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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정확한
정확한 어조로, 그만큼은 또 하는 발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네개의 계절을 잘게 쪼개어 스물 몇개로도 불렀고,
행복과 절망의 틈을 미제 방정식으로 쪼개어 밤을 세워 불렀다.
담이 높던 운동장에는 알지 못 한 이름들 투성이었다.
어느 나무도, 어느 꽃도, 그것의 역사도, 그것의 의미도 모르고
그래,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거기를 여덟바퀴 돌아 시원하게 토를 쏟는다.
밤이면 이층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라디오 바늘을 좌우로 돌렸다.
어떤 그녀와 또 다른 그녀의 목소리 사이의 이름 모를 눈금들은
가시마냥 촘촘히 천장에 쳐박혀 기막힌 소음으로 번진다. 그때는 꽤나 반짝이던 하늘.
여기엔 별이 뜨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도 하고, 혹은 보지 않기도 한다.
무엇이어도 상관없이 그것은 거기에 있고,
어떤 이름이어도 상관없이 그것은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 무덤에서 나는 나비를 나방이라고 불렀고 나방을 나비라고 불렀다.
내가 뭐라 불러도 나방은 나방이고 나비는 나비이다
나는 한참을 내가 아는대로 알았다.
그것이 수년간 내가 가졌던 진실의 전부이고
그것이 내가 아는 아름다움이나 그 반댓말의 실체였다.
나는, 자주 베란다에 나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엄마하고 부르려다 엄마의 화초를 깨먹었다.
거기에서 부터 나의 세상은 이름 모를 꽃들로 가득하다.
아무리 불러도, 목 놓아 불러도 나는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나는 이름 모를 곳으로 자꾸만 다리를 뻗는다.
나는 이름 모를 곳으로 자꾸만 흘러 간다.
다시 여기, 이름, 모를, 꽃이, 핀다
- 나는
나는 알고있었어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집에 오는 길에 양화대교 남단에 쭈그려 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피워댔어
강 건너로 보이는 굴뚝을 집어 삼킨것 같았지 뻐끔.뻐끔. 푸후. 뻐끔.뻐끔. 푸후.
모락모락 뿜었던 연기가 하늘을 가리더니 서울을 다 덮어버렸어
내가 다 타야 이 밤이 끝나겠지 세모금만 더 빨게 해줘
그러다 끝인지도 모르고 허연 재로 남아 무안하게 아침을 맞거든, 비라도 좀 내렸으면
하늘을 좀 씻어내고 나를 휩쓸어 강물에라도 떠내려가게
어쨌든 아침은 오더라구 너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
구걸하던 너의 손에 시뻘건 매니큐어가 발려 있었어
수줍게 넌 지껄였지 이건 정말 사랑인가봐
지랄하지 말아요 나는 또 그건 진짜 사랑인가봐
벌어진 앞니 사이로 날숨을 좀 뱉어내며 동공을 벌렁이더니
뻔뻔하게 넌 지껄였지 이건 그냥 장난이라고
장난치지 말아요 나는 또 이건 진짜 장난이니까
나는 알고있었어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 두달된 친구인 서른의 그녀는
두달된 친구인 서른의 그녀는
서른 하나가 되어 오늘도 내 집을 찾았다.
남들 다 걸리는 감기에 걸려 함께 병원엘 가기로했다.
나는 막 글을 쓰던 참이었다.
문득 그녀에게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녀는 내 침대에 누워 엊그제 받아온 시나리오를 읽고 있고.
나는 30분여 만에 글을 마쳤다.
그녀는 나를 이해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하지는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그녀가 소중한 것은 나를 내 속에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함께라는 의미는 하나라는 의미와 다르다.
그것이야 말로 외롭지 않은 관계다.
날이 저물고,
내가 되었든 그녀가 되었든
서로를 떠나 혼자서 새벽을 맞이 하는 일이
새삼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몇 안되는 내 모든 친구들이 그러하리라..
하나였던 내 연인의 빈자리를 고통으로 실감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르게
- 모순과 고통의 계절
"쌀쌀해."
라는 말을 생각 보다 더 일찍 꺼내 입었다. 시커먼 팔꿈치가 훤히 드러나는 반팔 티셔츠 위로.
집에 오자마자 드레스룸에 들어가 널부러진 빨래더미를 대충 수습하고 옷장 문을 죄다 열어젖힌다. 매년 하는 생각. '지난 해 열성으로 사모았던 옷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올 봄에 입었던 가디건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일때 사두었던 자켓을 걸쳐본다.
밤이면 제법 쓸쓸한 바람이 불고 이 여름, 에어콘 아래에서 다 쏟아내지 못 한 땀방울이 무안하리 만큼 가을은. 엉겁결에 덮쳐올 것이다.
