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출하고 나서 집에 와보니,
식탁위에 둔 생선이 사라졌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왔는지,
옆집 고양이가 식탁 아래에서 울고 있다.
그의 입 주변과 앞발에는 생선기름이 묻어있다.
옆집 주인에게, 그 집 냥이가 우리 생선을 먹었다고 얘기했더니,
생선 먹는거 직접 봤냐면서 소설 쓰지 말라고 한다.
식탁 아래에 있던, 생선기름이 묻어 있던,
옆집 고양이를 범인, 아니 범묘로 의심하는 것은
음모론일까, 합리적 의심일까?
2.
한 선박이 침몰했다.
가라앉은 배에서 노트북이 발견됐는데,
안에 '국정원 지시문서' 가 있다.
(물론, 국정원이 부대사업으로 해운업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침몰 당일, 선박에 있는 선원과 국정원 직원이
통화를 했다는 통화내역이 나왔다.
(선원과 정보기관 직원이 친구를 하지 말란 법 역시 없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40분 동안 구조를 하지 않았다.
처음엔, 구조하겠다는 다른 어선의 접근도 막았다.
(배가 침몰하진 않고, 그냥 기우뚱하기만 해서
바로 구조를 하면 너무 싱겁게 끝날거 같아 걱정이 된건가?
바로 구조를 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나?
아니다, 너무 큰 사건이라, 40분동안 숨을 가다듬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서
긴장감을 해소할 수도 있다)
속보로 '학생들은 다 구조되었다' 는 뉴스가 뜬다.
배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는지 파악도 덜 된 상태에서.
실제로는, 수많은 학생들이 죽었다.
(사고 설계를 하면서, 학생들은 다 구하자는 것이 시나리오?
아니다, 구조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많이 나오니까
다 나왔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사고가 났을 경우, 승객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본인들이 탈출한다는,
기본적인 선원 규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모두 일찌감치 탈출했다.
대피 방송도 없이. (대피 방송 버튼 누르기가 귀찮을 수 있다)
대피방송을 안 한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하고 탈출했다. (본인들 탈출길이 북적거리는 게 싫을 수 있다)
어느 집단에나 비율의 차이는 있지만, 선인도 있고 악인도 있기 마련인데,
15명의 선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악마처럼 행동했다.
(사고가 날 거라고 미리 언질을 받았나?
아니다, 그냥 한 선박에 악마들만 선원으로 모였을 수도 있다)
이것들 외에도 CCTV가 동시에 꺼진 것 등등,
의심스러운 부분은 많다.
(소설을 쓰고 싶은 내 욕구가 강한 것일 수도 있다)
3.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인해
국정원 해체 내지는 대개혁, 남재준 해임,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와중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이 터진다.
아니, 터지는 게 아니라 국정원이 내놓는다.
그런데, 바로 그 사건의 증거들이 조작되었다고 밝혀진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 '그 사건의 증거 조작 사건'을
검찰 내에서 동시에 수사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후자 사건의 피고인에는, 당연히 전자 사건 담당 검사도 포함될 수 있으니.
4.
4월 14일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고인인
'유우성'씨가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4월 15일,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은 사과를 한다.
그렇다면, 남은 수순은 무엇인가?
안 그래도 '국정원 개혁', '남재준 해임',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와중에
그걸 무마시키려고 내놓은 '간첩 사건',
그런데 증거가 조작됐다고 밝혀지면서
결국, 사건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받은 상황이다.
원래 나오던 얘기에 몇 배 더 힘이 실리고,
얘기들이 몇 배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4월 16일 오전, 세월호는 침몰했다.
그리고, 국정원 개혁이나 남재준 해임 얘기는
쑥 들어갔다.
5.
세월호 침몰에는, 어떤 식으로든 국정원이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음모론일까, 합리적 의심일까?
6.
사실, 위의 사안 중 몇몇은 음모론, 소설로 불릴 만한 것들도 있다.
해경이 정말로 당황해서 초동 대처를 잘 못 했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준비를 하느라 늦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단순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7.
위의 내용들은 분명 전에도 나왔던 얘기들이고,
저런 의심을 가진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크게 얘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순한 '불편한 진실' 차원을 넘어선
'무시무시한 진실' 이기에 그런것일까?
8.
그런 생각도 한다.
그냥 조용히, 별다른 의심없는 척
해운회사 비리만 캘 것 같은 느낌을 풍기면서
저들을 방심하게 하고선
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받으면
이런 것들을 다 조사할 생각은 아닐까?
괜히 이런 의심들 얘기하면
저들이 절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안 줄 테니까 그런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오히려 초를 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9.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게 두 수 앞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용한 게 아니라
애초에 이런 사실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조용한 것 같다.
이런 사실 관계를 알고도, 음모론이라고 주장한다면
정말 자신의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음모론이라고 한다면
그런 의견은 그런 의견대로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10.
사실 나도 모르겠다. 내 생각이 음모론인지, 합리적 의심인지.
그렇기에, 알아보자는 건데,
알아보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