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 보니 제가 저격을 당했네요.
뭐 네임드가 되고자 하는것도 아니고 관심받는 일도 부담스러운 일이니
그냥 조용히 넘어갈까 했으나,
적어도 진실이 무엇인지 정도는 밝혀야 할것 같아 종이 한장 뽑아 들었습니다.
저격글 먼저 보시죠.
제 개인적 변명(?) 은 빨간글로 적겠습니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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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눙깔]
지금까지 신고게시판이 없었고, 댓글신고만 했는데, 이놈은 도저히 그냥 놔 둘 수 없고, 신고해도 처리가 안될거 같기에, 정말 마음에 안들지만 공개저격 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놈이라... 아니 무엇때문에 제가 이 학생한테 이놈 저놈 소리를 들어야하는지...이해가 안가더군요... 그래서 꼼꼼히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서 글 보면 알겠지만 "어? 베스트 간 글도 많고 이상한 글 적은데 대체 왜 이놈이 신고당했지?" 생각하실 수 있을겁니다.
우선 제가 이분을 신고한 이유는 위험분자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네... 시사게시판에 글쓴지 얼마 안되었지만 종종 베스트로 보내주시더군요.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제가 위험 분자가 된걸까요?
이분 환빠 나 혹은 그 유사한 사상을 가진분 입니다. 환빠와 관련된 아무런 글이 없고, 대부분 시사게시판 게시물이라 저도 처음엔 그냥 넘어갔는데, 댓글이나 게시물들이 하나같이 뭔가 주장이 이상하더군요.
= 글쓴이가 적었다시피..전 환빠관련글을 올린적이 없습니다.
근데 하나같이 주장이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주장이 이상하다는 걸까요?
뭐랄까...... 주장은 있는데 근거가 없는 글들이나, 글을 읽고 글 반대가 늘어나자 갑자기 글이 삭제되었다며 댓글이 안적힌다던가...
=여기서부터 소설의 시작입니다.
1.주장은 있는데 근거가 없다...
=판단은 오유유저들이 해주시겠죠...제글이 베스트에 종종 가는걸로 보아 꼭 그렇지만은 아닌듯 싶습니다. 아주 주관적 결론을 내리신것 같네요.
2. 글 반대가 늘어나자 갑자기 글이 삭제 되었다며 댓글이 안적힌다던가...
=전 단한번도 제가 쓴글을 지운적이 없습니다. 물론 제 글이 그닥 공감을 못얻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제 글을 지울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글이 삭제 되었다며 댓글이 안적힌다던가...라는 이야기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조차 되지 않습니다.제가 오유 시스템을 건드려서 댓글을 못적게 했다는 건가요...최소한 제가 글을 지웠다면 근거정도는 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보류게시판에 들어가서 (안타깝게도 보류게시판은 검색이 안됩니다. 이건 나중에 오유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얼마 안가 역사게시판에서 보류먹어 보류게시판으로 간 이분의 글들이 굉장히 많더군요. 환빠와 동북공정 옹호 및 말도 안되는 글들이 보류게에 수두룩 했습니다.
= 전 제가 쓴글을 지우지 않았으니, 아마도 역사게시판에 쓴글이 보류 게시판에 그대로 남아 있을겁니다. (참고로 얼마전까지 보류게시판이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다행히도 밑에 모든글을 링크로 다셨더군요... 조금 있다가 제가 쓴 역사게시판글을 살펴보기로하죠.
하지만 분명한건 , 전 환빠도 아니고 동북공정을 옹호하는글을 단한번도 쓴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동북공정을 걱정해서 올린글이 전부입니다.
왜 글쓴이는 무엇때문에 저격까지 하며 이런 거짓말을 하는걸까요?
그럼 "역사게시판 일인데 왜 시사에 와서 난리야?"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이분 시사게시판에서 올리는 글 중에 반대먹은 글들은 삭제하고 추천먹은 글들만 남겨두는 식으로 활동하는것에 대한 의혹이 생겼습니다.
= 의혹....증거는 없고 의혹???
그러게 말입니다. 글쓴이의 글을 확인해보니, 47개 글중 18개가 신고글이고, 17개가 마기노기(?)라는 게임관련글이더군요..
정작 시사게시판과 역사게시판에는 글한번 제대로 써본적 없는 분이시더군요...
글쓴이한테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제가 제글을 삭제한 증거나, 추천받은글만 남겨놨다는 증거를 대주세요... 전 단한번도 제글을 지워본적이 없습니다.
