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구름~~
작성일: 2014-04-25 (금) 21:27
통일대박론의 허구성에 대하여 7
지금까지의 글을 통해서 분단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통일의 개념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분단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한국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해방 후의 조국에서 어떻게 친일파들이 득세를 하고, 해방의 대박을 챙기게 되었는지, 어떻게 항일투사들이 죄인이 되어 쫓겨다니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것과 엇비슷한 이야기로 들린다. 피는 항일투사들이 흘리고 그 과실은 친일파들 몫이 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우익의 원죄가 되었고, 좌익의 정통성과 정당성의 토대가 되었다. 좌익들이 큰소리치는 바탕에 항일이 있고, 우익이 움츠러드는 자격지심에는 친일이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진실은 아니다. 팩트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착시인 것이다. 망국의 초기에는 항일독립운동이 있었다.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이 그랬고, 31운동을 비롯해서 안중근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장렬한 의거가 그러했고, 청산리, 봉오동의 가열찬 전투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런 항일독립운동은 길게 잡아도 20년대 말까지였고, 그 이후에는 항일독립운동이란 사실상 명색뿐이었다. 상해임정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을 뿐,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은 씨가 말랐고, 만주의 독립군들은 산산히 흩어져 중앙아시아로 근거지를 옮겼다.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독립운동은 거의 소멸된 상태였다. 연합군의 승전에 유의미한 공헌을 조금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합군이나 전후의 유엔에서 임시정부는 인정조차 받지를 못했으며, 미군정은 임시정부요인들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제시대에 생겨난 항일투사들은 무엇일까? 지리산에서 일본에 맞서 처절한 유격전을 했던 구빨들은 뭐냐 이 말이다. 그들은 해방 후에 항일투사로 자처했고, 친일세력을 비난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결코 항일독립투사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일본제국에 저항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산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항거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계급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싸웠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외적과 맞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으며 후대에 가르치지도 않고 있다.
일제시대 좌익의 대부분은 소작농들이었다. 그들이 싸운 적은 일본제국이 아니라 악랄하게 소작인들을 착취하는 지주들이었다. 그 지주들 중에는 일본인도 있었지만 조선인 지주들도 많았다. 소작쟁의는 일본인 지주들보다는 조선인 지주들을 향해서 더 많이 벌어졌다. 지주들을 감싸면서 이들을 탄압한 것이 왜인들의 법이고 왜인들의 경찰이고 왜인들의 사법이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이들의 투쟁 상대가 일제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기실에 있어서 이들의 적은 지주와 기업인들이었고, 태반은 같은 조선사람이었다. 좌익 항일투사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소작권과 생존권을 위해 싸웠다. 한 떼기의 땅을 가지고 싸운 사람들이지 조국이나 독립 같은 것은 머리 속에 있지도 않았다.
그들의 투쟁은 계급투쟁이었으며, 그들의 적은 유산계급이었다. 지주와 자본가들이 타도의 대상이었지 일본제국이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해방이 되었다 해서 그들의 적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국의 적은 물러갔지만 계급의 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히려 본격적인 계급의 적에 대한 전쟁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었다. 이들이, 그리고 이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항일투사로 자처하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을 친일파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계급투쟁의 전사들이 항일독립투사로 위장한 역사이며, 이 사기극은 보기좋게 성공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해서 지금도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고 있는 중이다. 좌익=항일, 우익=친일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는 것이다.
이 등식을 깨고 진실을 드러내야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문을 열 수 있다.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