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학번 선배 중에 문대 출신으로 취업 과정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형을 알고 있습니다.
그 형한테 취업 비결을 좀 전해들었던 걸 풀어놓을까 합니다.
그 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내4대그룹(삼성, SK, LG, 현대차) 계열사에 하나씩 모두 합격하고
여기에 외국계 홍보대행사, 외국계 항공사까지 일반기업체에 6군데에 합격했습니다.
게다가 어렵다는 언론고시도 두군데나 뚫었습니다. 도합 8승입니다.
여덟 곳 중에 하나만 붙어도 '취업 잘했네' 정도의 이야기를 들을만 합니다.
이 형은 졸업하기 전에 합격한 삼성 계열사 재무팀에서 8개월 간 일했구요. 그만두고 나서
반년도 채 안 되서 모 메이저 언론사 기자시험에 합격해 지금 언론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형의 스펙은 아주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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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출신
영문학, 사회학 전공
학점은 교환학생 지원 자격을 갓 얻을 정도
토익은 900대 초반
상경계통 부전공 없음
해외연수 경험 없음
인턴 1군데
연세춘추 기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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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취업 과정에 있기 때문에 바쁜 형을 졸라 맥주를 사게 한 다음에 취업 비법을 물었습니다.
그러면 형이 이야기한 걸 현장감 살려 멘트로 처리해 보겠습니다. 메모해가며 들었습니다.
"문대생 취업 어려운 건 IMF 이후로 늘 그랬다. 그래도 다들 어디론가 괜찮은 데 자리 잡더라. 그런데 진짜로 취업 안되거나 무지 애먹는 친구, 후배들을 보면 '기본'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 취업은 토익점수, 학점으로 하는 게 아니고 학부 졸업 수준에서는 말과 글로 직장을 얻는 거다. 문대생들 실용지식은 못 배우지만 그래도 4년내 하는 게 글쓰기와 토론 아니냐? 다른 단과대보다 확실히 더 많이 한다. 이런 걸 배워서 어디 써먹겠나(실제 그렇긴 하지만) 라고 푸념하고 손 놓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기본기(말+글)를 잘 닦아야 성공한다. 자기소개서를 상대, 공대 출신보다 질 떨어지게 쓴다면 취업할 수 있겠나? 어림도 없다. 토론수업도 많이 하지 않는가. 평소에 논리적으로 말하고 엑기스만 조리있게 말하는 버릇 들이면 면접 준비 따로 안해도 된다.
내가 불리하다는 생각만 가지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주어진 기회 안에서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도 '상경계열'만 뽑는 것 때문에 제한을 많이 받았고 선택의 폭이 좁았다. 여러군데 최종으로 붙었지만 두산, 효성 같은 데서는 서류에서도 탈락하더라. 하지만 서류필터링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어떻게 할 수 없어도 일단 면접까지 넘어간 곳은 단 한 군데도 탈락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 매번 다르게 쓰면서 심혈을 기울인 게 효과를 봤고, 토론면접에서는 평소 토론수업을 많이 들으면서 연습했던 걸로만 버텼는데도 확실히 상대를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어진 한도 안에서만 노력하면 IB나 전략컨설팅은 힘들지 몰라도 왠만한 그룹사 취업은 어렵지 않다. 나의 삼성 취업은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노력한 결과다. 내가 지원한 삼성계열사는 전자계열이라 아예 문대생을 뽑을 예정이 없었다. 하지만 선배 리쿠르팅에서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서 남은 ID 하나를 받았고 SSAT 준비를 꼼꼼히 했다. SSAT도 그렇고 다른 직무시험도 그렇고 '말놀음'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문대 출신이 그런 부분에서 다른 전공자보다 앞서지 못하면 취업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SSAT도 상식과 언어논리가 문제수가 가장 많다. 언어논리에서 일단 고득점했고 언론사 시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상식에서 공대 출신 합격자들의 두배가 넘는 점수를 받았다. 약한 부분이었던 수리 쪽은 3일 정도 중도에서 빡시게 공부했다.