이점은 반드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베스트에서 해당 글을 읽으면서 댓글을 다는 도중 [게시물이 삭제되어 찾을 수 없습니다.]는 메세지가 뜨더라구요.(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어쨋든 뜻은 같습니다.)
참고로 해당 게시물은 제가 읽을 당시 추천 10/ 반대 6의 상황이었습니다.
=제글은 여전히 존재하더군요...베스트에 갔냐 안갔냐 따위는 전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왜 게시물이 베스트에서 삭제됐다고 나오는지는 제가 설명할수가 없습니다...참고로 지금 추천10/ 반대3 이고 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도대체 제가 어떤 잘못을 했다는것이지요?
또 한가지 문제는, 이사람이 시사게시판에 적는 글들이 일리는 있지만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대단히 많다는 것입니다.
= 일리가 있는데 어딘지 석연치 않아서 저격글을 쓰시다니요...
일리가 있냐 없냐는 오유유저들이 판단하는것이지 님이 판단하는게 아니지않나요?
당장 위 게시물 링크 타고 가보면 [역사를 바꾸려면 통일을 해야되!] 같은 되도않는 주장을 하고, 더 웃긴건 근거도 없는 그따위 추측글이 10개나 추천받았다는 점입니다.
=이글이 추천 10개를 받았다면 제글에 공감하시는분이 적어도 열분은 계신다는 이야기로 읽힙니다만,,, 저격하신분은 매우 맘에는 안드셨나 봅니다.
그렇다면 반대를 꾸욱 눌러주시면 됩니다. 님과 생각이 다르다고 되지도 않는 주장이라거나 근거없다거나 하는건 아주 저열한 행동으로 느껴집니다.
위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이사람이 간혹 옳은 소리를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된 개념과 역사관념을 가지고 나오는 발언이 아닌, 반대받은 게시물 삭제에 따른 조작과 정신나간 환빠사상에서 나오는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 다시 말하지만, 전 반대받은 게시물이라도 단한번도 삭제한적이 없습니다.
결국
옳은 소리를 하지만 제가 정신나간 환빠라는게 핵심이군요...
역게에서 보류나 받는 환빠가 시사게에서 베스트로 가니 영 맘이 불편하셨나 봅니다.
제가 저격글을 쓴 이유는, 대다수의 유저들이 "이 사람이 뭐가 문제있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저런 말도안되는 글이 베스트에 갔겠지요?
해서 공개적으로 저격하게 되었습니다. 설령 저분이 베스트는 물론 베오베도 많이 갔다 할 지라도, 기본개념이 이렇게 뒤틀린 이상 저사람이 하는 말의 모든 근본사상이 위험하고, 그런 글들은 것보기에는 괜찮고 이상하지 않을 지 몰라도 결국 선동과 다를게 없는 것입니다.
=제가 베오베에 가건 안가건 그건 제게 별 상관이 없어요.
기본개념이 뒤틀렸다...사상이 위험하다...선동과 다름이 없다...
이런 이야기는 개누리당 인간들이 종북놀이 할때 자주쓰는 개념이 아닌가요?
참 무서운 일입니다. 20세 갓넘으신 분이 이런 편협한 사고를 갖게된 이유가 뭘까....걱정이됩니다.
이사람이 그냥 어디에 있는 어그로꾼이나 벌레면 그냥 알아서 죽겠지만, 전 오히려 이렇게 교묘하게 위장하면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위험하다고 판단됩니다. 특히 아직까지 이 사람이 쓴 글에 추천이 달리는걸 보면 말입니다.
=결국 환빠가 쓴글이 시사게에서 추천받고 베오베 가는게 맘에 안든다는 이유네요.
이 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 자유지만, 제 생각에 이렇게 위험한 사람이 시사게시판에 글을 쓰고 있고, 이것을 아무도 모르고 추천을 주는 현 상황 자체가 조금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환빠가 추천받는일은 아주 위험하다...이런 이야기시나요?
전 환빠도 아니지만, 환빠가 나쁘다고도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아니 민주주의국가에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게 왜 죄가 되야하는거지요?
참고사료: 해당 유저의 보류게시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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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가 쓴글의 링크가 있지만,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과연 제가 환빠인지 정도는 밝히고 싶어서 제가 올린글을 정리해 드리지요.
첫번째 역사게에서 보류로 간글은 6개 입니다.
