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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흐린 날씨라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히 저쪽 옥상에 서 있었다. 짧은 핫팬츠를 입어서 저 여자의 아름다운 각선미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 동네에 저런 몸매의 여자가 있었다니, 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새벽에 담배 피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뿌듯하다. 항상 담배 피러 나올 때면 공허한 마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오늘은 분명 그런 날들과 다른 날이다. 자꾸만 눈이 간다. 안경을 가지고 나올걸. 왜 그동안 그리도 게임에 빠져 살았던 것인가, 내가 컴퓨터만 좀 덜 했다면 분명히 시력이 지금보다 나았을 텐데.
근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기에 저리도 가만히 있는 걸까. 이 날씨에 춥지도 않나. 왠지 측은해 보인다. 혹시 우는 걸까. 실연을 당했나, 내가 가서 그녀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새벽에 도대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옥상을 올라온 것일까. 그녀와의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텐데. 눈만 안 왔으면 그녀의 좋은 몸매를 좀 더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까마귀와 까치들이 오작교만 만들어 준다면 견우가 되어 뛰어갈 텐데. 아, 뭔가 아쉽다.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요즘은 눈만 마주쳐도 성추행이라며 신고하는 수준인데, 저런 여성을 이렇게 계속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리가 없다. 그녀가 내려가기 전까지 이곳을 벗어나기가 싫다.
어, 왠지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 그녀가 날 본 것일까. 이거, 계속 봐도 되려나. 망설여진다. 내 눈빛을 의식한 그녀가 옥상에서 내려간다면 이런 행복도 이제 끝이다. 잠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다. 어? 뭐지 이거, 하나, 둘, 셋, 오늘따라 옥상 위에 남자들이 많다. 항상 이 시각에 담배를 피러 나와 봤지만 이렇게 남자들이 많은 날은 처음이다. 더 웃긴 점은 이 남자들 전부 저쪽 옥상만 바라본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옥상 위에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경쟁자라고 해야 하나, 아니지 좀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건 공범이다. 동업자다. 다시 눈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살면서 저렇게 이상적인 몸매를 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이렇게도 흥분이 되는 걸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의 물이 넘치는 것을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미치겠다. 이거 그러니까 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저절로 두 주먹이 저절로 불끈 쥐어진다. 지금 내가 너무 변태적인가, 흥분을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고 여유롭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래 언제 그녀가 내려갈지 모르지만 아직은 여유롭다. 이렇게까지 흥분할 필요가 없다.
얼굴은 자세히 안 보이지만 작아 보인다. 분명히 예쁠 것이다. 코는 오뚝하고 눈은 자연스러운 쌍꺼풀이 있고 입술은 살짝 작으면서도 핑크빛이 맴도는 그런 입술이 있을 것이다. 자연미인일 것이다. 아니 뭐 성형 좀 하면 어떤가! 저런 몸매의 여성이라면 다 이해할 수 있다. 가슴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사실 가슴에는 관심이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다리가 너무도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비율이 좋다. 포토샵으로 작업한 것 같은 사진 속 배우가 저기 서 있다. 화보집을 보는 느낌이다.
혹시 이런 것을 변태라고 하는 건가. 뭐 어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다들 그녀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게다가 나는 그녀를 엎어뜨려 침대 위에 눕히고 싶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것에 만족할 뿐인데. 침을 흘린다거나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간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닌데, 좀 보면 어때! 닳는 것도 아니고! 예쁜 여자 쳐다볼 수도 있지! 뻔뻔해지자. 누군가 나에게 저 여자 봤지? 라고 묻는다면 그래 봤다 어쩔래! 라고 말 할 수 있도록 뻔뻔해지자. 그나저나 저런 여성을 앞에 두고서 이런 생각은 왜 하는 거지. 나도 참 소심한 인간이다.
기침소리가 들린다. 옆 주택 남자가 계속 콜록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억지로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설마 이 남자들 나처럼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걸까. 서로 자신은 변태가 아니라 담배를 많이 피우는 골초라고 항변하고 있는 걸까. 그럼 나와 다른 점이 없잖아. 아니다, 난 분명 저 수컷들과 다를 것이다. 그래 아직 저 여자를 가지고 불순한 상상을 한다거나 뭐 그런 것은 없잖아. 난 그저 저 여자가 아름다워 보일 뿐이라고! 난 아직 순수한 사람이라고. 물론 야동은 보지만. 그건 아주 본능적인 일이잖아.
그나저나 그녀는 왜 계속 가만히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그토록 오래하는 걸까. 그렇게도 고민되는 일이 있나. 왠지 내가 가서 그녀의 고민을 상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이곳에 늑대들과 다르게 나만은 순수하게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다. 나는 천한 수컷들과 다른 유일한 왕자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래 저런 몸매로 살면 얼마나 똥파리들이 많이 꼬이겠어. 나라도 그녀를 편하게 해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주위 남자들이 하찮게 보인다.
사실 나 정도면 괜찮잖아. 내가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만 꾸미면 그녀와 거리를 걸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걸. 그래, 나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지. 저쪽 옥상 남자보다 내가 키가 좀 더 큰 것 같고, 저쪽 남자보다는 내가 좀 더 잘생긴 것 같고, 이거 뭐야 나보다 괜찮은 남자가 하나도 없잖아. 어딘가 무거웠던 마음이 점차 가벼워진다.
근데 혹시 그녀는 이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표정이 보이지는 않지만 웃고 있을 수도 있다. 마음껏 감상해 미천한 수컷들아, 라고 생각하며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을 수 있다. 새벽에 나온 여자가 외로워서 나왔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잠깐, 뭐, 오히려 더 좋은 거잖아. 왜 나는 이런 것에 집착하고 있지? 그래 마음껏 감상해주마. 다시 그녀의 종아리부터 얼굴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보면 볼수록 흥분된다. 이것은 본능이다. 그래 이것은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의 행동이다.
여자가 한명 더 나온다. 그녀보다는 약간 떨어져 보이는 여자가 그녀가 있는 옥상으로 걸어 나온다. 친구인가. 데리러 나온 것인가. 안 돼, 그러지마. 아직 조금 더 감상하고 싶어. 지금 걸어 나온 저 여자를 다시 돌려보내고 싶다. 그녀에게 다가간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이제 이런 행복도 끝인가. 다른 생각하지 말고 감상이나 열심히 할걸. 자연스레 한숨이 나온다.
먹먹한 가슴을 뒤로하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다. 상의를 벗기고 어느새 하의를 벗기고 있다. 뭐지 잠깐만 이게 뭐야. 내 몸이 점점 딱딱해져갔다. 내가 생각한 전개와 전혀 다른 전개였다. 여자끼리 저러는 모습은 처음 본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계속 쳐다봐도 괜찮은 걸까. 이러다가 무슨 문제에 휘말리는 것은 아닐까.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 건물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에게 무슨 사인이라도 보내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그래 뭐 어때!
“어휴, 괜히 마네킹한테 옷 입혀놨네. 이게 뭐람, 다 젖었잖아. 어떡하지 진짜. 근데, 왜 저 남자들 다 여길 보고 있지. 변태들같이.”
친구는 들어가고 옷을 벗은 그녀만이 홀로 서 있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니, 마음껏 감상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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