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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음력 1833년 12월 5일 (경기도 포천) - 1906년 11월 17일
경기도관찰사
호조판서
호조참판
1870 승정원동부승지
1. 1855년 23세에 과거(명경과) 급제
2. 고종 5년 흥선대원군 경복궁 재건 비판 상소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선 권력의 실권자 흥선대원군을 30대에 비판함)
3. 1873년 흥선대원군이 만동묘, 서원철폐를 단행하자 건의 상서를 올림
(이 상서로 인해 10년동안 조선을 손바닥안에서 주물렀던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게됨)
하지만 당시 실권자이던 대원군의 영향력때문에 상소 직후 제주도로 유배
5.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이 채결되자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 엎으려 상소를 올림
'일본과 절대로 강화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만일 맺으신다면 내 목 부터 먼저 치십시오'
이 사건을 계기로 흑산도로 유배
4. 20년동안의 유베생활 도중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확인하고 항일척사운동에 앞장섬
5. 을사늑약 직후 8도에 항일투쟁 호소문 냄
(일제 불매운동, 철도 이용안하기 등)
6. 70대 고령의 나이로 전북 태안에서 의병모집
수백명의 의병들과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전후 대마도로 유배
유베생활 동안 왜놈이 주는 음식은 모조리 거부하고 병으로 사망
최익현의 일생을 보고 있으면 [언행일치]라는 말이 가장 많이 떠오릅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놓은 정치인
실사 당대 최고실권자라 할지라도 성리학의 질서를 억누르는것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제국국가들과의 개항에 끝까지 저항한 인물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지못한 꽉막힌 인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절대 굽히지않고 지조있는 모습을 보인 보수 정치인으로 많이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2015년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라 칭하는 밥버러지들은
가당치도 않죠.
출처:알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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