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했던 현철이, 구두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예슬이...단원고 학생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인 제주도 ‘기억공간 re:born’에는 희생 학생들의 기호품이나 꿈을 형상화 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작가인 박민선 씨의 모습. 그는 올해 1월 9일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이해 해수부 앞에서 "어서 빨리 아홉 분을 가족 품으로 돌려달라"고 1인 시위를 했다.뒤쪽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바느질 작품을 함께 걸어놨다.ⓒ박민선 제공
단원고 김빛나라 학생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 박민선 작가가 가장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을 SNS에 올린 뒤 ‘배 모양은 부모님들이 보기 힘들어 하신다. 시원이는 음악을 좋아하니 기타, 예슬이는 구두디자이너가 꿈이었으니 구두모양, 이렇게 꿈의 모양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취지의 SNS 댓글이 달렸고, 박민선 작가는 이 댓글에 공감하여 꿈을 주제로 바느질을 만들기 시작했다.ⓒ박민선 제공
송지나 학생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 박민선 작가는 지나 어머니가 지나에게 메이커 옷을 사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사연을 듣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 ‘버버리’ 천으로 예쁜 원피스를 만들었다.ⓒ박민선 제공
세월호 희생 아이들의 꿈을 만날 수 있는 세월호 전시 ‘세탁소’ 전이 5월 25일부터 제주시 선교로 ‘기억공간 re:born’에서 열린다. 기간 제한이 없는 오픈런 형식으로 전시 작품을 계속 만나볼 수 있다.ⓒ기억공간 re:born 제공
세월호 희생 아이들의 꿈을 만날 수 있는 세월호 전시 ‘세탁소’ 전이 5월 25일부터 제주시 선교로 ‘기억공간 re:born’에서 열린다. 기간 제한이 없는 오픈런 형식으로 전시 작품을 계속 만나볼 수 있다.ⓒ기억공간 re:born 제공
단원고 김한별 학생을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 일 때문에 바빴던 한별이 어머니가 한별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못해줘서 미안했다는 사연을 듣고 만든 작품이다.ⓒ박민선 제공
권재근 씨(당시 50세)의 가족은 세월호 침몰로 일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권재근 씨와 아들 혁규(당시6세)는 아직 미수습자다. 베트남 출신 아내 한윤지(당시 29세) 씨는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고 막내딸 지연 양은 구조됐다. 하루 빨리 권재근 씨네 가족이 다시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바느질 속에 담겨 있다.ⓒ박민선 제공
누구보다 음악을 좋아했던 단원고 현철이. 남현철 군 아버지는 팽목항에 아들의 기타를 가져다 놓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현철이를 생각하며 만든 바느질 기타 작품.ⓒ박민선 제공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제자들에게 주고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간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 작품은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과 그리움을 ‘카네이션’으로 표현하고 있다.ⓒ박민선 제공
남편과 사별 후 생계를 위해서 아들과 떨어져 산 이영숙 씨는 제주도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꿨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제주에서 살 집을 구하기도 했다. 작품 속엔 제주도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가득 담겨 있다. 예쁜 집, 돌 하르방, 한라산.ⓒ박민선 제공
달리기를 잘했던 영인이는 체대 진학을 꿈꿨다. 영인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유독 축구화를 사주지 못해 미안해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팽목항에 영인이를 위한 축구화를 가져다 두기도 했다. 박민선 작가는 스포츠를 좋아했던 영인이를 생각하며 바느질로 축구화를 만들었다.ⓒ박민선 제공
조은화 양은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도맡아 할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수학을 좋아했고 회계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꿈이었다.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이야기 해주는 살가운 딸이었다. 이 바느질은 조은화 학생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다.ⓒ박민선 제공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당시 40세)은 참사 당일 아이들의 탈출을 돕느라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체육을 담당했고 수영을 잘했던 고창석 선생님은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줬다.ⓒ박민선 제공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던 다윤이. 힘든 일이 있어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착한 딸 다윤이를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다.ⓒ박민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