나중에 회사에 가보니 문대 출신은 뽑을 예정이 없었지만 내가 SSAT 점수가 워낙 높아서 회사에서 가능성을 보고 뽑았다는 걸 알게 됐다. 부서 배치 과정에서도 상대 과목을 단 한과목도 들은 적이 없었지만 삼성에서 노른자위라는 재무팀(경리 쪽)에서 일하게 됐다. SSAT보다 어렵다는 SK직무검사시험도 주어진 한도 안에서 며칠이라도 노력했고 문대생이니까 비교우위를 가질 수도 있는 부분에서는 남들보다 잘했다. 이를테면 한자 문제 다 맞았다(웃음).
직장생활 해보니까 '상경계열'만 모집하는 건 진짜로 상대 출신이 아니면 일을 할 수 없어서 그런 게 아니더라. 워낙 구직자가 많다보니 기업일에 좀 더 친숙한 공부를 해온 상대 출신만으로 제한해도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확보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일 뿐 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까 포텐셜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면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 나는 회사 들어가서 차변, 대변부터 공부했지만 업무가 뒤떨어지지는 않았다. 뽑는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임원들이나 인사팀 관계자는 인문사회계열 학부 졸업자들의 경우 입사 후 회사에서 일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따라서 흡수력이 좋아 보이고 대인관계가 무난할 것 같은 사람한테 호감을 갖는다. 내 옆자리에 고대 경영 나오고 고대 경영학과에서 재무관리 석사 따고 들어온 1년 선배가 있었는데 경희대 경영 학부 나온 고참 대리한테 군밤 맞아가면서 일 배우더라. '어디어디 외국여행해서 견문을 넓혔구요, 어디어디어디에서 인턴했어요'와 같이 이제는 누구나 해대는 상투적인 내세우기는 전혀 안 먹힌다는 걸 유념해라.
그리고 신문을 많이 읽어야 한다. 특히 경제면을 매일 30분씩 정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산업전반에 관한 감도 잡고 경제용어에 익숙해진다. 문대 출신인 걸 염려해서인지 면접에서 경영, 경제에 관한 용어들(그래봤자 상식수준인 PER, IR, MIS, 사이드카, 베블렌효과, 영업이익률이 무슨 뜻이냐, 손익계산서가 영어로 뭔지 아냐 정도지만)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하지만 대답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의외로 그런 수준의 용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구직자들 많더라. 경영학 이중전공, 부전공 해봤자 상대 출신 되는 것도 아니다. 경제면 팔로업 잘해서 현실경제나 해당 업체 사정과 관련시켜 대답 잘하면 오히려 '어라, 이 놈 봐라. 별 걸 다 아네'라는 좋은 느낌 줄 수 있다. 힘들게 상대 수업 듣느라 고생한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즉, 이상을 몇 줄로 정리해보면
"문대 출신이라 하더라도 연세대면 취업의 기회가 적다고 보기 어렵다. 주어진 기회라도 잘 살려라. 기회가 적다고 푸념만 하지 말라. 비교우위인 부분이 있다. 인문계 학사 졸업이 취업하는 건 전문지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말과 글을 이용해서 하는 거다. 말놀음, 글놀음도 남보다 못하면서 취업을 바라지 말아라. 괜히 취업에 겁먹어서 상대 수업 들으러 다니면서 불안해 하는 애들보다 원래 논리적이고 글 잘 쓰고 생각이 깊은 애들이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더라."
기타 면접 등 형이 해준 도움되는 얘기들. 이 형은 일단 면접까지 간 경우는 단 한번도 탈락하지 않았음.
1. 인터넷 많이 하지 마라. 쓸모 있는 정보나 지식과는 멀어지고 잡스런 풍문만 머리 속에 들어온다. 특히 연정공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책 봐라. 뉴스도 종이신문으로 보는 게 훨씬 공부가 된다. 대학생이 매일 구독하는 신문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나.
