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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576730
    작성자 : Daydreamer
    추천 : 13
    조회수 : 429
    IP : 119.192.***.109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3/02/04 01:32:02
    http://todayhumor.com/?gomin_576730 모바일
    10년 넘은 남자사람친구를 잃었다.

    쓰고보니 완전 스압인데요,

    제가 처음엔 블로그에 정리하는 식으로 써서 반말이에요.

    이해해주세요. ㅠㅠ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서, 가끔씩 연락하는 남자사람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을 했었고, 참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첫 연애를 고2 말에 시작했었는데,

    사귀는 거 애들한테 말하지 말자고 남자친구랑 약속해놓고

    책사이에 끼워 몰래 주고받던 편지가 

    하필 이 친구한테  걸렸었다.

    그 때까지 우리가 뻘쭘해서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못해봤던 터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나랑도, 남자쪽하고도 어느정도 친한

    그 남자사람친구와 같이 놀러가자고 꼬셨고

    세명이서 놀러 다니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뻘쭘함이 가시고 난 첫 연애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고도 남자사람친구랑은  가끔 연락을 했었다.

    내 마음을 홀랑 다 줬고 나에겐 세상과도 같던 첫 연애가 끝나던 스무살 5월,

    하필 헤어진 그 다음날 오래간만에 연락 온 그 남자사람 친구가

    '나중에 OO랑 같이 한 번 보자 술이나 사줄게' 하는 바람에

    거짓말 잘 못하는 내가 '사실 어제 oo하고 헤어졌어' 라고 이실직고를 했더니

    밥사준다고 만나자고 하더라.


    내가 다른 지방에서 학교를 다녀서 일주일 뒤 만났다.

    그때까지 난 헤어졌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난 상태여서

    주변에 헤어졌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도 알고, 남자쪽도 알고, 헤어졌다는 사실도 아는 친구를 만났더니

    그 동안 눌렀던 게 꾹꾹 터졌다.

    그 날의 일을 잊으려고 잊으려고 노력하는 바람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술먹고 신세한탄하고 울기' 류의 온갖 꼬장이란 꼬장은 다 부린 건 기억난다.

    너무 부끄러웠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감정적으로' 제일 슬프고 힘들었던 날

    날 안쓰럽게 바라봐주고 어설픈 충고도 안하고

    괜찮다 괜찮다 해주던 남자사람 친구 표정은 잊을 수 없다.

    내 얘길 이렇게 들어준 게 너무너무 고마웠다.


    아 내가 얘한테는 진짜 잘해야지 싶더라.

    그래서 의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연락도 꼬박꼬박하고. 문제 있음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가끔 만나서 밥 먹고. 술도 한두잔 할 때도 있었고.

    둘다 술을 안 즐겨서 스무살 이후로 술은 관뒀지만.



    그렇게 가끔 연락하는 사이로 지냈다.

    방학 때 내가 고향가면 (요 친구는 고향에 있는 대학다녔음) 얼굴이나 보고.


    이 친구는 방위산업체근무를 했었는데,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이 좀 다쳤단다.

    Degloving injury 라고 아는 분은 아실건데,

    엄지손가락쪽이 뼈만 남기고, 살갗과 근육이 모두 그렇게 되어서

    바로 미세수부접합 전문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더라.


    당장은 아니었지만 병문안을 갔다.

    친절하고 잘 웃는 성격 그대로 헤헤거리는데 맘이 안 좋았다.

    괜찮을 상황이 아닌데 괜찮다 괜찮다하고 있는게 빤히 보여서.


    꽁꽁 싸매고 있어서 상처는 보이지도 않았다.

    에라.

    신경은 쓰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서 말동무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학교만 그 쪽이면 뭐 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결국 얘는 몇번을 재수술하고 몇 달을 입원했다.

    지금도 엄지손가락은 짧고, 엄지손톱엔 흉이 있고, 피부도 흉터피부다.

    겨울엔 가장 먼저 차가워지고.


    수술한 병원에서, 장기입원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더니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연락해보니 퇴원은 했고

    어학연수 겸 필리핀을 갔다왔다더라.

    간다는 말도 안했었는데

    싸이에서 물고기잡고 노는 모습이 정말 밝아보였다.


