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오색딱다구리를 위한 송가
'마리텔'을 통해서 오랜만에 TV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낸 종이접기 아저씨. 혹시나 자신을 다들 잊지 않았을까 하는 아저씨의 우려와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등장에 환호했다. 한때 아저씨가 나오는 시간대면 우르르 TV 앞에 앉아서 너도나도 색종이를 들고서 낑낑대던 꼬맹이들이 이제는 나이 지긋한 성인이 되어 다시 그때마냥 얌전한 꼬맹이처럼 아저씨 앞에 앉았다. 단 하나의 악플도 볼 수 없었다는 제작진의 반응처럼, 이때만큼은 다들 종이접기에 눈을 빛내는 순진한 꼬맹이들에 지나지 않았다.
김영만씨에 대한 2-30대의 환호는 예사롭지 않다. 혹자는 추억팔이라고도 하겠고, 혹자는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예전의 감성을 떠올리고 싶어하는 욕망의 발로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김영만씨에 대한 환호를 설명할 길이 없다. 추억팔이가 목적이라면 컨텐츠만 되살려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이접기'에 열광하지 않았다.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씨에게 열광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목마름'에서 비롯된 열광이다. 지금의 2-30대, 특히 김영만씨를 브라운관에서 마주쳤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의 청년 계층들은 어찌보면 어른들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세대에 가깝다. 그 시절만 해도 착하게 어른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면 너도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렇게 배워온 세대고, 그렇게 믿으면서 성장했던 세대다.
그런데 이들이 철들 무렵에 IMF가 터졌고, 이들이 산업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무렵에 금융대란이 일어났다. 시키는 대로 착하게 살면 너희들에게도 탄탄한 길이 열릴 거라고 말하던 '어른'들은 어느새인가 얼굴을 바꾸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희들의 밥줄을 끊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청년세대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TV브라운관을 마주한 채 종이접기에 열중하던 순진한 꼬맹이들은 어느새 결혼과 출산 따위를 포기한 3포, 5포, 7포 세대가 되어갔다.
어디에서도 존경할 만한 어른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그들을 인도했던 어른들 가운데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은, 혹은 그 민낯마저 갈아치워버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으니까. 어른이어도 도무지 살 방도를 찾기 어려운 지금의 시대에 그저 어른들을 탓할 수만도 없었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어른의 위대함을 믿어왔던 이들이기에 그 배신감과 실망감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그들의 귀에 대고 "고생은 젊었을 때 해야지!", "결혼하고 애를 낳아봐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 따위의 기만 가득찬 조언을 날리는 어른들을 접할 때마다 그러한 감정은 더욱 증폭되었으리라.
그렇게 지친 청년들 앞에 다시 얼굴을 드러낸 김영만씨는 여전히 옛날 모습 그대로였고, 여전히 따스했으며, 여전히 아이들을 대하는 듯한 동일한 '믿음'으로 청년들을 대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에요." 이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청년들의 가슴을 직격했는지는 그 세대가 아니고서는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간 열정페이니 뭐니 하면서 일방적인 착취와 노력만을 강요당해왔던 이들이, 혹은 '아프니까 청춘' 류의 기만 섞인 상품적 위로 따위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비로소 진심어린 '위로'를 만나고야 만 것이다.
이러니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영만씨에 대한 청년들의 열광은, 뒤집어 말하자면 지금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크기에 정확하게 비례할 것이다. 오직 종이접기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김영만씨의 행보는, 말바꾸기와 면종복배 따위에 지쳐버린 청년들에게 '신선한'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손이 야무지지 못한 꼬맹이들에게 친절하게 종이접기를 가르치던 아저씨가, 이제는 손은 야물어도 마음이 야물지 못한 청년들에게 다시 친절하게 '삶'을 접어주고 있다.
말하자면 청년들은 광릉수목원에서 오색딱따구리를 목격한 윤무부 교수의 환희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천연기념물 마냥 더 이상 목격조차 하기 힘든 게 되어버린 '진짜 어른'을, 그것도 예전부터 알고 있던 그 어른을 오랜만에 재회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멸종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서조차 지워져가던 존재이니, 청년들이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청년들이 어찌, 여기에 날선 악플 따위를 달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