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이 영조 갑인(甲寅) 연간에 영남 감사를 지냈는데, 하루는 통판(通判) 정언해(鄭彦海)와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통판이 관아에 와서 잠을 자려는데 감영의 종이 평복으로 신속이 들어오라는 순사(巡使)의 전갈을 전했다.
통판이 탕건과 의복을 단정히 하고 들어가 순사를 뵈니, “통판은 날이 밝으면 칠곡에 가서 나이 들어 퇴역한 아전 배이발(裵以發)과 아우인
지금의 아전 배지발(裵之發)을 잡아들이시오. 그 후 이발에게 자녀가 있는지 물으면 그는 딸 하나 있었으나 죽은 지 오래라고 할 것이오.
그를 앞장세워 장사 지낸 곳으로 가서 그곳을 파서 시체를 확인하면 십 칠세 가양의 여자로 생김새는 이러이러하고 옷은 옥색 명주 저고리와 남색 무명 치마를 입었을테니 살펴보고 오시오”하였다. 통판은 놀라며 기다리지도 않고 즉시 떠나 칠곡으로 갔다.
칠곡에 이르러 통판은 바로 두 아전을 잡아오도록 명하여 이발에게 자녀가 있는지를 묻자, 딸 하나가 있는데 계년(笄年:비녀를 꽂는 나이, 15세)에 병으로 죽어 장사 지낸 지 거의 십년 쯤 된다고 하였다. 장사 지낸 곳을 묻자 관부에서 십여 리쯤 된다고 하였다.
통판은 그에게 칼을 씌우고 두 아전을 앞세워 장사지낸 곳으로 갔다. 무덤을 파고 시신을 꺼내니 얼굴빛이 평시와 같으며, 용모와 옷차림이 순사의 말과 같았다. 묶은 것을 풀고 옷을 벗겨 조사해보니 등 위에 돌로 때린 자국이 있는데, 살갗이 벗겨져 피가 흥건하였다. 이에 이발 형제와 부부를 형리에게 맡겨 감영의 옥으로 보내도록 하고는 빨리 순사에게 가 일을 알렸다.
이에 순사는 아전 형제 부부를 잡아들여 직접 감영의 마당에서 심문했다. 이발은 전과같이 말했으니 지발은 “사또처럼 밝은 지감(知鑑)은 처음입니다. 어찌 사실을 숨기겠습니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님은 집이 넉넉하나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어 소인의 아들로 후사를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형님은 ‘우리같이 하찮은 사람이 양자가 말이 되느냐, 제사는 동생이 대신 할 수 있으니 나는 사위를 얻어 데리고 사는 것이 좋을 것이야’하였습니다.
형수는 딸의 계모로 딸을 미워하여 제가 형수가 함께 모의하여, 조카가 행실이 나쁘다는 소문을 내서 형님이 죽이게 하도록 하였으니 형님이 차마하지 못해서 제가 형님이 외출한 틈을 타 형수와 함께 돌로 쳐 죽였습니다. 입관한 지 며칠이 지나 형님이 들어와 그 아이가 어느 곳의 총각과 몰래 정을 통해 잡힌 후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결했다고 하니 어찌하지 못하고 이곳에 장사 지낸 지 거의 십년 입니다. 하지만 형님은 그렇게만 알고 있고, 소인은 형님의 가산을 탐낸 까닭입니다” 하였다.
통판이 순사에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묻지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지난 밤 통판이 간 후 잠을 자려는데 한 여자가 나타나 백배하고는 원통하여 호소할 일이 있다고 해서 물으니, ‘저는 어떤 읍 아전의 딸인데 오명을 쓰고 모함 받아 맞아 죽었습니다. 죽은 것은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으나 규중 처자로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은 원통할 따름입니다. 매번 순사께 신원을 하소연했으니 사람들이 기백이 온전하지 못해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어려웠는데, 금번에 공은 기백이 남달라 감히 원통함을 호소하니 신원해 주시옵소서’ 하였다. 내가 흔쾌히 허락하니 그 여자는 문을 나가 사라졌네. 그래서 마음으로 은근히 의아해 하여 통판에게 검시를 청했을 뿐이네”라고 하였다.
원 출처 - "계서야담" 권4
안도현 시인의 절필을 지지합니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