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쿠니무라 준 님이 출연하고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곡성'을 보고 왔습니다.
('귀향'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정말 오랜만에 한국영화 리뷰네요.)
누가복음 24장 37~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로 시작되는
곡성의 이 문구는 종반부까지 보게되면
간담이 서늘해져 온몸에 살이 다 떨리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됩니다.
나홍진 감독 6년만의 신작 '곡성'은
이전까지 본적 없었던
새로운 한국영화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영화제목을 의미하는 곡성은
영화의 장소가 '곡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슬피 우는 소리의 '곡성(哭聲)'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곡하는 소리입니다.
여기에서 우는 이는 귀신일 수도 있고
극 주인공인 종구 일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레 작년에 나왔던 '검은 사제들'과
호러영화의 고전인 '엑소시스트'가 떠오르겠지요.
하지만, 저에게 '곡성'은 이 둘보다도 더 훌륭한 작품으로 비춰집니다.
(올해 봤던 한국영화 중 가장 좋았습니다.)
어차피 '엑소시스트'는 호러의 고전 바이블 같은
작품으로써 이미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는 시점이고,
'엑소시스트' 이후 수많은 오컬트 영화가 쏟아 나왔다는 점에서
'검은 사제들'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검은 사제들'과 간단히 비교를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검은 사제들'이 흥행되고 좋은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이러한 시도를 거의 한적이 없었기에
그 신선함에 매료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검은 사제들'이 훌륭하다고는 말할수 없습니다.
그 장르 자체를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거의 처음 시도하였을 뿐
소비가 많이 되었던 소재이기에 내용면에선 신선하지는 않지요.
그렇다면 '곡성'은 다를까요?
네~ 저는 다릅니다. 이야기 모티브부터 표현까지
어느하나 독창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모티브와 부분의 내용들은
엄밀히 성경에서 나온 것이 다분합니다.
극중 '종구'에게 암탉이 세번 울고나서 가라는 장면은
예수의 애제자였던 '베드로'의 이야기를 착안해
'닭이 울면 곧 하루의 시작이며 빛의 시작이다.
장닭이 훼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서
새벽을 알리면 맹수와 잡귀들이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왔다.'라든지
오프닝에 나왔던 누가복음 문장을
종반부 역으로 사용해 몸서리치게 다뤄 표현한다든지
흥미롭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쿠니무라 준이 맡은 '외지인'과
'신부'와의 대화씬입니다.)
거기에 굉장히 한국적인 분위기와 정취가 어울려
무당이 굿 까지 하는 것을 보면
동,서의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큰 세계관을
하나의 마을을 빌려 마치 조물주처럼 만든것 같은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이야기를 다루는
나홍진의 연출과 그 연출에서 나오는 어마무시한 에너지입니다.
결코 단순 명료한 영화는 아닐테지요.
그렇지만 그 속에서 많은 생각과 이야깃거리를 안겨줍니다.
(저는 끝나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네요.)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작을 다뤘었던
'추격자'와 '황해'의 스타일과
'곡성'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큰 틀에서 스릴러적인 장르는 갖추고 있지만
나홍진은 리얼리티를 강하게 추구했던 감독 중 한명입니다.
그러한 감독이 표현은 굉장히 리얼리티 하지만
내용은 오컬트적이라는 면에서 상당한 아이러니를 가지게 됩니다.
신기하고도 기이한데 나홍진 감독의 또 다른 변화점인것 같습니다.
플롯을 다루는 면에서도 어떤식에선 초기의
'이냐리투'가 생각날 정도의 연출론입니다.
단순히 짜집기가 아닌 전체의 이야기가
원래 한 부분이었던 것 처럼 느껴지는 이 힘들은
자유자재로 만지는 것 뿐만 아니라
편집을 통해 이룬 엄청난 성과로도 비춰집니다.
(위에 스포성이 있다고 했으니 이제 그냥 스포하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구조를 처음, 중간, 끝으로 나눈
1막 2막 3막이라고 가정했을때
1막은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적인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이라 한다면
2막은 '외지인'의 수상한 소문으로 의심을 시작하며
'외지인'의 신상을 쫒고 딸을 구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3막은 클라이맥스와 더불어 나홍진 감독이
걸어놓은 떡밥을 관객들이 다시 한 번 무는 것일 테지요.
크게 3번으로 나누었을때 3막안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켜 다시 3번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같은 시간 일어나는
3번의 다른 씬들입니다. 결국에는 하나의 이야기이죠.)
그 복잡함 안 나홍진 감독은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현혹을 시키고 당혹감을 안겨줍니다.
(예측범위에서 가지고 논다고 할까요.)
종구의 입장이 되어버린 관객들은
심리학적 실험실 같은 곳에서
딜레마를 겪게 합니다.
그 딜레마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종구(관객)는
낚시바늘에 묶인 미끼를 덥썩 물게 되지요.
(그러한 맥거핀이 2~3번은 나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애매하고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을지 모릅니다.
장르적으로 보았을 때 분명 스릴러적인 면모가 강하지만
공포영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영화입니다.
(오컬트나 스릴러로 분류해도)
'검은 사제들'과 다른것이 바로 이러한 면들 이겠지요.
아마 한국영화에서 이러한 시도나 이야기가 있었나 싶네요.
배우들 말마따나 10년 후에도 이런 영화 나올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가장 고생했을 배우는
곽도원 씨와 쿠니무라 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쿠니무라 준'은 일본에서도 유명하고 연기도 좋으신데
'곡성'에서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카메라를 압도하는 것 같습니다.
곽도원 씨 역시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을 비롯해 이리저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 고생이 고스란히 영화로 나와
생동감 있게 연기를 해주셨습니다.
(감정적으로 훌륭히 소화해주십니다.)
그 외 황정민씨와 천우희씨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나올때 만큼은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 큰 신뢰감을 다시한번 줍니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많은부분 손을 본 것 같습니다.)
'곡성'은 장르영화로써도 좋습니다.
많이 얽혀있음에도 나홍진 감독의 장기인
서스펜스는 영화가 끝날때 까지 마음의 여진을 안겨줍니다.
보신분들 중에선 다른 귀신영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혹은 무슨영화가 이렇냐고 불평하실수도 있겠죠.)
모호하고 매듭을 짓지 않기에 더욱 혼란스러울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느낌과 감정을 가지고
영화를 보는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단순하게 생각해 하루 이틀 지나면 잊혀져버리는
그런 영화로 여기기에 저에겐 아까운 영화입니다.
'오컬트'영화로 이러한 성취를 거둔
한국영화는 '곡성'이 처음일 테니까요.
혹여나 답답하게 느끼실 분들을 위해
저의 생각 내에서 인물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곡성'이라는 마을에 들어온
'외지인' 2명은 같은 부류입니다.
(외지인 2명은 '일본인'과 '일광'입니다.)
끝나고 나서 제가 계속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일광이 처음부터 같은 부류였을지
아니면 굿을 하다 역으로 당한 것인지 헷갈렸는데
제 추측은 종구와 일광이 이야기하다
일광이 옷을 갈아 입는 장면이 스쳐지나가는데
'일본인'과 똑같은 속옷(기저귀)를 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것을 생각하면)
아마 처음부터 같은 부류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굿을하고 역으로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천우희 씨는 종구집을(혹은 마을을) 지키는
만신이나 수호신으로 여겨집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일본 '외지인'이
낚시를 하기위해 낚시바늘에
미끼를 묶던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어쩌면 나홍진 감독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관객들에게 먼저 제시를 했던것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