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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인권법(가칭)을 제안합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라“
법대인데 사시 준비 안 했냐기에, 다른 경험을 쌓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발가락을 주물럭거리던 면접관에게 돌아온 대답.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D 중견기업 2차 면접에서였습니다. -법학과를 졸업한 A씨
“넌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으니까 그 나이에 여기로 면접이나 온 것“
면접관이 삶에 대해 만족하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건방진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런 소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고, 저는 해 놓은 일이 없으니 여태 면접을 보고 다니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못 배운 사람들이 지원을 많이 하는 곳이라 그런지 그냥 무시부터 하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B씨
”너네 학교에서 하는 공모전이라고 해봐야 뭐..“
한 대기업 계열사 집단면접에서였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썼던 교내 공모전 수상경력에 대해 설명해 보라기에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심드렁하게 듣던 면접관은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했습니다. 저희 학교가 소위 얘기하는 ‘명문대’라면 저런 발언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얼굴이 새빨개지고 자신감을 잃어 면접을 망쳤습니다. -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C씨
"연수 마지막 날,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습니다."
원래 계획된 채용은 6월에 있었고, 저는 9월에 추가 채용 된 것이었는데, 사장이 추가 채용을 취소시킨 것입니다. 이런 사정이 있었음을 채용 과정에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합격이 취소된 뒤에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의미 없는 연수를 받고 온 E씨
아직 을이 아닙니다. ‘예비 을’입니다.
그런데 구직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을’입니다.
개인정보수집에 동의하지 않으면 지원이 불가능하니, ‘상기 민감 정보 제공에 동의’해야 하죠.
몇 개 기업만 그렇다면 그런 기업에 원서를 안 넣으면 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기업이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구직과정에서 이미 ‘을의 자세’를 체험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지원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갑의 자세’를 당연시 하는 건지도 모르고요.
일자리를 늘려 달라는 요구에 응답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참 어려운 일인 것임을 압니다.
늘리고 또 늘려도 부족한 게 일자리인 것도 알고요.
회사마다 사정이 있어서 채용규모를 줄이겠다고 하는 것도 막을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지원자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건 어렵지 않잖아요.
채용 규모를 줄이니까, 일자리가 적으니까,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구직자들은 더 힘들어집니다.
약해지고 움츠러든 지원자들은 무엇이든 시키면 다 하겠죠. 무엇을 요구하든, 어떻게 압박하든, 인신을 공격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잃어버려도 웃으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인권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동자는 노동기본법에 의해 여러 가지 권리들을 보호받지만
예비 노동자들, 노동자가 되고 싶은 예비 을들은 보호받을 근거가 없습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들은 심각한 인권침해에 놓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직자인권법(가칭)’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세부 내용은 보다 정교하게 짜 봐야 하겠지만,
대략적으로 생각해 본 항목들을 다음과 같습니다.
1. 직무와 직결되지 않는 개인정보 수집을 금지하고, 수집하고자 할 경우 수집이유를 명기해야 한다.
▲지원자의 성별·사진·키·몸무게·주량, ▲가족의 이름·직업·최종학력·근무처·동거여부 등
- 영향을 미쳐도 이상하고, 안 미쳐도 이상한 항목들입니다. 지원자의 성별이나 부모의 최종 학력으로 인해 채용과정에서 자그마한 불이익이나 이익을 얻는 것은 부당합니다. 각 기업에서는 “채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항목들이 어떠한 이익·불이익도 주지 않는다면, 즉 채용과정에 단 1%의 영향도 주지 않는다면, 이런 항목들은 왜 수집하는 거지요? 이유라도 압시다. 이유가 없다면 수집하지 맙시다.
-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서울 시내 구직자 5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4%가 채용과정에서 차별을 느꼈으며 차별 방지를 위해 요구하지 말아야 할 정보로 가족의 학력 및 직업(76.3%), 재산상황의 정도(86.8%), 가족형태(66.6%) 등을 꼽았습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업체에 지원서 항목을 수정할 것을 수차례 권고하였지만 반응이 없었습니다.
-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직무 능력을 중심으로 직원을 선발하자는 취지로 2007년 ‘표준 이력서’를 만들었습니다. 표준 이력서는 성차별 및 외모중심 선발을 막기 위해 사진란을 없앴고, 나이를 파악할 수 없도록 주민등록번호 앞 2자리도 기재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성별, 혼인여부, 가족관계 등의 개인정보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보급 당시, 다수의 기업에서 표준 이력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견을 내비쳤지만 이 이력서를 쓰고 있는 대기업은 없습니다.
