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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Heirens.
"For Heaven's sake catch me before I kill more. I cannot control myself."
1928년 11월 15일, 'Chicago'에서 태어난 'William Heirens'는 장난기 많은 소년으로 활기차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그는 지붕 위로 올라가, 마분지로 만든 날개를 달고 밑으로 뛰어 내리려 했다던 지, 과학적인 실험을 위해 거실 커튼과 양탄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는 모형 비행기를 만들거나, 오래된 시계를 수리하거나, 기계물들을 땜질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 등을 좋아했으며, 주위 사람들은 그가 그런 쪽으로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윌리엄의 부모 'George'와 'Margaret'은 결혼생활을 하면서, 둘 사이에 큰 문제는 없었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자주 말다툼을 벌였다. 이것은 많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따라서 대단치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윌리엄은 잦은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부모의 갈등에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그는 자기보다 세 살 어린 남동생 'Jere'는 그 문제에 잘 대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기는 그럴 수 없었다고 하면서, 훗날 그 당시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윌리엄은 부모의 말다툼을 듣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집에서 벗어나려 했다. 마침내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도피처를 찾아낸다. 그것은 도둑질이었다. 그의 도둑질은 7학년 때 식료품 가게에서 배달 소년으로 일을 하는 동안 시작됐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려 하면서, 다른 사람의 집 창문을 넘어들어 가는 것 등의 과정에서 긴장감 등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를 짜릿하게 했다.
열세 살 때, 그는 길거리에서 경찰에게 몸수색을 당하게 되는데, 그의 몸에서는 권총이 발견된다. 그는 주운 것이라고 변명을 했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계속된 조사를 통해, 그의 집 냉장고 뒤에서는 한 자루의 라이플과 세 자루의 권총이 발견되었고, 지붕 위에도 네 개의 무기들이 숨겨져 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경찰에게 조사를 받으면서, 하이렌스는 열한 건의 도둑질을 자백한다.
하이렌스는 인디아나 주 'Terre Haute'에 있는 가톨릭 학교로 보내진다. 불량 청소년 시설이었던 그곳에서 몇 달을 보낸 후, 하이렌스는 그해 6월 풀려난다. 그렇지만 다시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간 그는 'Rogers Park' 호텔에서 어슬렁거리던 중 경찰에게 걸리게 되고, 그의 소지품 중에서 근처 호텔의 열쇠가 발견되면서 다시 체포된다.
이번에 그는 일리노이 주 'Peru'에 있는 'St. Bede's Academy'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하이렌스는 삼 년을 보냈다. 그 동안 그는 그곳의 관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운동경기 등을 통해 단체 생활에 무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고, 특히나 그의 교과 성적은 매우 높았다.
관계자들은 하이렌스를 매우 명석한 학생으로 인정하며, 그 당시 시카고 대학에서 실시하던 특별 학습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을 추진했다. 그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 하이렌스는 고등학교 최고 학년 과정을 그냥 건너 뛰어넘고, 1945년, 열여섯 나이에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하게 된다.
교수들은 하이렌스에게 만족했다 그의 어머니는 말썽장이 아들이 드디어 바른 길로 들어선 것으로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하이렌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인간으로 바뀐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실제의 그는 여전히 도둑질에 물들어 있었다.
윌리엄 하이렌스의 도둑질은, 좋은 평가를 받았었던 페루에 있었을 때에도 쉬지 않고 계속 되었었고, 시키고 대학의 학생이 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렌스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물건을 약탈했고, 계속해서 범죄의 스킬을 연마했다. 그에게 있어 도둑질은 쉽게 떨쳐 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이렌스는 도둑질을 통해 성적인 만족까지 얻고 있었다.
열한 살 때, 하이렌스는 어느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요 이상으로 종교에 매달려 있던, 가톨릭 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섹스는 모두 추한 것이며, 다른 사람과 몸이 닿는다면 병에 걸린다는 것 등의 이상한 성지식을 가르쳐주었다.
몇 년이 지난 후, 하이렌스는 여자 친구와 부둥켜안고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애무를 하던 도중, 자연스러운 듯이 울음을 터트렸고 구토를 했다. 그는 비참함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사춘기의 좌절은 다른 배출구를 찾았다. 그는 여성의 팬티를 훔쳐 자위를 하는 데 사용했다. 히틀러나 나치 상급 간부들의 사진들을 모았고, 그렇게 해서 만든 스크랩북을 훑어보며 자신의 꼴림을 증폭시켰다.
1945년 6월 3일, 하이렌스는 시카고에 있는 'Josephine Ross'의 아파트에 침입한다. 조세핀 로스는 44세의 이혼녀로 두 명의 딸들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그날 밤은 딸들이 자신들의 직장에서 야근을 하던 탓에 홀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이렌스가 물건을 훔치고 있는 도중, 조세핀은 잠에서 깨어난다. 하이렌스는 조세핀을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칼을 집어 들어 몇 차례에 걸쳐 그녀를 찔렀고, 그녀의 목을 베었다.
그렇게 조세핀 로스를 죽인 후, 하이렌스는 납득키 힘든 행위를 한다. 자기가 죽인 조세핀의 몸에 묻어 있는 피를 닦아주려고 했는가 하면, 자신이 칼로 벤 그녀의 목에 붕대를 감아주려고도 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살인 현장에서 하릴없이 방과 방 사이를 오가며 두 시간을 보냈다. 그때 그는 다중 오르가즘을 즐겼다.
1945년 12월 10일, 하이렌스는 'Frances Brown'의 아파트에 침입했다. 프랜시스 브라운은 33세로 전직 군인이었다. 목욕탕에서 나오던 중, 프랜시스는 자기 돈주머니를 훔치고 있던 하이렌스를 발견한다. 프랜시스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하이렌스는 그녀에게 두 발의 총을 쏘았다. 그러고 나서 부엌칼을 가져와 살인을 끝마쳤다.