정신나간 환빠가 쓴글이니, 객관적 사고로 바라보셔야합니다. ^^;;
첫번째 글은 김구 임정시절 우리나라 첫 역사 교과서 "신단민사"의 서평과 목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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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임정시절 우리의 첫 역사교과서....
신단민사
서평.
교과서 형식으로 저술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사교과서. 1923년 처음 출간되어 만주와 해외동포, 독립군 사이에 널리 읽혀졌다. 저자는 조선 고종 때 대사성, 문헌비고찬집위원,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한 김교헌 선생이다. ... 근세(조선시대-조선과 청나라 시대)로 구분하고 거란족의 요, 여진족의 금, 만주족의 청나라도 단군후예의 역사로 보고 우리 역사에 설정하였다. 이러한 단군인식과 연구는 21세기 동아시아를 조명하는 거시적 관점의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목차
제1편 상고(上古)
제1장 신시시대
제2장 배달시대
제3장 부여시대
제4장 종교
제5장 제도
제6장 문학과 기예
제7장 풍속
제2편 중고(中古)
제1장 열국시대
제2장 남북조 시대
제3장 종교
제4장 제도
제5장 문학과 기예
제6장 풍속
제3편 근고(近古)
제1장 려요시대
제2장 고려와 금나라 때
제3장 고려시대
제4장 종교
제5장 제도
제6장 문학과 기예
제7장 풍속
제4편 근세(近世)
제1장 조선시대
제2장 조선과 청나라 시대
제3장 종교
제4장 제도
제5장 문학과 기예
제6장 풍속
[부록]
배달겨레의 갈래
역대 큰 사건들
김교현 약력,
대사성(大司成), 문헌비고찬집위원(文獻備考纂集委員)을 거쳐 규장각(奎章閣) 부제학(副堤學)으로 있으면서
국조보감감인위원(國朝寶鑑監仁委員)을 겸했다.
이보다 더 많은 역사서를 접한 사람이 있을라나....
당시 독립하던분들의 역사의식은 이러한데...
왜 일제시대가 지나면서 이모양 이꼴이 된건지.....
김구선생님도 환빠라고 몰리지 않을런지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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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글이 환빠의 글인가요?
참고로 책의 저자 김교현선생의 약력을 다시 적죠.
무원종사(茂圓宗師) 김헌(金獻)은 1868년 7월 5일 수원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1885년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한림옥당, 병조참의, 예조참의,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했다. 1898년에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대중계몽운동을 하였고, 개혁내각 수립과 의회개설운동이 좌절되어 17명의 독립협회 지도자가 구속되자 대표위원으로 선정, 만민공동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03년에『문헌비고』편집위원이 되었고, 1904년에 『신단민사(神檀民史)』를 저술, 발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06년에 동래감리 겸 부산항재판소판사(東萊監理兼釜山港裁判所判事)와 동래부사로 재직할 때, 통감부의 비호 아래 자행된 일본인들의 경제 침략을 징치하다가 일본인들의 횡포로 잠시 관계에서 추방되기도 하였다
그 후 비밀단체인 신민회(新民會) 회원과 교우 관계를 맺었으며,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 들어가 현채(玄采)·박은식(朴殷植)·장지연(張志淵) 등과 함께 고전간행사업에 참가하였다.
신교사관 최남선, 신채호에게 이어져
구한말 석학 김교헌은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885년 정시문과에 급제해 대사성, 문헌비고찬집위원을 거쳐 1909년 규장각 부제학으로 있으면서 국조보감감인위원을 겸했다. 김교헌은 1910년 일제가 우리 국토를 강점하고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군경을 동원해 온 나라에서 사서를 수거해 강탈하고 태워 없애자 이에 맞서 현채玄采, 박은식朴殷植, 장지연張志淵과 함께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이끌면서 고전과 사서를 수집하고 간행, 보급에 앞장섰다. 그리고 <신단민사神檀民史>, <신단실기檀記實記>, <배달족역사>를 펴내 겨레의식을 불어넣고 역사 원형인 신교사관을 정립했다. 김교헌 신교사관은 최남선, 장지연, 유근,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에게 영향을 미쳐 민족사학과 국학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독립운동가인 석농石儂 유근柳瑾은 <신찬초등역사>(1910),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조선상고사>(1920),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는 <조선사연구>(1946)를 써서 민족사학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신채호는 1908년 ‘독사신론讀史新論’을 발표, 근대사학확립을 했다. ‘독사신론’이 비록 미완성 작품이지만 단군시대부터 발해시대까지 근대 민족주의사학 기본 골격을 명쾌하게 제시, 우리나라 근대사학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13년 신채호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예관 신규식 초청으로 상하이로 가 신규식, 박은식과 더불어 ‘박달학원’을 세워 한국사를 강의했다. 1914년 윤세복 초청으로 다시 펑텐奉天성 회인현으로 옮겨가 ‘동창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조선사’를 집필했다고 하나 아쉽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김교헌은 1918년 재외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모아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한다. 이 선언은 무장혈전주의 선언으로, 뒷날 도쿄 유학생들이 발표한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 기폭제가 되었다.
