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까지 떨어졌다. 국정원 사태에도 꿈쩍하지 않고, 세월호 참사에도 꿋꿋이 버텼던 지지율이 언젠부터인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앞선 대통령들의 최저 지지율과 비교할 정도로 제법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콘크리트 지지율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청와대와 여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MB의 경우 광우병 파동 당시 워낙에 촛불에 크게 데었던지라 이후 지지율이 아무리 떨어져도 무감각하게 국정을 운행할 수 있었는 데 반해, 박 대통령의 경우는 지지율이 이렇게 떨어진 자체가 처음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만 하더라도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할 만큼 청와대의 자신감은 밑바닥이다.
물론 대통령이 그까짓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대통령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의 추이를 볼 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금방 회복될 수도 있다. 2012년 대선 때도 그랬지만 박 대통령의 많은 지지자들은 항상 대통령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언제든지 그를 믿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청와대는 이번 지지율 하락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콘크리트 지지율의 균열은 이미 현 정권에 대해 기대를 접은 20~40대가 아니라 50대 이상들의 이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던 이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 시점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것일까? 난 그 해답을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하던 아버지,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 이상에서 흔들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그 세대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 즉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가장 크게 지배했던 집단적 기억은 한국전쟁이었지만, 65년이 지난 현재에는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겪은 세대 보다는 그 처절함을 글로 보고 이야기로 들은 이들이 더 많은 것이다. 대신 지금의 50대 이상은 소위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했던 그 시대를 자신의 시대로 각인하고 살았을 것인데 그때 사회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절대 죽을 것 같지 않은 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혹자들은 덕분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앞당겨졌다고도 평가하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서 평가하느냐 마느냐는 국민들에게 부차적인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여 북한이 이를 계기로 쳐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김재규와 차지철 간의 권력투쟁은 국민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겨졌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의 죽음을 종종 민주주의와 경제와 관련시켜 구조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당시 국민들에게 박정희의 죽음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존재가 밑의 권력투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죽은 하나의 비극이다.
그런데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는 정확하게 박정희 대통령의 말년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아버지만큼 독재자는 아니지만, 현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동일시한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36년 전의 권력투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박지만과 정윤회, 비서실장과 십상시 등 그 모든 것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2년 동안 한 일이 없다고 해도, 경제는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해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믿음을 거둬들이지 않던 70대 아버지가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씀하신 건 결국 이번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였다. 아버지에게 이번 사건은 한낱 '찌라시'의 소문이 아니라 구중궁궐에서 흘러나오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서막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 끝이 비극으로 점철되리라는 것을.
70대 아버지의 쌈짓돈 털어간 정부에 대한 배신감
아버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해 터뜨린 또 하나의 불만은 역시나 이번 연말정산 사태 등에서 느꼈던 배신감이었다. 절대 증세는 없다고 했다가 몇 푼 되지도 않는 70대 아버지의 월급마저 위협하는 정부.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전 공약을 깨고 노인연금을 줄인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렇게 심하게 노하지 않으셨다. 나라의 경제 사정이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TV에 나와 부탁하겠느냐며 오히려 박 대통령을 두둔하셨다.
그러나 올해 연말정산을 통해 아버지가 지난해에 뱉어내셔야 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고 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노인연금이야 원래 없던 거 받으시면 더 좋았던 것 뿐이니 참을 수 있지만, 당장 연말정산을 통해 걷어가는 세금은 당신의 수중에 있던 쌈짓돈을 가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올해 많은 이들의 금연을 이끌고 있는 담뱃값 인상 역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에는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50대 이상 학벌이 낮고 살림살이가 팍팍할수록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데, 이번 담뱃값 인상은 바로 그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5천 원 한 장을 내고 담배 한 갑에 소주 2병은 샀는데, 이제는 5천 원을 내고 담배 한 갑에 500원 거스름돈을 받으니 어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대통령이 이러면 곤란하다고.' 있는 사람의 세금은 걷지 않으면서 서민들의 등골만 빼먹으면 어찌 하냐는 아버지의 말씀. 박근혜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크게 바꾸지 않는 이상 지지율의 반등이 어렵게 보이는 이유이다.
아버지는 재작년 국정원 사태와 지난해 세월호 사태를 지켜보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크게 질책하지 않으셨다. 국정원 사태야 그 전 정부가 모두 했었던 일일 뿐이고, 세월호 침몰은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정부의 대응이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의 마음 한 켠은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버지 주위분들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식들을 비롯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져 가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따라서 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신년기자회견을 기다렸다고 한다. 소위 십상시나 문고리 3인방에 대해, 증세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시원하게 해결하고 가기를 바랐다고 한다. 아버지나 그 친구분들은 박 대통령을 지지할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을 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의혹을 부인했고, 모든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는 밑의 사람들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비록 총리는 바꾼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요지부동이요, 그 옆의 행정관이나 비서관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안타까운 만큼 절망하셨다. 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면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설 것인데, 박 대통령에게서 그럴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준엄하게 훈계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그럴 만한 건덕지를 주지 않는다. 피곤할 수밖에.
아버지 세대들에게도 대통령의 소통능력은 중요하다. 비록 그들이 좋아하는 박정희 대통령 역시 소통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이후 민주화시기를 거치면서 대통령의 소통 능력은 당연한 덕목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하지만 50대 이상 어른들에게도 민주주의는 기본 전제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대다수 국민들의 이야기를, 심지어 그를 지지하는 자기들의 바람 역시 듣지 않는다니 이는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요소는 모두 박근혜 대통령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부디 이 모든 걸 해결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는 아직까지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지지율은 반등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