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여왕 3
by 슈헤르트
" 내가 필요하다니 , 이 무슨 뜬금없는 부탁인지 . "
솜브라는 몸을 일으키며 투덜댔다 . 육체의 부활로 인해
아직 현실감과 동떨어진 몸은 말을 듣지 않았는지 삐그덕이는
목각인형마냥 이리저리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자아냈다 .
" 풋 , 푸하하하하하 ! "
" 웃지마 ! 젠장 , 몸이 갑자기 왜이래 ! "
" 그야 당연하지 , 네놈은 죽었으니까 .
아니지 , 이젠 죽었었다고 말을 고쳐야지 . "
" 뭐 ? 내가 죽었었다니 , 그런 개소리는 사양이야 . "
" 사실이다 , 주변에 갈가리 찢어져있던 네 시체를 보고
범상찮음을 느꼈지 , 그걸 모아서 다시 되살리는데 힘이 좀 들더군 . "
솜브라는 간신히 일어난채로 크리살리스를 바라보았다 .
믿기지 않는다는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솜브라의 모습에 , 크리살리스의 눈엔 아까와 같은 포악한
야수보단 어린 포니 한마리 같다고 잠시 그녀는 생각했다 .
" 좋아 , 그래 . 나도 기억이 없으니 거기에 대해서
부정하기가 어렵군 , 그럼 나를 살려낸 이유는 ? "
" 우리 종족의 재건이며 , 승리를 위해서다 . "
" 내가 그 동참에 거절한다면 ? "
" 널 되살리는것도 가능했는데 , 다시 죽이는것에 대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네 . "
" 이거 완전 반 협박이군 . "
" 지금 너에게 딱히 선택권은 없어보 . . "
" 여왕님 ! 서쪽에서 로얄가드 수색대가 오고있습니다 ! "
솜브라와 크리살리스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즈음 ,
주변에서 망을 보던 체인질링 하나가 소릴 지르며 달려왔다 .
아무래도 솜브라를 되살릴때 썼던 마법의 섬광이 그들의
눈에 띄였는지 , 곧이어 주변에서 둔탁한 발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이런 , 빨리 도주해야 . . 읏 ! "
" 여왕님 ! "
" 이봐 ! 뭐하는거야 ! "
급격스러운 소식에 몸을 피하려는 크리살리스는 쓰러지며
자신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걸 느꼈고 , 이내
방금 자신이 솜브라를 되살리는데에 있어 상당량의 기운을
빨렸다는것을 기억해냈다 .
" 여왕님 ! 빨리 대피하셔야 합니다 ! "
" 꾸물거릴 시간 없다고 ! 거기 자빠져서 뭐하는거야 ! "
" 몸에 . . 힘이 들어가질 않아 ! "
" 여왕님 . . . ! "
그자리에 쓰러져 어쩔줄 몰라하는 크리살리스를 바라보던
체인질링들은 , 이내 몆몆이 로열가드 수색대가 오는 방향을
향해 뜀박질 하기 시작했다 .
" 뭣들 하는것이냐 ! 너희는 그들을 막을수 없어 ! "
" 막을 생각은 없지만 , 지킬 생각이 있습니다 .
부디 저희의 몫까지 옥체를 보존하소서 ! 여왕이시여 ! "
그말을 마지막으로 , 체인질링들은 수색대가 오는 방향으로
돌격했으며 , 이내 싸우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
" 아아 . . 안돼 . . 또 나때문에 . . ! "
" 이런 젠장 , 어쩔수없지 ! "
솜브라는 어쩔수없다는듯이 자리에 쓰러져있던
크리살리스를 들쳐매고는 내달리기 시작했다 .
크리살리스가 쓰러져있던 자리엔 그녀를 위해 , 여왕을 위해 ,
어머니를 위해 희생하는 자식들의 비명만이 남았다 .
크리살리스는 다시한번 보았다 , 옛 패전 자신의 무능함으로
자신의 자손들이 죽었던 것을 , 이렇게 핏줄서린 눈으로 그들의
희생을 바라보고 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무능함을 .
" 허억 . . 허억 . . 이런 젠장 , 내 몸가누기도 힘든데 . . ! "
몆십분을 뛰었는지 , 몆시간을 뛰었는지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쉼없이 추격대를 피해 달려온 그들은 , 마침내 추격대의 시선에서
벗어나 비로소 안전하다고 할수있을정도로 그들을 따돌렸다 .
주변을 둘러보니 , 아까와 같은 남색 숲이 아닌 검은 숲이였다 .
여기저기 짙은 녹색빛 점액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 밑에 땅굴
같은것도 여러게 있었다 .
" 후우 , 그래서 . 이 거무죽죽한 곳은 대체 뭐하는 장소야 ? "
" . . . 우리의 군락이니라 . "
" 대충 분위기가 그래보였어 . "
" . . 내려줘 . "
솜브라의 어깨에 여전히 들쳐업혀있는 크리살리스는 , 젖은
물걸레마냥 힘없이 중얼거렸다 . 솜브라는 예의따윈 개나줬다는듯이
바닥에 툭하고 그녀를 던졌고 , 그녀는 몸을 추스려 고개를 푹숙이고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채 기운없이 앉아있었다 .
" 어떻게든 따돌린것같군 . "
" . . . "
" 네 부하가 전멸당한건 . . 애석하게 생각해 . "
" . . . "
" . . . 이봐 , 뭐라도 대답을 해주지 그래 . "
" . . . 말시키지 말아줘 . "
" 아니 , 너무 자괴감 느끼지 않아도 되잖 . . "
" 닥쳐 ! 네놈이 뭘안다고 그 더러운 주둥아리로 떠들어 ! ! "
솜브라의 말을 듣던 크리살리스가 , 갑자기 그를 덮치며
불과같은 화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 이에 대해 솜브라는
맞대응 하려 했으나 , 그녀는 화를 내는 동시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솜브라는 아무대응도 할수없었다 .
" 내 아이들이 , 내 무능함때문에 죽어 나가는걸
내 눈으로 다시한번 보았을때 , 내 몸이 찢기는듯한
고통을 느꼈어 ! ! 나때문에 그 여린 아이들이 다시한번
죽어 나갔다고 ! 니가 이 기분을 알기나해 ! ? "
" . . . 알았으니 일단 날 깔고 뭉개고 있는
니 몸좀 치워줄래 , 더이상 말 안걸테니 말이야 . "
크리살리스는 코를 훌쩍이며 올라가 있던 솜브라의 몸에서
내려와 다시 아까처럼 기죽은 상태로 앉아 땅바닥만 바라보았다 .
솜브라는 그런 크리살리스를 바라보다 이내 그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
" 여왕치고는 , 마음이 너무 여린거같은데 . "
솜브라는 군락 주변을 걸으며 생각했다 .
자신은 지금당장 이곳을 벗어나 더이상 크리살리스의
협박에 시달릴 필요도 , 부탁을 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
하지만 그녀의 다른모습을 보자 , 이내 생각은 바뀌었다 .
그리고 지금 그녀를 버리고 다른길을 걷는다 해도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은 그저 한마리의 나그네에 불과했다 .
심지어 그 기억속 과거의 나는 어떤놈이였는지 , 그것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여 어느 한곳에 무턱대고 정착할수도 없었다 .
그렇다면 지금은 유일하게 자신을 거두는 하나의 여왕에게
믿음을 주고 , 조력을 한다는건 결고 나쁘지만은 않을 선택일터 .
" 저 코찔찔이 여왕은 좀 . . 그렇지만 .
그래도 길이 이거 하나밖에 없군 , 쯥 . . "
솜브라는 , 마음을 바꿔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