= 보시다 시피 김교헌 선생은 1909년에는 규장각부제학으로서『국조보감』감인위원(監印委員)을 겸직하였고, 1910년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역임하던중, 일제가 1910년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고 나서 1911년 말까지 한해 남짓 불온서적을 수색한다며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군경을 동원, 온 나라를 샅샅이 훑어 51종 20만권 사서를 강탈하거나 불태우는걸 직접 목도한 분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1904년 신단민사를 쓰셨고 1910년 대종교(당시 독립운동의 가장큰 세력)에 귀의 하게 됩니다.
1918년 3.1 기미독립선언의 근간이 된 무오독립선언을 하신분이기도 합니다.
아니 김교헌선생이 종교와 독립운동을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게 과연 바른 사고 인가요?
다시 말하지만 신단민사가 대종교의 사상으로 쓰여진게 아니라, 김교헌 선생때문에 대종교가 우리나라 상고사를 받아 들였다는게 오히려 정설입니다.
참고: 왜 신단민사는 여진족의 금, 만주족의 청나라도 단군후예의 역사로 보았나?
역사스페셜(한상권) 20090905 9회 ■ 만주대탐사 2부작-2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를 참조해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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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글을 한번 살펴보죠,
두번째글은 작년 한겨레 기사로 서 마오와 저우가 우리나라 고대사를 인정했다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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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마오쩌둥 '요동은 원래 조선 땅' 발언 확인
2014.02.28 08:11수정 : 2014.02.28 10:03
[한겨레]이종석 전 장관, 중국쪽 1차 사료 공개
북-중 국경 획정 와중에 여러 번 밝혀
"조선 사람 압록강변까지 내쫓겨"
김일성에 "역사서에 꼭 쓰라" 말하기도
저우언라이도 "중 속국설 터무니 없다"
고구려·발해 중 고대사 편입하려는
'동북공정' 근본부터 흔들리는 셈
북한과 중국이 국경 획정 협상을 하던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중국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요동 지방은 원래 조선 땅이었으나 고대 왕조가 조선민족을 압록강변까지 내몰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27일 확인됐다. 이는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 주장해온 중국의 국가 차원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의 근본을 흔드는 발언이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연구서 <북한-중국 국경 획정에 관한 연구>(세종연구소 펴냄)에서 마오 주석과 저우 총리가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과 만나 이런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고 밝혔다.
마오 주석은 북-중 국경조약 체결 직후인 1964년 10월 베이징을 찾은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대표단을 만나 "당신들의 경계는 요하 동쪽(요동)인데, 봉건주의가 조선 사람들을 압록강변으로 내몬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오 주석의 이런 발언은 1964년 10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11책에 실려 있다.
마오 주석은 이에 앞서 1958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과 만나서도 "당신들 선조는 당신들의 영토가 요하를 경계로 한다고 말했으며, 당신들은 현재 당신들의 압록강변까지 밀려서 쫓겨왔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역사를 기술할 때 이것을 써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1958년 11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4책에 실려 있다.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의 발언은 좀더 직설적이다. 저우 총리는 1963년 6월28일 베이징을 찾은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나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으며 심지어 예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저우 총리의 이 발언은 1963년 6월28일 중국 외교부가 펴낸 <외사공작통보>에 실려 있다.
