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이 글의 주제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언어의 관계입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부분은 "우즈베키스탄의 문자정책"입니다.
우선 우즈베키스탄의 언어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대다수가 "우즈벡어 (Oʻzbekcha)"를 쓰고 일부 소수 주민들이 러시아어를 씁니다. 우즈벡어의 역사는 중앙아시아의 격동적인 근대 상황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우즈벡어를 소개하기 앞서, "튀르크어족"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튀르크어족"은 세계 주요 어족(서로 민족적, 역사적으로 연결되는 언어들을 묶어 놓은 족, 생물학에서 생물을 분류하는 방법을 생각하면 편합니다) 중 하나로, 튀르크어족에는 터키어, 아제르바이잔어, 튀르크멘어, 카자흐어, 우즈벡어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의 문법은 한국어의 그것과도 유사하여 최근까지 한국어를 튀르크어족과 같은 분류로 묶어 "알타이어족"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폐기된 학설입니다. 문제는 국어 교과서에서 "알타이제족"이라고 소개를 하는 데 "어족"과 "제족"의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한국어와 터키어가 같은 어족인 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생물학으로 비교하면 "어족"은 DNA등 다양한 관점에서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확인 된 묶음이고 "제족"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서 그냥 "유사한 성질을 띄는 것"이라고 묶어 둔 것입니다) 어쨌든,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대부분 "모음조화"를 하고, 접사를 활용해서 단어의 뜻을 보충합니다.
우즈벡어는 위에서 설명한 "튀르크어족"의 특징에 약간 빗나갑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즈벡어는 "모음조화"가 철저히 파괴된 상태입니다. 우즈베키스탄 내부에서 여러가지 방언이 있는데 그 중 페르시아 제국 (현 이란)과 가까워서 페르시아어의 특징을 많이 닮아간 방언이 있었습니다. 그게 하필 수도에서 쓰이는 방언이어서 그 방언을 표준으로 하다 보니 페르시아어를 닮아버려서 "모음조화"는 사라지고 정작 페르시아에서 긴 "ㅏ"모음을 "ㅗ"처럼 발음하는 걸 영향을 받아서 우즈벡어도 쓸데없이 "ㅗ"발음을 남발합니다. (예를 들어, "~스탄"이라는 말도 우즈벡어로는 ~ston입니다. 우즈베키스탄: Oʻzbekiston)
서론은 이쯤 마치고 우즈벡어의 문자 체계에 대해서 설명하려 합니다. 한국어도 과거에는 표기문자가 없어서 비효율적인 한자를 빌려 썼듯이 (이두, 향찰 등) 우즈벡어도 적당한 표기문자가 없어서 아랍문자를 빌려씁니다.
그러다 보니 "글자를 아는 건 귀족이나 상인 또는 성직자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길 정도로 문맹이 심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동방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우즈벡 지역도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20세기 초의 러시아 혁명도 우즈벡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소련의 지도자인 레닌은 공산주의가 뿌리 내릴려면 사상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정된 아랍문자", "로마자", "키릴문자"가 검토되었습니다. "수정된 아랍문자"는 아랍문자는 결국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먼저 제외되었고 민족주의를 혐오했던 레닌은 러시아어에서도 쓰이는 "키릴문자"가 체택될 경우 러시아어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세력을 얻게 되어 러시아-민족주의가 세를 불릴 것을 경계하여 "로마자"를 체택합니다. 곧 1928년, 우즈벡어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언어를 표기할 로마자의 수정버전이 최고 소비에트에서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1924년 레닌이 죽고 스탈린은 "애국"을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 "러시아-민족주의"를 키우는데 레닌이 실시했던 중앙아시아 언어의 로마자화 정책이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까라면 깔 수밖에 없었던 소련의 언어학자들은 기존에 폐기되었던 "중앙아시아의 키릴문자 보급 정책"을 실시하게 됩니다. 우즈벡어도 예외는 될 수 없어서, 1940년 우즈벡어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언어를 표기할 키릴문자 수정버전이 발표됩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우즈벡어 표기방안으로 키릴문자가 거의 완벽하게 정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아무 일도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소련이 붕괴하고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독재자가 집권하게 됩니다. (이 양반 아직도 집권 중입니다.) "탈러시아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이 양반은 "키릴문자는 아직 우리나라가 러시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독립을 위해 키릴문자를 버려야 한다"라며 로마자 표기를 다시 도입했습니다. 1928년에 발표됐던 로마자 표기와는 완전히 다르며, 서로 연관성도 없는 표기입니다. 이 표기가 현재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공식 방안입니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터집니다. (사실 본문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우즈벡 정부는 키릴문자에 익숙한 기존 세대들에게 어떠한 교육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자의 도입은 1992년 이후입니다. 그 말은 즉 30대 이후 세대는 키릴문자로 교육을 받았고, 이들은 1992년 이후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문맹이 돼버린다는 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세대들은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주역입니다. 우즈벡의 독재자는 "그냥 바꿔 두면 지들이 알아서 새로운 로마자 표기를 독학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가만히 놨둡니다. 그리고 결과는 그 때까지 못살던 이웃인 카자흐스탄이 우즈베키스탄을 아득히 초월하여 중앙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우즈베키스탄의 실패는 단순히 "로마자로 바꿔서"일까요? 우즈벡과 거의 동시에, 이웃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도 같은 생각으로 "튀르크멘어"의 로마자 표기를 도입합니다. 그리고 현재 거의 전국민이 튀르크멘어의 로마자 표기를 능숙하게 읽게 되었습니다. 즉, 단순히 로마자로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주요층이 문맹이 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즈베키스탄의 독재자는 "자주성"은 생각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행정적 문제" 및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을 지는 몰라도 그로 인해 국가 기반을 완전히 망가뜨린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각 국가의 일인당 GDP(PPP)는 2014년 기준 우즈베키스탄은 $5,609, 투르크메니스탄은 $14,174, 카자흐스탄은 $24,143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