    에이, 간다고 하면 연락이나 좀 해주지.

    나한테 그 친구는 참 고마운 친구였지만 걔한테 난 별 의미 없었나부다.

    내가 더 좋아하는구나. 그러고 말았다. 



    사실이 그랬다.

    유감스럽지만,난 주변에 사람이 있는 성격이 아니다.

    친구도 정말 조금밖에 없고, 주변 사람들한테 잘 하지도 못한다.

    그런 나같은 사람한테 이런 친구의 의미는 참 크지만


    이 친구처럼 주변에 잘하고 사람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한테

    나같은 친구는 그냥 여자사람친구 중에 하나구나.

    내가 그렇지 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많이 뜸해졌다.

    사실 나도 공부가 빡센거라면 둘째가라기 서러운 학과를 나왔고

    이 친구도 복학하고 정신없었을 거다.

    또 실습을 서울쪽으로 가게 되어서 (고향은 경상도쪽)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한 2년만에 봤을까.

    친구집 근처 공원에서 봤는데,

    날씨는 좋고, 바람소리에 댓이파리들은 서걱거리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친구 만나니 난 참 좋더라.


    걷다가 벤치에 쉬게 되었는데

    어쩌다 그랬는지는 잘 생각 안나지만

    앉아서 친구한테 잠깐 기대게 되었다.


    좋더라.

    기대서 하늘보고 있는 게 참 좋더라.

    이렇게 얘한테 기대고 있으니 좋구나. 하는 생각 솔직히 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참 이 친구가 냉정했었다.

    잘 웃지도 않고. 말을 시켜도 시큰둥하고.

    같이 있어도 즐거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난 주변에 사람들이 잘 없어서

    아 얘도 드디어 나한테 뭔가 맘이 떠났구나

    난 정말 잘해주고 싶은 사람들한테도 제대로 못했었나보다

    얘도 자기 생활이 있고 나랑 접점이 없다보니까 이렇게 멀어지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난 다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서울로 취직했고

    고향에 있는 이 친구한테서는 연락이 안오고

    그렇게 시간만 지났다.


    가끔 1년에 한두번? 많아야 네다섯번? 정도 잠시 안부를 물었을 뿐.


    서울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름 똑똑하단 소리 듣고 컸지만 사회생활은 또 달랐다.

    스트레스는 폭식과 야식으로 이어지고

    징징거리는 남자친구는 감정적으로도 다른 면으로도 더 지치게하고

    결국 4년을 질질 끌다 헤어지고

    난 내가 점점 더 싫어지기만 했다.


    그렇지만 친구하고 연락할 때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소리는

    에이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네 정도였다.


    나이가 드니까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짝을 찾기 시작했다.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머리만 아팠다.

    인간관계의 좁음, 유지를 잘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컴플렉스가 많아서

    그렇게 한 사람을 믿고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오래오래 같이 지낸다는게 엄두가 안났다.



    그 날은 친한 언니가 결혼할 분을 소개시켜준 날이었다.

    다른 것보다, 그 형부되실 분이 언니를 바라보는 그 사랑스러운 눈빛이 너무 부러웠다.




    그랬다. 난 사랑받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하필 또 그 친구가 그날 연락을 했다.

    되도록이면 남자 얘긴 이 친구한테 안했었는데..

    (첫사랑때문에 꼬장부린 후에 너무 부끄러웠다 -_-)

    그 날은 외롭다는 소리가 그냥 나왔다.


    얘기해보라길래, 내가 원하는 사람 조건을 몇가지 이야기했다.


    사실 평소엔 '자격지심없는 백수 ㅋㅋ' 라고 하고 다니긴 했지만

    그 날은 좀 진지먹고

    날 많이 좋아했으면 좋겠고

    자상하고

    가치관이 바른 사람

    내가 뭔가 배울 수 있는 사람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사람 (내가 무교)

    가족과 제대로 독립이 되어 있는 사람

    뭐 이런 것들을 얘기했던 것 같다.


    걔가 '난데?' 그러더라

    뭐 다른 면이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야, 니는 내 안좋아하잖아. 

    날 여자로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된다고 그게 젤 중요하다고' 라고 했다.