마오 주석이 요동 지방이 애초 고구려·발해 등 조선 선조들의 영토였으나 당 등 중국 봉건왕조의 침략으로 빼앗긴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종석 연구위원은 연구서 및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마오와 저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자이자 1976년까지 통치한 최고지도자들"이라며 "이들이 고구려와 발해를 조선민족이 세운 고대국가로 인식했으며, 그 역사를 조선의 역사로 규정했다"고 짚었다. 이어 "두 (최고)지도자가 동일 주제를 언급하며 거의 같은 용어와 문구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당시 중국 정부의 정리된 공식 방침이었으리라 추정된다"며 "두 중국 지도자의 발언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할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동북공정'을 국가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로 격상시켜 '고구려는 우리나라(중국) 고대에 하나의 지방정권이었고, 국민은 주로 한족 이주민을 위주로 하였다'거나 '고구려는 우리나라(중국) 동북지역의 오래된 소수민족 중 하나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고구려·발해를 중국 고대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애써왔다. 2000년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중국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연구계획을 비준·승인했으며, 2002년 2월 중국 사회과학원과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세 성이 공동으로 1500만위안(22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동북 변경의 역사와 현상 연구 공정'(동북공정)을 출범시켰다.
한편, 1964년 10월 마오 주석을 만난 북한의 박금철 당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마오 주석의 요동 영토 관련 발언을 듣고는 "양국 간 국경은 1962년에 이미 해결됐습니다. 주은래 총리가 아주 분명하게 백두산과 천지 문제를 모두 합리적으로 해결했습니다"라며 "현재의 국경선에 우리는 만족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두고 북한의 우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중은 1962년 10월12일 압록강·두만강을 공동 이용하며 백두산 천지 영유권을 분할(북 54.5% 중 45.5%)하는 등 이전보다 북쪽에 유리하게 정리된 북-중 국경조약을 체결했으며, 그해 12월11일 이 조약 비준서를 교환했다.
그러하단다.
우선
마오가 한민족이
봉건세력에 밀려 압록강까지 밀렸다는
맑시즘에 기초로한 계급논리적 역사인식이 재미있다.
봉건제도라면 주나라(周)를 의미하는바.
(중국역사에 봉건제도는 주나라밖에 없었다.
진나라는 군현제지 봉건제가 아니였음)
고로 당시 중국의 역사가들에게
주나라와 동이족 그리고 고조선의 역사가
일반적 정사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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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겨레 기사인데 중국의 동북공정에 치명적 역사적 오류 이야기하는
사료로서도 엄청난 의미가 있는 아주 귀중한 기사입니다.
이 글이 과연 환빠로 몰릴 글인가요?
이 글에 달린 댓글을 하나 보죠..
★ 한량011 (2015-02-20 09:19:18) (가입:2014-10-14 방문:122) 추천:1 / 반대:1 110.70.***.2
뭐라할까 유물론에서 전통시대는 봉건사회를 의미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군요
조선시대도 봉건사회로 볼 수 있는게 유물론인데다 봉건사회란 봉건제가 아닌 계급제사회란 뜻이에요..
그리고 주은례가 압록 두만은 역사이래로 중국 땅이라고 한건 왜 빠뜨리는지도 모르겠네요.. 고대 중국에 의하여 압록 이남으로 국경이 밀린게 바로 연의 고조선 공격 기사이고 이걸 확인 가능한게 세형동검과 한사군의 출토 유물인데 이 모든건 이미 기존 학계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기도 하고요..
세도우 복싱이군요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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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환빠몰이 당했는데요,
정작 기사를 보면 알다시피 주은례는 압록 두만은 역사이래로 중국 땅이라고 한게 아니라 분명히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으며 심지어 예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라고 하고 있지요... 도대체 이해할수 없는 반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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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글과 네번째글은
한겨레TV 역사특강 "법륜스님, 대한민국 청년에게 고함"
동영상 1부와 2부입니다.
정말 좋은 강의인데... 정작 이 동영상도
환빠몰이 당해서 보류로 쳐박히게 됩니다.
여기에 동영상 두개 모두 올려봅니다.
NuRi's Tools - YouTube 변환기
NuRi's Tools - YouTube 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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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런 쓸데없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 합니다.
2015년 오유 역사게시판에는
우리나라 상고사에 대한 글은 하나도 남김없이 보류로 보내진 아주 충격적인 현실이 존재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고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역사를 자기의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나라 상고사 이야기를 하면
환빠로 모는 현실이 존재합니다.
환빠냐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는 우리나라 상고사에대해 더 많은 토론과 토의가 너무나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 하더라도,
조금더 여유있는 모습으로 우리나라 상고사를 바라보고 공부해야합니다.
저를 저격하신분에게 딱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가 상고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자료가 없으니 이야기 하지말자는 자세보다는,
자료가 없으니 좀더 토의하고 토론하자....그래야 우리자손도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을수 있다...
이렇게 맺음을 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