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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큰아들 모안영은 1927년 아버지 모택동이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대장정을 떠나자
남아있던 어머니와 모안영은 국민당군에 체포되어 어머니는 처형당하고 모안영은 길에 버려짐.
동생들과 상하이에서 거지생활을하며 힘들게 살다가 공산당원들에게 겨우겨우 발견되어
소련으로 군사유학을 떠남.
소련에서 학교를 마치고 기갑부대 장교가 되어 소련군에 입대.
전차를 지휘하며 독일군을 쳐부수며 베를린까지 밀고 들어감.
2차대전이 끝나고 중국으로 돌아온 모안영은 중국인들의 미래와 희망이 되어 사랑받음
당시 모택동에게는 아들이 두명있었는데 둘째는 정신이상자..
똑똑하고 결단력있으며 능력있고 성품까지 괜찮았던 모택동의 큰아들 모안영은
사람들에게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사람으로 여겨졌음.
좋던시절 아빠와 아들
한국에서 6. 25 전쟁이 발발하자
결혼한지 딱 1년 된 모안영은 아내를 뒤로하고 중국군 소속으로 북한으로 떠남.
중국군 총사령관 팽덕회의 부관으로 보직을 받은 모안영은
북한에 도착하고 3주 만에 미군의 폭격으로 전사함.
시신이라도 되찾아 올 수 있게 해달라는 며느리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모택동은 지시를 내림.
"" 인민의 수많은 소중한 자식들이 그곳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곳에 묻어라 ""
결국 모택동의 거의 유일한 희망이자 중국의 미래였던 모안영은 북한땅에 무덤이 만들어져 그곳에 묻혔고
그 소식을 들은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자식이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함.
북한에 있는 모안영 무덤.
이곳은 중국사절이 북한에 갈때면 항상 들러서 참배하고 간다고 하며 북한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고 함.
이 일은 북한과 중국이 서로를 피로 나눈 동맹으로 생각하는 상징이 됨.
그리고 세습이 확실시 되었던 중국은 모안영의 사망을 계기로 정치적 지형이 변하게 되었다고 함.
p.s 6. 25 에 참전한 미군측 노블리스 오블리제
미군 주요장성의 자녀 142명 참전. 35명 사상
주요인물
아이젠하워 미국대통령 아들 전사
밴플리트 미군 총사령관 아들 전사
클라크 UN군 총사령관 아들 전사
미군 워커 중장 - 본인/아들 같이 전사
p.s 2 이승만 - 북한이 쳐들어오자 서울은 안전하다고 녹음된 라디오 방송을 틀고 도주
부산을 버리고 일본으로 도망칠 계획을 짰으나 미군의 개입으로 실현되지 못함.
심지어 짱개도 우리보다 낫다는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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