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유산은, 대개의 감상이 그렇하듯 최소 프로토스 시나리오까지는 수작이라 평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필로그의 미션에 대해서는 질적으로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에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언급하셨던, 3종족의 연합과 캐리건의 젤나가화 및 아몬의 처치라는 큰 플룻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블리자드가 그들답지 않게 자잘한 부분에까지 세심하게 신경쓰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1. 미션 브리핑 내 자유 부재
에필로그의 세 미션에서는 각 종족을 한 번씩 플레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전 자유의 날개, 군단의 심장, 공허의 유산에서 각각 사용되었던 주 기함인 히페리온, 거대괴수, 아둔의 창의 포트레이트를 다시 한 번 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시간상 정비의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급박한 상황(e.g. 공허의 유산-카락스가 기사 자격을 얻는 시나리오)으로는 보이지 않기에, 최소한 스토리상으로는 굳이 정비기간이 없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기존의 연구나 진화 트리를 계승하지 못한 경우(가령, 공허의 유산이 스탠드 얼론이기에 이전 시나리오를 클리어하지 않은 경우)를 반영하기 위해서, 트리 설정을 막고 고정시켰다라고 하면 기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기함이 등장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은 스타크래프트2 캠페인의 주된 요소인 서브 인물들과의 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마왕과의 최종전 앞에서 모든 참가인물이 저마다의 소감을 이야기하는 식의 플룻은 진부하지만, 스토리를 마무리짓는 데 어느 정도 필수 요소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서브 인물들과의 대화를 넣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이유는, 각종 분기의 정립에 있어 유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자유의 날개를 보면, 블리자드는 '아리엘 헨슨 생존분기, 토시 생존분기가 정식루트이다'라고 공언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외적인 발표에 불과하고, 모든 스타크래프트 2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게임 내에서 이 분기의 정식루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저 최종전 시나리오 직전에 그를 등장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e.g. 1
레이너: 멧, 어떤가. 이곳까지 온 기분이.
멧: 저곳에 위치한 존재, 저는 사이오닉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왠지 모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솔직히, 조금 두렵습니다. 하지만 보다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저는 반드시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레이너: 훌륭하네, 멧. 일전에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대는 미래를 볼 거라고.(자날의 대화 떡밥 회수)
멧: 아... 대장님, 그러고 보니 공허에 접근하기 직전에 히페리온으로 메시지가 송신되어 왔습니다.
레이너: 메시지? 무슨 내용인가?
멧: 아리엘 핸슨 박사가, "이번 일이 끝나면 꼭 다시 헤이븐으로 방문해 달라"고 하더군요.(아리엘 생존 확정)
레이너: 이거 참...
멧: (장난스런 어조로)대장님에게도 가정을 꾸릴 미래가 있지 않습니까?
레이너: 나는 과거의 사람일세. 그리고 캐리건과 함께하는 이상, 편안한 길을 걸을 수는 없겠지.
멧: 대장님...
e.g. 2
레이너: 토시, 왜 그리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나? 자네답지 않군 그래.(토시 생존 확정)
토시: 혼종...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존재는 얼마나 강할까요.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저 너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악의를.
레이너: 그렇군, 자넨 사이오닉에 민감하니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아몬을 없애는 것은 우리 시대의 책임일세. 마지막까지 나를 믿고 따라주지 않겠나?
토시: 저와 악령들은 뉴 폴섬에서 탈출할 때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레이너: 고맙네, 토시. 사람들은 그대들을 불안하고 공포의 존재라고 여기지만, 나는 그대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네.
뭐 대충 이런 느낌으로 말이죠.
아니면 후속작의 떡밥을 던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가령 아바투르의 대화를 통해서 말이죠.
e.g. 3
캐리건: 아바투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아바투르: 칼날 여왕. 조직 구성 변화. 요인. 추정 불가. 원한다. 샘플. 날개. 요구함.
캐리건: 건방지구나. 하지만, 젤나가의 구성조차 탐구하려 하는 네 태도는 높이 사마.(군단의 심장에서도 캐리건은 아바투르를 꽤나 높게 평가했죠)
아바투르: 테란 정수. 부분적. 연구 가치. 있음.
