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현대 시대에 와서 개념인물등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일본군을 보아하면 대부분 학교성적이 턱없이 안좋았던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왼쪽은 임팔작전 당시 독립투사 상관을 대신하여 영국에 맞서 싸운 미야자키 시게사부로 중장, 우측은 한국 매니아들에게 아주 잘알려진 일본 해군 중장 기무라 마사토미. 둘다 사관학교 성적은 평균 이하였지만, 일본군중에 몇 안되는 제대로 싸운 장군,제독으로 평가됩니다.)
(반면 수석졸업이었으나, 삼대오물 수준의 평가를 받는 츠지 마사노부)
이런 클리셰 아닌 클리셰?를 깬 먼치킨 장군, 즉 명장으로 평가받으며 사관학교 성적또한 우수한 장군이 하나 있었으니..
(오늘 소개할 이마무라 히토시 대장. 군인 답지 않게 상당히 후덕한 옆집 아저씨같은 풍모이다)
어렸을때 덴노의 행차를 호위하는 육군을 보고 입대를 결심한 이마무라 히토시는 유년학교-육군사관하교-육군대학을 모두 수석으로 졸업하는 먼치킨 스러움을 과시했고, 그에따른 진급루트를 밟아 태평양 전쟁시에는 16군 사령관으로 부임 하게 됩니다.
1. 군인으로서의 모습
16군 사령관으로 남방작전에서 인도네시아 공략을 지휘, 10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9만여명의 네덜란드군, 5천여명의 영국, 호주군에게 항복을 받아내어 인도네시아 지역 점령과 팔렘방 유전 지대 확보에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 당시에 한가지 일화가 있었는데, 일본 해군이 미 해군과 싸우는중에 오인사격으로 육군의 수송함 몇척을 격침 시키고, 이로인해 이마무라 자신까지 바다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하며, 타국군이나 다름없는 일본 육/해군 사이에 내분이 일어날뻔 하지만, 이마무라 자신이 대인배 스럽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이에 고마움을 느낀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이 호위전단을 강화시켜 인도네시아 점령에 도움을 줍니다. 얼굴에서도 느껴지는 이런 덕장스러운 풍모는 훗날 이마무라가 왜 훗날 긍정적으로 평가받는지 알게해주는 여러가지 일화들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러한 공훈에 따라 8총군 사령관으로 진급하고, 1943년에는 대장으로 진급하게 되며 라바울과 뉴기니 지역을 방어하게 됩니다.
(라바울 방면의 지도)
이와중에 식견을 발휘, 라바울을 요새급 주둔지로 만들고, 직접 사령관(!)이 농사를 짓는 모범을 발휘 둔전으로 식량을 직접 생산, 종전까지 식량걱정 없이 미군을 상대하다 종전을 맡게 됩니다. 미군은 당시 개구리 뜀띠기 작전으로 라바울을 잠깐 정찰후 건너띄웠는데 훗날 평가로 이곳에 8~10만가량에 병력이 있는데다가 방비가 잘 되있는 만큼, 미군이 곤란을 겪었던 이오지마는 뛰어넘는 대 격전지역이 될거라고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군인으로서 이렇게 별다른 실수나 패전 없이 훌륭히 전쟁을 마치지만, 왜 이 사람이 극찬을 받나하는 이유는 당시 일본군이라 생각이 안될정도의 엄청난 대인배 스러운 인격 때문이었습니다.
2.명장이 아닌 덕장, 적군도 감화시키다.
인도네시아 점령 시절부터 약탈을 일삼는 대부분의 일본군들과는 다르게 점령지에서 선정을 베풀었고, 어떤 장교가 시민들에게 장난을 쳤을때, 그 장교를 질책하고 근신처분에 내리며, 다른 지역에선 인사도 안하면 죽음을 당했다는 모습에 비하면 엄청난 선정을 보이고, 이러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자바섬을 점령했을때, 일본군이 피복부족을 이유로 목면을 징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마무라는 쿨하게 이 명령을 씹으며 이렇게 말합니다."목면은 이곳 주민들에게 중요한 생필품이며, 만일 징발한다면 장례식때 죽은이에게 목면옷을 입히는 전통을 손상시키고, 사람들의 기본 생활을 파괴하게 된다."
