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묵행진과 관련해 검찰이 기소유예를 해준다는 회유로 반성문을 작성한 후 스스로를 자학했습니다. 제 자신을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상황으로부터 격리시키지 않으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여했던 안명진(19)씨는 4일 오전 서울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지난 10월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참가자들이 개최한 이날 기자회견은 수사당국의 조사 당시 학생들이 받았던 인권침해, 회유·협박 행위 등을 고발하는 자리였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여했던 안 씨는 지난 10월 14일 검찰의 회유로 서울지방검찰청에 방문해 반성문을 작성한 일 등을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인 안 씨는 지난 6월 10일 침묵행진 도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도봉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관련 사건은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이관됐다. 그리고 4달 뒤인 10월 14일 검찰청 수사관으로부터 ‘나이도 어리고 초범이니 서약서를 쓰면 기소유예를 고려해보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안씨는 지인들과 상의 후 서약서 작성을 위해 10월 20일 검찰청에 방문했다.
안 씨에 따르면 당시 수사관은 A4용지와 펜을 주면서 반성문 쓰라고 말했다. 안 씨는 ‘앞으로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집회에 참여하겠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썼지만 수사관으로부터 ‘내용이 모호하니 다시 쓰라’는 말이 돌아왔다. 안씨는 ‘다시는 집회 등에 참석하지 않겠다. 잘못했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다시 써서 제출했고,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답변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 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옳다고 믿고, 행동했던 모든 일을 반성문을 써서 부정한 후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세월호 추모를 위해 거리에 나간 행동들을 부정하는 내 글이 어떤 기록으로 남게 될지 두려웠다”며 “반성문 작성 이후 위선자처럼 보일 것 같아 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을 뗐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학 간담회를 위해 학교에 방문했을 때는 유가족들의 눈조차 마주칠 수 없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또 안 씨는 “세월호 집회에 참석했던 일들을 반성문으로 번복했듯이 다시 한 번 반성문의 내용을 번복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번복으로 검찰의 기소유예가 취소돼 제 삶의 궤적에 좋지 않은 흔적을 남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복하려고 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전과 후가 달라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다짐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의 회유에 흔들려서 저의 떳떳한 과거를 부정한다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다시 노란리본을 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침묵행진을 했다가 불법 시위 혐의로 연행된 대학생들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인권침해 및 회유를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민중의소리
아울러 침묵행진 참가자들은 “검경이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감옥에 수감돼 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세월호 침묵행진을 주모한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 했다”고 고발했다.
침묵행진에 참가한 이장원(22)씨는 “조사 도중 수사관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중인 ‘청년 좌파 소속 박모 씨가 집회를 주도한 것 아니냐’는 유도 심문을 받았다”며 “다른 참가자 4명도 조사 도중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수감 중인 박씨는 세월호 사고 직전인 4월 15일에 수감돼서 면회나 다른 접촉 등이 힘든 상황이었다.
또 이들은 “수사당국이 ‘세월호 진장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세월호 추모 청년모임’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단체를 만들어 집회 참가자들을 기소했다”면서 “이는 검경이 침묵행진을 공안사건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무리한 작문 기소”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박근혜 정권 하에서 검찰이 사이버 감시단을 구성해서 대규모 사이버 감시를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고, 집회나 시위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많은 연행·기소들을 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신고 집회라 하더라도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비춰 보아 평화롭게 진행됐던 침묵행진 참가자들을 기소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기소라고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소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에게 반성문을 요구하는 자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무리한 수사과정서의 문제점들에 대해 적절한 법적 대응이 이뤄져야 하며 민변에서는 필요한 법률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말했다.
한편, 지난 3일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세월호 관련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용혜인(24)씨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용 씨는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등을 통해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제안했던 인물로 지난 5월18일 광화문 광장 등에서 도심 추모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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