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을 봤는데 워낙 정신이 없었습니다.
긴장감이 넘치고 몰입감이 장난아니라서 긴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한순간도 호흡을 놓치고 않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드는 생각.
"잉? 그래서 뭔소리야 이게?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겨?"
일단 주인공인 곽도원을 제외하고 나서 대립구조는
무명 VS 일광+일본인
이 되게 되는데 어느 한쪽 편을 들어도 썩 개운치가 않습니다.
한쪽이 옳은 것 같지만서도 막상 편을 들고나면 영화에서 나온
몇몇 장면들에 대한 해석이 깔끔하지 못하고 의구심이 들거든요.
그렇다고 다시 반대쪽 편을 들게 되면 마찬가지로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도 말이 되고 저렇게 해도 말이 되고.....
도대체 뭐가 진실인거지???
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구요.
생각을 해보니 이게 바로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죠.
영화내에서 확실하게 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의도된거죠.
어느 쪽을 선택해도 확실한 것은 없다.
결국은 누가 옳고 그른지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다음 인터뷰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홍진 : 이 영화는 피해자에 대한 영화다. 피해자로 시작된 영화에서 마지막에 피해자에 대해 한마디 없이 끝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홍진 : 만약 이것이 실화라면 우리는 인터넷에서 이 사건을 기사로 접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그 기사 단순 사실로 보고 넘어가기보단 계속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보려고 했다.
나홍진 :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 죽지 않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죽었다. 당시 '황해'가 끝나고 난 뒤였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선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났으니깐. 장례식에서 예배를 드리고 스스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확장하고 확장했다. 그렇게 찾은 이유를, 시선을 부감으로 와이드해서 봤더니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영화는 어떤 사건들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사건을 막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나.
어째서 피해자들은 사건을 막지 못하고 파멸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나.
피해자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
나홍진 감독은 이 대답을 영화를 통해 드러내보인겁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전적으로 곽도원입니다.
피해자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 수 있죠.
영화의 대부분은 사실 곽도원의 시각에서 진행이 됩니다.
일부 전지적 시점도 나오긴 하지만 극소수일 뿐이고 사실 영화 전반적으로 보자면
곽도원=피해자의 시각으로 진행된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러가지 디테일한 상황들이 나옵니다만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어차피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결국 종전에 가서는 하나로 귀결되게 됩니다.
무명 VS 일광+일본인.
누가 착한 사람인가?
내 딸과 가족을 살리려면 누굴 선택해야하나?
(사실 사람이 아닌 초월적 존재지만 편하게 사람이라 칭하겠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대부분의 관객분들은 분명 위와 같은 생각을 했을거라 생각됩니다.
처음 제가 들었던 생각처럼 "무명이 착한 사람이야, 일광(+일본인)이 착한 사람이야?" 혹은
이미 둘 중에 하나를 착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면 이미 피해자의 관점에 들어서게 된겁니다.
사실 이 사건의 진짜 원인은 이미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속신앙을 나타내는 무명이나 일광, 일본인, 부제가 나타내는 서양적 종교신앙인 카톨릭은
이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네이버 영화 줄거리에서도 나오죠.
경찰은 집단 야생 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사건의 원인은 야생 버섯 중독입니다.
영화 내의 TV에서도 나오죠.
하지만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그걸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TV가 나올 때 부제는 분명 보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종전에 가면 그와 상관없이 일본인에게 정체가 무엇이냐고 따지죠.
어찌보면 이성과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종교적 신앙심에 집중하게 되는겁니다.
부제는 본인의 종교인 카톨릭에, 곽도원은 토속신앙에 기대하는겁니다.
어차피 누가 옳으냐를 선택하면 안되는거였습니다.
이미 무명이나 일광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도 잘못된 선택인겁니다.
어찌보면 곽도원은 영화내내 정말 고생을 했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의미없는 행동을 했던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바보같이 종교 따윌 믿어서 그런 비극을 스스로 초래한 멍청이들이냐?'라고 하면
"절대로 아닙니다."
감독은 말하는겁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건 절대로 어리석거나 바보같은게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선택을 하는게 정말로 당연한거다.
왜냐고?
이미 무명이나 일광, 일본인을 가지고 선악을 구분하거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마치 피해자인 곽도원의 입장처럼 관객인 여러분들도 해석하고 있지 않느냐?
라구요.
단적인 예를들어 보겠습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곽도원은 정말 고군분투합니다.
피해자인 곽도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인을 원인이라 판다하고
그를 살인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가장 최악의 범죄인 살인이라는 걸 곽도원이 선택했지만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 중에서 "아무리 그래도 살인이라니! 저런 곽도원 나쁜 범죄자 쒜끼!"라고 욕을 하셨나요?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구요.
최악의 범죄인 살인조차 용인하게 됩니다.
피해자인 곽도원의 입장에 서게 되면요.
영화에 몰입하다보면 대부분 곽도원의 시각을 따라가기 때문에
"일본인이 악마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곽도원이 일본인을 죽이는 선택을 하게 되도 "그래, 그럴만 해. 딸을 살려야해고 저 놈은 나쁜 놈이니까." 생각하게 되죠.
피해자의 입장에선 그 선택이 최선이고 합리적 선택이 됩니다.
그 상황 속에 갇히게 되면 선택의 폭이 제한되고 강제된다는거죠.
그리고 덧붙여서 감독은 이러한 인간의 선택이 오래전부터 내재된 본성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걸 마지막 장면인 동굴에서 일본인과 사제의 대화를 통해 감독은 확인시켜준다고 생각되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건 아니야.
어찌보면 이건 인간의 변할 수 없는 본성일 뿐이거든.
간단한 예로, 예수는 정말 예수였을까?
사실 예수는 구원자가 아니지 않았을까?
악마가 예수를 사칭하고 우리를 속인거라면?
우리는 그것을 알 수가 있을까?
아마 모를거야.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고.
하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밖에 없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는거지.
그러니 혹여나 잘못된 선택을 한 피해자들이 있으면 그에 대해 비난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심지어 피해자 본인도 자기비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저는 감독이 혹여나 이 세상에 있을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상 뻘글이었씁니다!
끝. :)
ps. 글을 쓰다보니 좀 굉장하네요.
이건 사실 글 쓰다가 갑자기 든 생각인데 곡성은 영화라는 장르를 넘어섰다고 봅니다.
관객들을 가지고 일종의 실험을 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
'피해자들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졌던 것이 아닐까.
그 상황에 빠지면 그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던게 아닐까.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도 피해자의 입장이 되면 피해자처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감독이 진짜 영화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ㅎㅎ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