2. 영어는 능통하게는 못해도 1학년 때부터 차근히 회화능력을 쌓아야 한다.
3. 면접은 10명 중 3~4번째로 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게 마음대로 안되지만 수험번호 순서대로 면접 보는 곳의 경우 원서를 너무 늦게 내면 안 좋다. 마감 한 두시간 전에 원서 내는 버릇 고쳐라.
4. 면접에서는 눈빛이 중요하다. 의외로 이것의 중요성을 잘 모르더라. 목소리 크기에만 신경쓰는 애들은 바보다.
5. 최종면접은 점수가 주어지기보다는 O,X로 가늠해서 O의 갯수대로 뽑는 경우가 많다. 이걸 머리 속에 넣고 임하는 것과 아닌 것은 태도에서 차이가 난다.
6. 남자 구직자의 경우 평소 안 입던 정장 입었으니까 다 된 것이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바보들이 많다. 정장 맵시가 좋으면 임원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꾸질꾸질한 노인네풍 넥타이 차고 나온 녀석들치고 면접 붙은 놈 별로 못 봤다. 정장도 돈 더 주고 때깔 좋은 걸로 입고 페라가모 넥타이 같은 거 하나 사둬라.
7. 딱부러지게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면접에서는 '나는 무진장 똑똑한 놈인데도 불구하고 윗 사람 말은 정말 잘 듣는다'는 인상을 풍기게 노력해라.
8. 공기업 갈 거 아니면 토익에 목 매달지 마라. 나는 두번째 봐서 900 넘으니까 단번에 관뒀다.
9. 여자들은 기자를 강력 추천한다. 대기업에 비해 일하는 데 있어서 남녀차별이 매우 적다. 여자한테 이렇게 기회를 많이 주는 직종은 찾기 어려울 거다. 그러나 PD는 관둬라. 여자 잘 안 뽑는다.
10. 자기소개서는 토씨 하나만 바꾸더라도 가급적 매번 다르게 써라. 그리고 이것저것 다 담으려 하지 말고 '낚시성 에피소드'를 하나만 찍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라.
11. 면접에서 '여기 꼭 붙어야 하는데'라는 식으로 덜덜 떨면 안된다. 마음 속으로는 '여기서 와달라고 하면 가줘야 하나'라는 식으로 호기를 부려야 여유가 생기고 면접도 잘 된다.
12. 평소에 '빡시게' 'ㅈㄹ' 'ㅅㅂ' 등 비속어를 쓰지 말아라. 면접 중 무의식중에 나오는 경우도 간혹 있고 나오지 않더라도 평소와 말하는 게 너무 달라져서 자연스럽지 못하게 된다.
13. 좋아하는 인물(롤 모델)의 아주 시시콜콜한 팩트(이를테면 신발사이즈)를 머리에 주워 담아두면 요긴하게 써먹을 일 많다. 고전 문학작품도 하나 꿰고 있으면 좋다.
14. 문대, 사회대 취업자 중에 사회주의적인 좌파마인드를 가진 애들이 좀 있는데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기업체에 취업할 거면 시장친화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는 게 좋다. 가끔 보면 사회주의 이상에 젖어있는 똘아이들이 면접 때 뻘소리하고 나와서 소신을 지켰네 어쩌네 하면서 소영웅주의에 빠져 있는 꼴을 보면 솔직히 우습다. 시장을 신봉해야 기업이나 경제활동과 같은 개념을 공부하기도 좋다. 또 그게 기업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기본 자세다. 그런 게 싫으면 시민단체를 찾던가 마르크스 공부하러 대학원 가든가 노사모 활동 열심히 하든가 해라.
글이 올라온 며칠후 연세대 게시판을 떠들썩하게 했던 본 글의 97학번 선배는 이 사람으로 밝혀진다.
이력
전 삼성 재무팀
전 조선일보 기자
전 YTN 앵커
현 KBS 공채 32기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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