    정말이지 그 긴 시간동안 걔가 날 여자로 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도 날 여자로 안 보는 사람은 단호히 끊을 수 있는 다행인 성격을 가졌고.

    날 여자로 안 보지만 호의로 대해주는 사람을

    내가 오해해버리면 도끼병도 그런 도끼병이 어디있겠나.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러면서 연락이 잦아졌다.

    난 또 내가 허전해하니까 얘가 사람 챙겨주는구나 싶었다.

    몇달에 한번 하던 연락이 거의 매일이 되면서

    '어, 혹시?' 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닌데,

    이 친구의 장거리연애불가론을 들으며

    아, 서울에 있는 나는 안된다는 간접적인 어필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던 것 처럼

    잘해주니 지 좋아하는 줄 안다. 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되기 싫었다.



    하지만 저 '난데?' 발언 이후

    아. 이 친구가 참 괜찮은 사람인데.. 라는 생각은 나한테서 점점 커져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낮잠을 자는데 이 친구가 꿈에 나왔다.

    신사적인 모습으로 내 입에 지 입을 딱 맞추는 꿈.


    깨고 나니 패닉이었다.

    난 왜 도대체 이런 꿈을 꾼 것인가.

    내가 얘를 남자로 보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 왜 근데 도대체 싫지 않은건가.

    꿈이라서 안 싫고 어색한건가.

    아니 근데 실제라도 괜찮을 것 같은 이 기분은 뭔가.


    @_@





    그 와중에 이 친구랑 연락을 하는데 계속 마음이 복잡했다.

    이 친구랑 사귀게 되면 어떨까 상상하게 되고..


    그런데 무섭더라.

    십년 넘게 알아온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거..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둘다 결혼 적령기고,

    둘다 짝이 생기면 이렇게 지내기는 힘들텐데

    어차피 그 때 서먹해질 거면 지금 잃은거랑 다르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직업이 정신적인 집중을 좀 요하는 직업이라

    도저히 이 놈 생각에 일이 안되는 거다.




    그래서 전화로 얘기해버렸다.

    나 : 니가 나 안 싫어하는 건 알겠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도 생각하나?


    이랬더니 무슨 말이냔다.

    뻔히 알 것 같은데 이런 식이니까 답답하더라.


    나 : 아 그러니까 난 니를 남자로 보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떠냐고!


    하니까 대답이 없다.



    나 : 싫으면 싫다고 하라고. 좀 마음은 안 좋겠지만 

          니가 아니라고 하면 끊을 수 있다. 나 그런 거 잘 한다.



    또 잠깐 침묵



    그리고 들려오는 말은..



    "내가 어떻게 싫다고 하겠노..

    니가 내 첫사랑이고.. 아직도 좋아하는데.."






    ........


    그렇게 난 내 인생 최고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난 친구로 지내는 내내 내가 더 좋아한다고 생각해왔고

    이번에도 나만 남자로 봤다고 생각했고

    잃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고백했는데...




    지금 백일이 조금 못 되어 아직은 좋기만 하지만,

    그래도 몇 안되는 연애를 하는 동안

    이렇게 내 생각과 잘 맞고 날 이해하려고 먼저 노력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려는 사람을 만나본 건 처음이다.


    똥차가고 벤츠온다는 말이 정말인 것도 알았고..


    정말 지금은 내 인생 최고로 충만한 연애를 하고 있어서 매일이 행복하다.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그러니까.. 남자사람친구를 잃고 애인이 생겼어요.

    이런식으로 훼이크를 써서 죄송하구요.



    그리고 사귀고 나니 남자친구가 오유인이었다는 게 유머네요.

    남자친구가 열심히 말렸지만 ...

    가입하고, 오유하는 남자친구가 보라고 여기에도 글 올려요.


    그러니까 제 글 읽으시고

    친구였던 사이에 고민하시는 분들 용기 내셨음 좋겠어요.

    신뢰가 쌓인 바탕에 애정이 더해지니 시너지가 장난 아니더라구요.

    남녀사이에 우정이 길게 지속되는 건 둘 중 한 사람은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Daydreamer의 꼬릿말입니다
    언젠가는 SKY. 남자친구도 저 만나기 전에 모쏠이었다고 했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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