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픈데 먹을게 없어서 음슴체
베오베에 있던 유명한 전통 있는 빵가게 글을 보고 있었는데... 중간에 경주 특산물은 경주빵이라는 문장이 몹시 거슬렸음.
저는 어머니의 고향, 그러니까 외가댁이 경주임. 그런데 어릴적엔 외가댁을 거의 이 주 일 주에 한 번 꼴로, 주말만 되면 놀러가는 정도로 드나들었음.
경주엔 볼 거리가 많잖음. 애들한텐 지루할지도 모르겠지만 석굴암 불국사를 필두로 왕릉 유적지 박물관의 천국임.
그렇게 경주를 돌아다니다보면 매번 꼭 들리는 곳이 황남빵 가게. 혹은 그냥 외가댁에서 놀고 있으면 친척 중 한 사람이 사들고 들어오기도 했음.
그래서 외갓댁 식탁이나 냉장고엔 거의 항상 황남빵이 있었고, 난 유년 시절 내내 황남빵을 먹으면서 자랐음.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어느 날 오랜만에 경주를 찾았더니 웬 경주빵이라는 상표가 온 시내에 도배 되어 있었음.
좀 지나니 찰보리빵 가게까지 합세해서 아예 길 하나가 끝에서 끝까지 고개를 휙 돌리면 경주빵이랑 찰보리빵 가게 간판만 보일 정도.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난리임. 확실히 찰보리빵은 맛있는 가게에서 먹으면 꽤 맛있었음. 헌데 황남빵이랑 굉장히 흡사하게 생긴 이 경주빵이란 녀석은
뭘 먹어도 황남빵의 그 맛에 못 따라왔음. 감히 이런 놈이 황남빵의 아성에 도전을..! 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다른 도시에 와보니
다들 경주하면 경주빵이 원조이자 최고인걸로 알고 있지 않겠음... 이 때의 내 기분은 어린시절의 뭔가를 부정당한 기분이었음...! ㅜㅜ
경주나 근처 토박이 분들은 다 아시리라 생각함. 경주의 팥앙금빵은 황남빵이 진짜진짜 원조라는 거슬.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촉촉하고, 밀도가 엄청나게 높음. 그래서 사실 마실 거 없이 먹으면 좀 목메이기도 함... 먹을 땐 우유 필수임.
앙금은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로 맛있게 달아서, 팥 같은 거 싫어하는 애기들도 대체로 잘 먹음.
갓 만들어내서 따끈한 것도 맛있고, 실온에 냅뒀다 주워먹어도 맛있고,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다음에 먹는 것도 무지무지 맛있음.
막상 먹어보면 엄청나게 맛있어 죽겠다! 그런 맛은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자꾸 주섬주섬 계속 찾게 되는 그런 맛임.
앞서 말했듯 밀도가 높아서 한꺼번에 와장창 흡입하기는 좀 힘들지만. 내 경우엔 한 번에 세 개 정도가 한계임.
내 사촌들도 맨날 외가댁 가면 옆구리에 황남빵 상자 끼고 이건 뭐 그렇게까지 맛있는진 모르겠는데 자꾸 하나 둘 먹게 된다고 함.
천마총 옆에 있는 진짜 원조 황남빵 가게를 방문하면, 가끔 운이 없어서 좀 기다려야 할 때도 있음.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진 않은데 한꺼번에 와장창 사가는 건지 뭔지 삼사십분 기다리래서 포기하고 돌아간 적도 있었음.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경주빵이 황남빵에서 일하던 사람이 레시피를 빼돌려서 만든거네 뭐네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뭐 일단 경주빵 홈페이지에 보면 제대로 전수 받은 것이라고 쓰여 있긴 함.
황남빵은 1939년에 故최영화 옹이 처음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셨고, 경주빵 장인의 소개글을 보면 최영화 옹에게 직접 전수 받은 후,
다시 최영화 옹의 자제분에게 전수를 하고, 1978년 경주빵 상호로 독립했다고 되어 있음.
그런데 뭐 독자적 상호로 히트를 크게 못쳤던건지 아니면 내가 접할 기회가 없었던 건지 난 대학생이 될 때까지 '경주빵'이란 상호가 있는지도 몰랐음;
경주하면 황남빵, 황남빵하면 경주. 뭐 그랬던거임.
사람들 말에 의하면 황남빵이나 경주빵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평도 있고, 엄청나게 차이난다는 말들도 있음.
아마 경주빵 중에서도 황남빵에서 뻗어나온 집에서 먹었는가, 정말로 베끼기만 한 경주빵의 짝퉁경주빵집에서 먹었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함.
그래도, 어쨌든, 난, 경주의 특산물은 황남빵이라고 굳게 주장할 것임. ㅜㅜ 이건 양보할 수 없음.
경주가면 황남빵 한 번 쯤 꼭 드셔보세여. 옆의 천마총도 구경하고, 두 번 드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