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동생 살해 사건 피의자 양 아무개군이 2001년 3월9일 범행 현장에서 범행 당시를 재현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늘 귀여움을 독차지해왔던 막내아들(11세, 초등학교 4학년)이 안방 침대에 피를 잔뜩 흘린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씨는 피가 뿜어져 나온 목 부위를 수건으로 감싼 채 아들을 안고 인근 병원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막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채 헤어나지도 못했지만 양씨 부부는 눈에 띄지 않는 큰아들(14세, 중학교 3학년) 걱정을 해야 했다.
막내를 살해한 범인이 큰아들마저 해치거나 납치해 갔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고를 받고 초동 수사에 돌입한 형사들이 파악한 사실은 양씨 부부로서는 도저히 믿지 못할 내용이었다.
사건 전부터 살인 저지를 것이라 예고
특히, 경찰이 양군의 컴퓨터 사용 흔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양군이 ‘좀비’(zombie)라는 명칭으로 미니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양군은 자신의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에 ‘군대 갔다 와서 살인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또 좋아하는 것은 ‘파충류’ ‘살육’ ‘쾌락’이고, 싫어하는 것은 ‘정의’ ‘법’ ‘인간들’이라고 적어두고 있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3일에는 ‘가족과 정이 들면 안 된다. 살인이라는 것을 꼭 해보고 싶다.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다. 할인점에서 도끼를 구입해 날을 갈아 침대 밑에 숨겨두었다’라는 글을 일기 형식으로 올려두었으며, 사건 전날인 4일 오후에는 살인 계획의 결행을 알리는 듯한 내용의 이메일을 자신의 친구들에게 발송했다.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는 청소년. ⓒ 연합뉴스 |
이미 이전부터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양군은 학교에서도 신상 기록의 장래 희망 란에 ‘살인업자’라고 적어 담임선생님이 양군 부모에게 정신과 치료를 제안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양군은 이미 주변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을 저지를 우려가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평가와 우려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양군을 아는 학교 선생님들과 주변 친구들은 양군이 일본에서 제작한 살과 피가 튀는 잔혹한 컴퓨터 게임인 <이스이터널> <영웅전설>과 국내에서 제작한 네트워크 게임인
<조선협객전>, 엽기 사이트인 ‘바이오해저드’ ‘귀신사랑’ 등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었다고 전했다. 늘 게임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게임 아이템 구입에만 열을 올렸으며 가상과 현실 간의 구별이 모호해서 현실 감각을 상실한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자 양군이 마치 ‘시한폭탄’ 내지 ‘살인 기계’의 상태에 있는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더욱이 동생을 살해한 범행 도구인 도끼마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아 양군이 제2, 제3의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경찰 수사진과 주변 이웃들에게 번져나갔다.
경찰에서는 전 인력을 동원해 역과 터미널, PC방, 골목길, 학교 주변 등 양군이 갈 만한 장소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인근 시·도는 물론 전국 경찰에 사건 개요와 양군에 대한 수배 내용을 전파하면서 공조를 요청했다.
양군의 채팅 친구가 있다는 대구에는 직접 수사대를 급파했다. 결국 그날 밤 9시, 사건 발생 13시간 반 만에 경찰은 한 유흥가 골목을 서성거리는 양군을 검거할 수 있었다.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순순히 경찰의 체포에 응한 양군은 경찰 조사에서 살인은 매우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이었고, 원래는 40명 내지 50명을 살해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차분하게 진술하는 모습은 담당 형사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양군이 밝힌 당일 행적은 이렇다.
자신이 계획한 연쇄 살인의 제1차 대상이었던 동생이 자고 있는 사이 미리 준비한 날 선 도끼로 동생의 목을 내리쳤고, 피를 흘리며 숨져가는 동생에게 “편안히 잘 자라”라고 인사한 뒤 피가 튄 옷을 갈아입고 도끼를 가방에 넣고 나서 그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는 다른 곳으로 가서 마음 놓고 살인을 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서 만난 친구에게 동생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전북 고창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에서 내린 양군은 걸어가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얻어탔고, 오토바이를 태워준 40대 아저씨가 잠시 길에서 소변을 보는 사이 뒤에서 도끼로 내리쳐 살해할 마음을 먹었으나 마침 다른 사람이 지나가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후 마땅한 살해 대상을 찾지 못한 양군은 다시 버스를 타고 광주로 돌아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 있는 한 PC방 건물 앞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도끼를 꺼내들고 다가갔다. 목표까지 몇 발짝 남겨둔 곳에서 갑자기 앞에 세워둔 큰 거울에 도끼를 든 자신의 모습이 비쳤고 순간 겁이 나면서 살해 의도가 사라져버렸다. 이후 주변을 배회하던 양군은 자신을 찾기 위해 일대를 수색하던 형사에게 발견되어 검거되었다.
‘게임 중독’ 탓으로만 돌릴 수 없어
양군의 범행은 곧 ‘청소년의 게임 중독’과 그 폐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폭력적·선정적인 내용을 담은 게임류의 등급 심의가 까다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양군의 범행을 ‘게임 중독’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편의주의적 해석이 될 수 있으며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눈을 감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양군의 경우 게임 중독과 엽기 코드 심취에 이르게 된 성장 과정과 가정 환경상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으며 여러 차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격과 심리, 행동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음이 감지되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가정과 학교, 주변 등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양군은 소년법 적용을 받아 재판 과정과 결과가 비공개되었다. 현재는 어딘가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