에 나왔던 것이 기억납니다.
"친일 안 했던 사람이 어딨냐!" "다 창씨개명했으니, 친일파다!" "식민지는 근대화되었으니, 좋아하지 않았겠느냐!"
저는 위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1) 면서기, 일반 사람들은 친일파였을까요?
아니오.
오히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수록기준을 봅시다.
"일제 말기를 직접 몸으로 겪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할당된 공출량을 채우기 위해 집집마다 창고를 뒤지고 다니는 면서기나 폭압적 통치의 말단 하수인이었던 순사의 이미지가 친일파로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억과 감각들은 동원정책을 기획하고 지시하는 고등관료에서부터 말단의 행정을 집행했던 면서기까지 친일파의 범주로 생각하고, 사전의 수록대상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식민지배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나 책임의 경중을 모호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 ..."
<<친일인명사전>>도 그렇게는 이야기 안 합니다. 오히려 일제의 '스피커'와 '도구'가 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죠.
2) 다 창씨개명했으니, 친일파인가요?
아니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나미 지로(南次郞: 南씨 집안 둘째 아들이라는 뜻)라는 총독 시기에 창씨개명이 본격화됩니다.
전국 여기저기에서 미나미 다로(南太郞: 南씨 집안 첫째 아들, 즉 총독 '형')로 개명하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물론 다 잡아들였죠;;
풍자, 해학, 위의 강상규 사례처럼 '때를 엿보는' 것이었습니다.
3) 근대를 좋아하였다?
물론 근대가 가지고 온 편이성 자체를 싫어했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S씨는 집안 형편이 좋았던 대구 유학 시절을 그리워했겠죠.
하지만 돈이 없으면 그것도 힘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 대다수는 돈이 없었고, 친일파들이나 호시절이었겠죠.
그리고, 돈이 많다고 해도 강상규처럼 독립운동을 한 경우도 있었죠.
<<태평천하>>의 윤직원 영감이 "이 태평성대에!"라고 외친 것은, 그저 소설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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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내용을 보고 싶은 분들은
얼마 전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한 <경성유학생 강상규의 조선독립 10년계획>을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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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들의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윤해동, <식민지 인식의 '회색 지대'-일제하 '공공성'과 규율 권력>, <<당대비평>> 13, 2000.
松田利彦, <總力戰期の植民地朝鮮における警察行政-警察官による「時局座談會」を軸に->, <<日本史硏究>> 452, 2000.
이타가키 류타, <식민지의 우울>, <<근대를 다시 읽는다>> 1, 역사비평사, 2006.
정병욱, <경성유학생 강상규, 독립을 열망하다 上, 下>, <<역사비평>> 83호; 84호, 2008.
변은진, <일제 전시파시즘기(1937~45) 조선민중의 '불온낙서' 연구>, <<한국문화>> 5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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