3,4,5월은 봄. 6,7,8월은 여름. 9,10,11월은 가을. 나머지는 겨울. 어릴때 나는 그런줄로 알았다. 반팔은 여름. 긴팔은 겨울. 그 두가지가 모두 활보하는 날은 봄이나 가을. 그렇게도 알았다. 그렇게 모든게 정해져 있는줄로 알았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누군가 그 초록색 창가에 앉아 "이제 제법 가을 냄새가 나네."라고 했고, 그 후로 나는 세개의 가을을 더 그 처량맞은 목소리로 맞이했다.
9월. 가을이다. 반팔들. 아직이다. "이제 제법 가을 냄새가 나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좀처럼 하지 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옷장문을 열고 가을을 꺼낸다. 식초와 참기름이 섞인것 같은. 시큼하고 고소한 냄새가 담배향와 섞여 말끔히 세탁된 자켓 위로 덕지덕지 눌어붙는다.
대구의 앞산이란 곳 아랫자락에 살 때. 나는 자주 등산을 다녔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산이란 곳의 귀퉁도 밟지 않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일상이었고, 가뿐했다. 거기의 실제 지명이 앞산이다. 작은 골짜기를 구석구석 품은 내 집 앞의 앞산. 엄마와 그 또래의 중년 여자들 사이에 끼어 얼음물에서 막 건진 오이를 뜯으며 뒷걸음로 그 산을 올랐다. 사뿐사뿐. 용감하게도.
그리고 여기. 여기에서 나는 여전히 뒤집힌채로 시간을 걷고 있다. 내가 걸어온 시간만이 현실이라고 믿는다. 오로지 거기에서만 치열한 삶의 가치가 성립되리라. 앞날을 등진채. 앞날로 향한다. 미래나 꿈이나 그런 말들은 가증스러우며 연약한 자위라 여겨 죽어도 뒤돌아 앞을 보지 않는다. 꿈이란걸 꾸기에는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고, 삶의 목적을 찾기엔 종착지가 죽음이라 허무하기 짝이없다. 그것을 위해 산 적은 없지만 죽음은 끝일것 같은 저기 언덕 너머로 변함없이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등진 곳 어디쯤에서 엉겁결에 덮쳐오겠지. 오늘처럼.
그것에도 냄새가 있다면 옷장을 열리라. 가을을 준비하러.
그렇게 살고 있다. 오이를 뜯으며 앞산을 뒤로 오르던 철 없어 용감하던 어린아이로. 이제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편협한, 그리고 여전한 앞산 어느 자락의 철 없는 어린아이로.
모순과 고통의 계절이다.
-편의점이 폐업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1층의 편의점이 폐업했다. 편의점인데 12시면 문을 닫으니 나같은 올빼미의 편의에는 썩 맞지 않는 편의점이었다. 다른 편의점은 길 건너에나 있으니 이제부터 담배는 줄고, 충치가 덜 생기고, 더 건강해질 것이다.
처음 여기로 이사왔을때 자기 딸이 좋아한다며 싸인을 부탁하던 편의점 아줌마는 그 후로 내가 다녀가는 내내 끼니를 챙겨 묻고, 일은 잘되는지 묻고, 더 필요한건 없는지 물으며 서비스를 챙겨주었다. 밥은 먹었다고 했고, 일은 잘되고 있다고 했고, 더 필요한것은 없다고 했지만 기어코 옆구리로 찔러주시는 음료수를 받아들고 머쓱하게 감사인사를 하곤했다. 어떤 날은 그 친절이 너무 불편해서 담배를 참고 차에 올라타 매니저의 것을 뺐어 문 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식사는 하셨냐는 그 흔한 인사 한 번 먼저 건낸적도 없을 만큼 나는 무심한 단골이었고, 그래서 마지막까지도 아줌마는 내 이름 뒤에 '씨'자를 못 떼냈던 것 같다. 아인씨. 아인씨. 지독히도 불편한 그 이름.
아마도 대구의 부모님 집에 살며 학교를 다니거나 이렇게 밤마다 술을 푸겠다고 놀러를 다니거나 했다면 우리 엄마가 그러지 않았을까. (물론 엄마는 나를 홍식이라고 하지만,) 난 또 그 마음이 그렇게 싫고 귀찮아 다정하게 대답 한 번 제대로 해주지 않는 무뚝뚝한 아들 노릇을 했겠지.
경상도 남자라 무심하다는 어쭙잖은 핑계로 10년쯤 후에는 매일 저녁 전화해 엄마의 안부를 묻겠다고 다짐한다. 어리석게도.
엊그제 마지막으로 편의점엘 갔을때. 그때도 이미 가득 찬 봉투 사이로 공짜 햇반을 꾹꾹 찔러 넣으며 아줌마는 내게 소녀처럼 수줍게 작별인사를 건냈다.
