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둘기가 싫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섭다.
비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나는 보통의 비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더 비둘기를 싫어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모든 팩트에는 근거가 있듯이,
나도 처음부터 비둘기를 이유없이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그날의 기억때문에 나는 여전히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비둘기를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그날, 그순간, 그곳.
나는 아직도 그곳을 지날때면 몸을 움츠리고 빠른걸음으로 걷곤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12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도 어김없이 난 혼자 집에가고 있었어.
그당시 내 걸음으로 초등학교에서 집까지 30분 거리였는데,
집에가는 동안은 항상 바나나킥을 사먹었어.
바나나킥만이 내 마음을 치유해주는 유일한 친구이긴 개뿔 먹을걸 손에서 떼면 수전증이 오기때문이었지.
내가 친구를 사귀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는 바나나킥을 혼자 소유하고 싶었던 것도 한몫할 정도로 난 그만큼 바나나킥을 좋아했어.
바나나킥 한봉지면 학교에서 집에가는 길에 딱 맞는 양이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집에다와가는데 바나나킥이 반이나 남은거야
바나나킥을 남기고 집에가서 먹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지.
때문에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집앞 놀이터로 향했어.
친구들과 서로 그네를 밀어주면 깔깔거리는 10살짜리 꼬마들.
둘이 시소를 타는데 무게가 맞지않아 책가방을 가벼운쪽 시소에 싣고서는 좋다고 실실거리는 초딩커플 꺼져라..
가슴 한쪽엔 주번 뺏지를 달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같은 계집애에게 훈계하는 6학년 오빠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보니 바나나킥이 먹기 싫어졌지.
그렇게 한참을 벤치에 앉아있다 내 앞에서 서성이던 비둘기에게 무심코 바나나킥 하나를 던져줬어.
잘먹더라.
나와 과자취향이 똑같은 비둘기라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지.
더 먹어라.
하나 더 던져줬어.
그러자 다른쪽에서 모래를 파먹고있던 비둘기 두마리가 합세하더라고.
비둘기는 세마리인데, 내가 준 바나나킥은 두개.
하지만 그 마저도 한마리가 두개를 다 차지하고 있었고, 뒤늦게 합류한 두 마리는 얼쩡얼쩡거리며 한입쪼아먹고는 몇걸음 떨어지고, 한입쪼아먹고는 딴청하고 눈치를 보는 것 같았어.
빈익빈 부익부.
이게 비둘기 세계에도 존재한다니.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보며 초등학교 고학년인 지도자층의 입장에서 이 현실을 모른척 묵과할 수만은 없었어.
이것은 놀이터라는 작은 세계에 대한 내 책임감이었지.
그렇게 한두개씩 던져주다보니 어느덧 비둘기가 점점 날아들기 시작하는거야.
바닥에 널부러진 바나나킥을 먹겠다고 달려드는 비둘기들을 보자 어쩐지 서글퍼졌지.
그렇게 넋놓고 비둘기를 바라보고있었는데...
그랬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앉은 벤치 주위로 새까맣게 비둘기떼가 둘러싸고 있었어.
그때 내게 들려온 비둘기들의 음성은 '구구구구'가 아니라, '바나나나'였어.
수십마리들의 비둘기들이 단체로 날 노려보며 바나나나나나라고 외쳐댔고
난 생명의 위협을 느꼈어.
멀리서는 또 몇마리의 비둘기들이 날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놀이터안의 꼬마들은 한둘씩 도망치기 시작했어.
난 너무 무서웠어.
어떡하지.
난 정신을 차려야만 했어.
여기서 포기하기엔 내 12년의 인생이 너무나 짧았어.
난 아직도 배우고싶은게 많은데....
가분수도 마스터해야하고, 삼각뿔의 입체면적도 구해야하는데..
아, 엄마 보고싶어. 살려줘.
하지만...
바나나킥 봉지안에 들어있는 과자는 단 세개...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머리가 멍해졌고, 바나나킥을 든 내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어.
그때 내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밖엔 없었어.
"살고싶다."
난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바나나킥을 있는 힘껏 봉지째 멀리 던졌어.
그러자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비둘기 무리가 그쪽으로 모두 날아갔고,
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걸음을 늦추지않고 집까지 전력질주해서 도착했지.
"살았다."
난 살아남았지.
하지만 그 후로 며칠간은 비둘기 꿈에 시달려야했어.
그후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1. 비둘기
2. 바나나킥
3. 바나나킥 먹는 비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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