캐리건: 테란의 정수는 질이 낮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바투르: 칼날 여왕. 원래 테란 유령. 유령의 사이오닉 에너지. 연구 가치 있음.(후대 저그와 테란의 충돌 가능성을 열어둠)
(아 아바투르 진짜 어렵네요ㅜㅜ)
스타크래프트 2의 문제들은 스타크래프트 2라는 작품 속에서 스스로 그려내야 합니다. 외적인 개입은 작품의 질을 낮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각 기함과 주요 인물과의 대화를 다루지 않은 점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2. 전투 시나리오의 단순함
에필로그의 세 전투는 하나같이 너무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프로토스는 진격전, 테란은 방어전, 저그는 거점 파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특별한 변수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프로토스는 중간중간의 혼종 파괴자 출몰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전무합니다.
테란은 중간에 케리건을 이용해서 혼종을 파괴하는 것 외에는 역시 특별한 이벤트가 전무합니다.
저그는 아몬이 맵을 씹어삼키는(이 연출은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최종전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것 외에는, 각 지역의 적이 무한재생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습니다.
이는 앞서 말했던, 서브 인물들의 개입 등을 통해 보다 풍성하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령 프로토스 미션에서는
- 아몬이 힘을 모아 자신의 분신과 함께 대규모 병력을 본진에 보낸다. 이 때 알라라크가 7-8기의 승천자와 함께 등장! 알라라크는 아몬의 분신을 격퇴하고 일시 후퇴, 승천자는 본진에 가담.
- 후발로 쫓아온 발레리안 휘하의 유령 부대가 전술 핵 투하. "이걸로 약속은 지켰소, 신관."(공허의 유산 초기 떡밥 회수)
이런 식이라거나
테란 미션에서는
- 대규모 병력이 저그 진영에 공격해오는 순간, 히페리온의 지원사격이 이루어져서 다 쓸어버리고 격퇴. 멧이 멋있게 무선 치면서 대사 날림.
- 대규모 병력이 프로토스 진영에 공격해오는 순간, 토시가 "내가 자치령의 핵을 쓰게 될 줄은 몰랐군" 하며 핵 투하, 한 웨이브 방어.
- 캐리건 주변으로 적군이 접근하자, 스완이 "이런, 급한 모양이군. 내 귀여운 친구들을 보내주지" 하며 불꽃 베티 몇 대를 인근에 투하.
뭐 이렇게요.
저그 미션에서도 역시, 칼날 여왕이 거느린 저그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서
- 각지에 간헐적으로 저그 뭉치가 드랍, 그 속에서 데하카의 지휘를 받는 원시 저그나, 이즈샤의 명에 따른 공중 부대 지원 등이 옴.
물론 이런 전투 시나리오 내의 설정은, 반드시 그 자체로 판도를 바꿀 정도의 병력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종전이라면 이 정도의 정성은 쏟아주기를 바랬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스타크래프트 2 에필로그의 문제점은, 큰 스토리 줄기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만이 없습니다.
(개고생한 우리 레이너 사령관님이 보답받는다는 점에서 만족합니다ㅠㅠㅠ)
그렇지만 그 연출에 있어서, 전투 전 시나리오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나, 전투 내 이벤트적인 측면에 있어 지나치게 단순한 측면이 많이 보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2의 캠페인을 이끌어온 주된 매력포인트 중 하나가, 이들 서브 인물들(로리 스완, 아바투르, 알라라크 등)의 인기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이야기 역시 최종장에서 다루어졌어야, 보다 적절하게 '스타크래프트 2 메인 스토리의 완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요 솔직히 말할게요. 좀 날림으로 만든 것 같아요. 공허의 유산 본 시나리오랑 너무 비교되잖아요 ㅠㅠㅠ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니아드라는 노바처럼 DLC 시나리오로 나올 수 있으니 아직은 맥거핀이라 단정짓기는 이르지 않나 싶네요.(아마 노바 추가시나리오 없었으면 이것도 주된 비판대상이 되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