"일 잘되고, 담배 좀 줄이고 아, 나 교회가면 아인씨 기도 해요. 나 기도빨 진짜 잘먹거든. 그니까 아인씨 진짜 잘될꺼야."
그런 말엔 무방비였다. 습관처럼 감사하단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진짜요? 기대할께요!'하며 장난스럽게 받아칠 그만큼의 세련된 구석도 내겐 없었다. 하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엄마에게 내가 느끼는것 처럼 죽도록 어색하고 간지러운 마음만 있을뿐.
서울에 사는 내내 1년 마다 집을 옮겨 다니며 만나왔던 기억도 나지 않는 우리집 1층의 편의점 아줌마, 아저씨, 알바생들. 내 엄마 보다 더 자주 나를 맞이하던 그 사람들. 어쩌면 처음으로 그들중 한 사람의 인사를 진짜라고 믿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흐릿하게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나는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그날따라 문에 달린 방울이 더 요란하게 흔들렸다. 내겐 기억할 필요 없는 소리. 딸랑딸랑. 딸에게 조금 더 가까운 엄마로 돌아가는 편의점 아줌마에게 그 방울소리가 얼마나 아련하고 고된 추억일지에 대해 감히 추측해 본다.
어젯밤. 담배를 사러 나가며 같은 시간이면 원래도 불이 꺼져있을 그 편의점이 그렇게도 아쉬웠던 것은 굳이 횡단보도를 건너야하는 불편 때문이 아니라 이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 12시면 문을 닫는 편치 않은 우리 아파트 편의점 아줌마의 지독히도 불편했던 친절 때문이었으리라.
뒷통수가 간지러운 과한 친절들을 뻔뻔하게 누리던 삶을 잠시 접고 밤이면 감지도 않은 머리에 모자하나 얹고 어슬렁어슬렁 담배나 사러 나가는 보통의 삶 속에서 내가 다시 그런 불편한 친절을 느낄 수 있을까 되뇐다. 그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가슴 뜨거운 행운이었는지.
-팽창하는
팽창하는 우주처럼 나의 세계는 그 끝을 모른채 맹렬히 뻗어나가고 있었다. 미지의 행성은 같은자리에서 정복되기만을 기다렸고 그 경계 안쪽에서 내가 사유하는 모든 현상과 사물들은 가장 함축적인 단어들로 실체를 가졌다. 나는 그들의 명백한 주인이었다.
단어를 분절하여 자모를 나열하고 각각의 색과 냄새와 형태의 변형을 관찰하고 다시 그것들을 조합하여 다르게 배치하는 놀이를 계속했다. 그것은 의지에 따라 건축이기도 하고 회화이기도 하다. 나는 사물을 그렸고 풍경을 그렸고 내 마음을 그렸고 나의 연인을 그렸으며 때때로 상상이나 간밤의 꿈을 그렸다. 어떤 날은 하얗게 질려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나의 공터는 썩은 목재가 뒹구는 폐허로, 마천루를 쌓아 올린 도시로 변해갔다. 나는 시간의 질서를 지켰고 조화를 잃지 않았으며 때로는 위압적으로 그 미관을 뽐내기도 했다.
내가 사는 것은 사건이기도 하고 현상이기도 하다. 나의 존재는 세계를 이룩했고 그 생은 집밖으로 들리는 희미한 경적같은 것이기도 했다. 돌아갈 곳이 없는데 굳이 가야할 곳도 없고 한 점 먼지에도 의미를 찾는데 다시 보니 그만이기도 하다. 세계는 포화를 이루고 들여다보면 공허함만 가득하다. 욕망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지만 방향을 잡았고 나는 더 노련해졌지만 동시에 뭉툭해져간다. 할 말이 많은데 하지 않아도 무관하다.
아마도 나는 폐허에 더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무질서한, 부조화의, 아름답지 않은 폐허. 불필요한 단어가 불필요한 곳에 쳐박혀 불필요한 음율을 만드는 폐허. 잊혀진 사랑과 이름 모를 사람과 기억나지 않는 숫자와 잃어버린 양말 한쪽이 버려진 단어들과 함께 변질되어 곳곳에 숨어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밤을 기다리다 응큼한 두꺼비처럼 튀어나와 소음으로 나뒹구는 정복되지 않은 땅. 그것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이루어 졌다.
나는 그 폐허 또한 내 세계의 안쪽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러하다. 거기에서 나의 경계는 가장 팽팽하게 늘어진 상태로 확장을 멈춘다. 그렇다고 내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나와 내 세계의 팽창은 그 폐허를 중심으로 전혀 다른 시간과 방향성을 가졌다.
비명을 지르기 전에 생각했다. 나는 이 세계의 명백한 주인이고 가장 신실한 종이기도 하다. 세계가 수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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