2. 채용공고 시 모집하는 지원분야와 직무소개를 정확히 공고해야 한다.
- ‘경영지원’ 같은 분야는 뭉뚱그려서 뽑는 경우가 많아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인데 재경밖에 자리가 없다고 탈락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 모 출판사에서 마케팅팀 업무를 제안 받아 일하게 된 E씨. 한 임원이 마케팅 팀장에게 찾아와 “일이 있으면 쟤를 시켜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 날부터 K씨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했습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건지, 출판사 직원으로 채용된 건지 헷갈렸던 K씨는 다른 곳에 취업해 그곳을 ‘탈출’했습니다.
- F씨는 모 여행업체 구직 공고를 보고 ‘상품개발 및 상담업무’를 하고자 지원했습니다. 합격한 후 실제 업무는 텔레마케터였습니다. 결국 하고 싶은 일과 다른 일을 하게 된 F씨는 한 달 만에 어렵게 얻은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3. 합격 발표·면접 등 전형의 날짜와 시간을 미리 공지해야 한다.
입사 예정일도 예정된 날로부터 최소 (한 달)전에 공지해야 한다. 입사 예정일을 미리 공지하지 않았을 경우, 최종합격발표부터 입사일까지 최저 기간을 두도록 한다(예:5일, 일주일, 이주일)
- 대개 매해 공개채용을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전형일자를 미리 공지하지 않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채용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언제 발표가 날지 모른다니요.
-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입사일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면접 후 합격통지와 함께 입사일을 통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직자들은 입사 전 지금까지의 생활을 정리하고 사회에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급하게 현장에 투입될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그럴 경우엔 미리 공지했으면 합니다.
4. 전형의 일정 단계 이상부터는 면접 참가자들에게 회사의 초봉을 알려줘야 한다.
- 연봉이 ‘영업비밀’이라고 말하는 기업들에게 묻습니다. 제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물건 판 적 있냐고.
- 구직자들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행위’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이해도 중요하지만, ‘돈’에 대한 현실적인 파악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 벼룩시장 공고에도 연봉은 써 있고, 아르바이트 공고에도 시급은 써 있습니다.
5. 불합격자는 합격자와 동일한 방법으로 공지해야 한다.
- 기업 10곳 중 6곳은 아예 불합격 통보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11월 1일 채널A뉴스 http://news.ichannela.com/economy/3/01/20141101/67592226/1) 즉 불합격자는 언제 발표가 난지도 모르는 거죠.
6. 최종탈락자의 경우 탈락이유를 한 문장 이상 설명해줘야 한다.
- 이번 롯데그룹 채용에서 평가 단계별로 점수를 공개해 탈락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런 설명을 통해 지원자는 탈락을 납득할 수 있고, 더 나은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합격과 탈락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낙하산 채용 등을 방지하고 부당한 이유(예:성별)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 롯데처럼 항목별로 수치화하지 않더라도, 한 줄이라도 설명이 있었으면 합니다.
7. 다음과 같은 질문을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하는 것을 금지한다.
▲가정과 일 중 선택하라는 질문 ▲결혼관, 자녀 계획을 묻는 질문(예:아이는 몇 명 낳을 건가?) ▲애인 유무를 묻는 질문 ▲외모를 지적하는 질문 ▲인신공격성 질문 ▲반말로 하는 질문 ▲가족의 직업, 회사 등을 묻는 질문 ▲다른 회사는 어디 쓰고 어디 붙었는지 묻는 질문
- 여전히 “아버지 뭐하시나?” 같은 질문이 최종 면접장에서 울려 퍼집니다. 직무능력과 관계없는 곤란한 질문들을 면접관이라는 이유로 던지고, 지원자들은 지원자라는 이유로 답해야 합니다. 때로는 답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질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합격시켜줄까 하는 마음에 무엇이든 성심성의껏 답해야 하는 것이 지원자의 처지입니다.
8. 면접비는 반드시 지급한다. 최저임금처럼 최저면접비도 두도록 한다.
- 교통비 정도는 받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 위치한 회사의 경우, 서울거주자는 왕복 교통비 2000원, 경기권 거주자는 4000원이라도 말입니다. 면접비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수백 명의 지원자를 부르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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