예, 정말이지 일본군으로는 믿을수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사건이 문제가 되어 인도네시아에서 떠나게 되지만, 앞서 말했듯 공적이 인정되어 라바울로 가게 됩니다.
이 사람의 선행(?)은 라바울에서도 그치지 않습니다.
라바울에서 병사와 장교들에게 전면 위안부 자제령을 내리고, 위안부들에게 강제적으로 성노예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뭐 여기서 보고 결국은 그래도 했긴 했다는거내? 하겠지만...
그나마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위안부들을 불러다 하지 말라고 설득을 시키고, 일반적인 잡일만 시켰다고 하며, 훗날에 이마저도 후회하며 무조건 금지 시켜야 했다고 한탄합니다.
정말 우리에게는 적장이지만 박수 쳐줘야 될 사람입니다.
부제에서 말했듯 이사람의 인품은 적군까지 감화시키는데...
전후, 이마무라는 전쟁 범죄로 기소가 됩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분이면 "이런사람이 왜?" 혹은 "역시 일본군이..." 하겠지만 휘하 중대장이 명령을 거스르고, 마을사람들을 죽이는 학살을 저지르고, 이 이야기를 들은 이마무라는 그 중대장을 불러다 그자리에서 권총으로 즉결 처분을 내립니다.
이미 이렇게 처분을 내리며 다 끝냈었고, 당시 검사도 이러한일을 아는지라 형식상의 징역 1개월 정도를 구형하며 말그대로 형식상의 재판으로 할려 하지만....
뜬금없이 판사가 사형을 내립니다.
지금 까지 이글을 본 독자분들, 그리고 아마 군생활 내내 이마무라를 따른 병사들이면 이짤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갈갈이 날뛰겠지만...
당시에 점령하에 있었던 주민들과, 포로들까지 갈갈이 날뛰게 됩니다.
사형선고가 내려지자 주민들은 바로 소요사태를 일으키며 판사에게 돌과 계란을 던지고, 하루가 멀다하고 수백통의 항의서한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 휘하 포로로 잡혀있던 병사들이 재판장을 잡아다가 린치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너 이 판사xx, 지금 제정신이야?) (아마 그당시 포로들과 주민들, 휘하 병사들의 행동은 이 짤의 이상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변호사역시 당연히 "이딴 머저리같은 판결은 저기 방청석에 있는 8살짜리 꼬마애가 해도 늬들보다 나은 판결을 내리겠다." 라고 말하며 길길이 날뛰었고, 이에 따라 버티지못한 판사는 결국 판결을 바꿔
10년형으로 감소합니다.
(솔직히 이 판결도 어이없긴 마찬가지)
결국 전범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그의 대접은 다른 전범들과는 전혀 다르게 됩니다. 헌병들은 그에게 늘 예의를 표하며 융숭하게 대접을 하였고, 주변에 맛있는 식당으로 자주 데려가 줬으며, 그의 포로 들이 찾아와 치킨등 갖가지 음식을 들고 면회를 와줬으며, 그의 휘하 장교들또한 감옥내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오오.. 이정도면 치느님에 버금가는 진정한 성자...)
하지만 자신은 "다른 부하들이 다른 형무소에서 고생하는데 나만 편히 지낼수 없다" 라는 이유로 맥아더에게 부하들이 복역하고 있던 다른 형무소로 보내주길 간청했고, 맥아더 역시 보내주며 "나는 진정한 사무라이를 보았다."라는 격찬을 하게 됩니다.
출소후, 은둔생활을 하며 회고록을 집필하였고, 인세는 모두 전사자 가족들을 위해 기부하고 자신은 군인연금으로만 살아갔다고 전해집니다.
일본군이지만 적마저도 감화시키는 덕장이며 10일만에 10만이 넘는 적군들을 모조리 항복 시킨 명장 이마무라 히토시. 어쩌면 이런 사람이 불과 손가락으로 꼽을정도로 적다는게... 어쩌면 우리에게 참으로 다행인 일일지도 모릅니다.
차후 연재는 뭐 시간나면 하겠습니다. 뭐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