살인을 저지르고 그렇게 죽인 희생자의 립스틱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남김으로써, 윌리엄 하이렌스는 'Lipstick Killer'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한 달이 지난, 1946년 1월 7일, 하이렌스는 'Suzanne Degnan'의 침실을 침입해, 여섯 살 나이의 어린 소녀를 납치해 사라진다. 이때 그는 아이를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2만 달러를 준비할 것과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는 글들을 적어놓은 협박장을 남겨 놓았다. 그 협박장은 경찰을 혼란케하려는 하이렌스의 계략이었다.
하이렌스는 수잔을 근처 건물 지하실로 끌고 들어가 목을 졸라 죽였다. 그 후 사냥용 나이프를 사용해 어린 소녀의 몸을 토막 냈다. 그리고 이른 아침, 폭풍 등의 자연재해에 대비해 만든 하수구에 수잔의 시체를 버렸다. 일곱 부분으로 조각난 수잔의 시체는 시간을 두고 따로따로 발견된다.
6월 26일, 하이렌스는 도둑질을 하려던 중, 경찰과 부딪힌다. 그는 권총을 뽑아 들고 두 차례에 걸쳐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때마다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경찰들과 맞붙어 사납게 고군분투했지만, 그의 머리가 화분으로 인해 깨질 때까지였다.
머리가 깨진 하이렌스는 'Bridewell'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다. 수사관들은 침대에 누운 채 눈이 감겨져 있었던 하이렌스에게서 지문을 채취해 가져갔다. 그 이후 하이렌스는 시카고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들의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는다. 하이렌스는 그 사건들과 자신의 관련여부를 부정했다.
수사관들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하이렌스를 조사했다. 수사관들은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두 번에 걸쳐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했으며, 하이렌스에게 약물이 들어간 주사를 놓기도 했다. 그 당시는 피의자의 인권이 보호되던 시대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시카고 지역의 신문들은 하이렌스의 지문이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일치하며, 그의 필적 또한, 프랜시스 브라운의 욕실 거울에서 발견된 살인자의 메시지와 수잔 데그난 사건 때 유괴범이 남겨놓은 협박장의 그것과 일치한 것이 밝혀졌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이렌스는 계속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런 가운데 검찰측은 하이렌스의 변호인들에게 플리바겐(plea bargain)을 제의한다. 순순히 살인사건을 자백한다면, 사형만은 면하게 해준다는 조건을 내밀면서 협상을 하려했던 것이다.
언론은 이미 하이렌스가 살인자로 확정이 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었다. 때문에 여론은 하이렌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재판에도 크게 작용할 것이 분명해 보였고, 그렇다면 하이렌스가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을 당하는 것은 확실했다. 마침내 하이렌스는 검찰측의 제안을 받아 들여, 자신을 살인자로, 자백을 시작했다.
자백을 하면서, 하이렌스는 살인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George Murman'이었다고 주장했다. 조지 머맨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윌리엄 하이렌스로, 그의 변형된 자아(alter-ego)였다. 그리고 'Murman'은 'Murder Man'의 약칭이었다.
1946년 9월에 열린 재판을 통해 유죄가 인정되면서, 하이렌스는 세 번 연속으로 가석방의 가능성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그는 모범적으로 행동했다. 1972년 2월 6일, 하이렌스는 일리노이 주에서 최초로 재소자로서 대학학사 학위를 받는 인물이 되었다.
1983년 4월, 연방 판사는 하이렌스를 석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측의 반발로 1984년 2월 판결은 뒤집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이렌스는 살기 위해 자백했다는 말을 남기면서,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팀을 구성, 자기들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하이렌스는 살인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던 당시 사건 해결을 하지 못해 심한 압박을 받고 있던 경찰에 의해 지문이나 필적 등의 결정적인 증거들이 날조 되었으며, 언론 역시 계속해서 선정적인 기사를 쓰려하면서 하이렌스를 살인자로 몰아갔고, 결국 하이렌스가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연쇄살인자들은 자신들의 욕망은 무척이나 강렬했던 것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때문에 자신을 억제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욕망에 굴복당해 기괴하고도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이야기한다. 하이렌스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다.
체포되기 전 어느 날, 하이렌스는 자기 옷을 모두 욕실 안으로 던져 놓았다. 열쇠까지 그 안에 내 던졌다. 그렇게 자신을 집 안에 가두려고 하면서, 그는 자신을 통제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욕망에 압도당하면서, 개천 변에 있는 창문을 통해 욕실로 기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 걸 생각한다면 프랜시스 브라운 사건 당시, 욕실 거울에 적혀진 "For heavens sake catch me before I kill more. I cannot control myself."란 메시지는 혼란에 빠져 있던 한 인간의 절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연쇄살인자들은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에 범죄를 저질렀고 마침내는 체포됐다. 그 후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하고, 혹은 운이 좋아 자신의 생명을 이어나갔다고 할지라도 평생을 좁은 감방 안에서 자신의 자유를 제압당하며 살아야 했다. 기나긴 인생에서 잠깐이랄 수 있는 순간의 쾌락을 위해,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비극 속으로 몰아넣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 또한 자신들의 소중한 인생을 비극적인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1946년 10대의 나이에 체포가 되어, 60여년이 흐른 날까지 윌리엄 하이렌스는 감옥에 있었다. 그는 수감 중 여전히 조지 머맨의 존재를 확신하며 가끔씩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머맨의 존재를 입증시키지 못하고 2012년 3월 5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