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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퍼런 글이 있을텐데 첫번째는 안 읽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두번째는 읽어주셔야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세종대왕
조선조 제4대 임금. 성은 이요 이름은 도.
요즘은 드라마를 통해 이도라는 이름이 친숙하기 까지하다.
이런 세종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이다.
세종이 추앙받는 이유는 한글 창제 때문일 것이다.
한글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화와 민족적 자존심의 상징이다.
하지만 세종은 한글을 창제하며 조선의 기득권층이 반발을 삿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틀린 것이라 할 수있다.
기득권층의 반발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최만리의 상소이다.
언문의 제작은 전하의 놀라운 천재성을 보여 주는 일입니다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들은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1.개국 이래로 일관되게 중국의 체제와 제도를 따랐는데, 난데없이 독자적인 문자를 만든다니 이상합니다. 혹시라도 중국 사람들이 비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쉬운 문자로 설총의 이두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자 체계를 이용하기 때문에 한자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면 충분할 텐데 왜 굳이 야비하고 상스러우며 무익한 글자를 만드십니까? 27자면 되는 간단한 글자가 나오면 사람들이 쉬운 데 홀려 어렵게 한자를 배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해선 안 되는데, 언문은 새로 나온 한 가지 특이한 기예일 뿐으로 학문에 방해가 되고 정치에 이롭지 않습니다.
3. 언문으로 정보를 교환할 경우 한자에 무지한 백성이 법 지식 미비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 하신다면, 중국의 경우 말과 글자가 같아도 감옥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억울한 옥사를 없게 하는 것은 관리들에게 달린 것이지 글자의 문제는 아닙니다.
4.근래 들어 조정의 일이 급히 새로운 일을 벌이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서 옛것을 숭상해야 하는 원칙에 어긋납니다. 언문이 꼭 필요하다면 오랜 기간 여론을 모으고 논의를 거쳐서 해야 할 텐데 갑자기 관리 10여 인에게 가르치시곤 반포하려 하시니 너무 급합니다. 흉년을 맞아 예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과도 맞지 않습니다.
5.세자가 조정의 일을 섭정하게 되었는데, 그러자면 더욱 군주 교육과 덕성 함양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문 제작과 반포 같은 무익한 일에 시간을 할애하게 하시니 옳지 않습니다.
집현전 학사들이 부제학 최만리를 대표로 연명하여 올린 상소의 내용이다.
최만리의 상소는 조정 내 ‘보수 세력’의 작품이 아니라 ‘신진 개혁파’인 집현전 학사들의 집단 의사표시였다.
이는 한글의 창제로 기득권이 반발했다는 점과 세종이 집현전의 학사들과 함께 한글을 창제 했다는 점에 의문이 나온다.
집현전 학사들보다 더 많은 기득권을 쥐고 있던 고급 관료들이나 원로들, 성균관 등의 기관에서 한글 창제나 반포를 반대했다는 기록은 없다.
당시 집현전의 학사들은 세종 25년 건강악화로 일선에서 물러나며 세자가 조정의 일을 섭정하고 한글 말고도 다른 중요한 정책들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상소를 올리게 되었다.
또 세종과 집현전의 학사들과 함께 한글을 창제 하였다면 이러한 상소 또한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세종은 재위 25년 12월 어느 날 혼자 힘으로 한글의 기본 체계를 만들어 냈다.
그 제작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보니, 집현전 학사들이나 궁녀들로 비밀리에 연구 조직을 꾸려 운용했을 거라는 추측이 제기되는데, 이는 드라마틱한 상상력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근거는 없는 얘기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한글이라는 뛰어난 문자 체계를 세종 한 사람이 단기간에 만들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글의 탁월성은 초성·중성·종성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체계와, 발음기관의 모양을 딴 자음기호로 초성과 종성을 구성하며 천·지·인을 형상화한 단순하면서도 정교한 모음기호로 중성을 구성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에 있다.
쉽게 말해 훈민정음 28자를 구성하는데 어마어마한 인력이 동원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종은 심각한 ‘공부 중독’, ‘일 중독’에 빠졌던 왕이다.
다음 세종실록에 보면 왕은 즉위하기 전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부지런했다. 어릴 적 가벼운 병환이 있을 때에도 독서를 그치지 않는지라 태종께서 하급 환관을 시켜 그의 서책을 모두 가져다 감추게 하고 다만 구소수간만을 남겨 두었더니 결국 그책을 다 읽어 버렸다. 즉위한 뒤에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심지어 식사를 할 때에도 반드시 책을 펼쳐 좌우에 놓았으며 그러다 때로 밤중이 되더라도 열심히 읽을 뿐 지겨워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근신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내가 궁중에 있으면서 손을 놓고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는 없다.” (중략)왕은 서적을 한 번 보면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할 뿐 아니라, 수 많은 신하들의 성명·이력·가문 등을 한 번 들으면 사소한 부분까지 잊지 않았으며, 한 번 얼굴을 보면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뒤에도 반드시 이름을 기억해 부르셨다. 사물의 정밀하고, 소략하고, 아름답고, 추악한 것에 이르러서도 한 번 눈에 접하면 반드시 그 세밀한 차이를 정확히 분간했고, 소리나 음악의 맑고 탁함과 높고 낮음도 한 번 듣고서 정확히 판단했다.
세종은 일종의 사진기억술과 절대음감을 지닌 천재였으며,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일 중독자였다.
아마도 세종은 초성·중성·종성의 원리와 기본적인 제자 방식, 그리고 주요 기호들을 혼자 힘으로, 혹은 왕실 내 몇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세자와 둘째 딸이 한글 창제를 도왔다는 단편적인 기록이 있다.) 완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실제 사용에 적합한지 판단하기 어려워 집현전 학사들에게 보완 작업을 하게끔 지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한글은 조선 시대 천재로 태어난 왕인 세종대왕 단독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세종대왕님 만세!!!!!!! 사랑합니다. 한글날을 공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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