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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잘한다.
초등학교때도 잘했고
중학교때도 잘했고
고등학교때도 잘했다.
그런데 수능은 아니었다.
나는 친구가 없다.
하지만 시험치는날 쉬는시간이면 인기가 많아진다.
물론 내가 아닌 내 시험지를 보는 아이들이지만
시험을 치고나면 아이들은 항상 나에게 잘쳤냐고 묻는다.
부모님도 잘쳤냐고 묻는다.
선생님도 잘쳤냐고 묻는다.
나는 3년동안 단 한번도 빠짐없이 모르겠다. 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잘쳤다는걸.
그리고 오늘도 나는 모르겠다. 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못쳤다는걸.
나는 취미가 없다.
취미를 만들 시간도 없었다.
게임, 노래, 영화, 만화, 스포츠 ...
이 세상엔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것이 없다.
물론 공부에 흥미를 가지는것도 아니다.
나는 시험칠 때 긴장을 하지 않는다.
성적이 잘 나와도 그렇게 기쁘지가 않다.
오늘은 성적이 못 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슬프지가 않다.
집이 가까워져 갈수록 발걸음이 느려졌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시간을 때울 곳을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형이었다.
나는 형이 한명 있다.
형은 공부를 못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지만, 중하위권 성적을 유지하다가
3학년때 미술에 빠져서 공부를 포기했다.
지방의 전문대에 들어가 한동안 그림그리기에 바쁘던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그림도 때려치웠다.
엄청난 반대와 역경을 딛고 시작한 그림을
스스로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백수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형이 나한테 다가왔다.
잘쳤냐고 묻겠지.
그리고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하겠지.
왠지 기분이 급격히 나빠져 고개를 숙였다.
가까이 다가온 형은 한손으론 내 손을, 한손으론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수고했어 라는 말이 나를 무너뜨렸다.
시험을 치고나서 잘했냐는 물음이 아닌
수고했다는 말을 들은건 처음인것 같았다.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엉엉 울고 말았다.
나는 어렸을때 이후론 잘 울지 않는다.
남 앞에서는 울어본 적이 없다.
소리내어 울어본 적도 없다.
언제나 내 방에서 혼자, 조용히 한두방울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내가 울어버리자 형은 당황했다.
왜그래? 망쳤어?
형은 나를 끌어안았고 나는 더욱 울음이 터져나왔다.
형은 아무말없이 내가 진정할때까지 가만히 안고 있었다.
간신히 진정이 되자 꺽꺽거리며 말했다.
시험치고나서 수고했다고 말해준건 처음이야
형은 함께 울어주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가 달려나와 물었다.
어땠니? 수능 잘 쳤니?
결과를 말해주었다.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망친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내 성적에 비하면,
그리고 원하는 대학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점수였다.
엄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재수 어쩌고 하는것 같았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내가 이세상에 흥미를 가지는것은 사실 한가지 있다.
미술이다.
형이 고3때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때,
나는 엄청난 부러움과 질투에 휩싸였었다.
그리고 반대에 부딪치고 힘들어하는 형을 보며
형이 이겨내고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3년뒤 그림을 포기하는 형을 보며
충격과 절망을 느꼈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있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미술이 하고싶어.
엄마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다.
옆에있던 형도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엄마는 형의 뺨을 때렸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이불속에 숨었다.
바깥에서 엄마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니 밤이었고 밖은 조용했다.
하지만 나가보진 않았다.
핸드폰을 여니 수많은 부재중전화와 문자메세지가 있었다.
한개도 열어보지 않고 핸드폰을 껐다.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부품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사양이 꽤 좋은 컴퓨터다.
하지만 게임을 안한다.
오유는 가끔 들어와 즐기던 사이트였다.
두시간동안 오유만 구경했다.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쓴다.
지금까지 길고 재미없고, 목적도 없는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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