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문화의 근원 부여, 가야 그리고 백제
오늘날 많은 나라의 지식인들 사이에 ‘뿌리’를 찾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상용업무가 아님에도 상당한 일정으로 한국 남부지역을 방문, 부산으로 입항해 경주를 방문하고 부여와 공주를 찾는다. 사실상 백제권의 박물관은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인보다 더 진지한 자세로 둘러보는 장소다. 이곳은 한국으로부터 전래된 일본역사와 문화, 특히 6세기에서 7세기 문화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반도에 융성했던 국가들 중에 백제는 오늘날 상하이 부근의 불교국가 중국 양(梁)나라와 가까운 국교를 누렸는데 ‘가장 예술적이고 비전투적인’ 성향의 나라로 간주되었다.
백제와 양나라 지도자들은 경쟁적으로 불교를 숭상했다. 이 당시의 불교는 대륙에서 한반도로 문자와 의학지식(의료사업은 불교전도의 한부분이었다) 외에도 여러 가지 예술을 전파하는 도구역할을 했다. 조각과 회화, 기타 세세한 예술도 불교를 장엄하는 목적으로 발전되었고 불교 건축 또한 성행했다. 불교의 대 파트론들이 바로 귀족층이었으므로 궁궐은 절 건축을 본 딴 것이 되었다. 지배계층 귀족들은 호국불교로서 이 종교를 받아들였다.
(일본 규슈 다케하라(竹原) 고분 벽화.
5세기경 항해해온 배에서 말을 부리는 사람이 있고 공중에는 또하나의 커다란 말(天馬)이 그려져 있다. 한반도에서 건너와 일본에 들어온 부여족과 말을 그린 것이다. 동시에 天馬의 개념도 따라왔다.)
그러나 일본은 6세기 중엽까지도 불교를 접하지 못했다. 369년부터 505년에 이르기까지 왜일본은 한국혈통의 무속왕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철기사용과 군사 전략면에서 일본 원주민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었던 한반도 부여기마족들은 369년에서 370년에 걸쳐 왜국을 손쉽게 정벌하고 일본에 최초의 중앙집권체제를 수립, ‘신성한 왕권’을 누리게 되었다. 부여족들은 한반도의 가야와 외교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지켰는데 근본적으로 부여족이 일본내에 전파한 문화는 불교 이전의 무속문화권으로 말을 숭배하고 강력한 통솔력과 대형 봉분 매장제도를 지닌 것이었다.
1973년 나는 일본 나라(奈良)의 가장 오래된 마을을 찾아갔다.‘후루’라는 이름을 지닌 곳이었다. 컬럼비아대학 개리 레저드 한국어교수에 따르면 ‘후루’란 말은 ‘부루’ 또는 ‘부여’를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레저드교수는 부여족이 상당수 바다를 건너와 일본을 정벌한 연대를 정확하게 369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필자 역시 오사까-나라일대에 산재한 떼 입힌 대형 고분들이야말로 일본의 정복자 부여족의 무덤이라고 믿는다. 이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고분은 닌또꾸천황(仁德王)능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한 겹의 해자만이 고분을 둘러싸고 있지만 원래는 세 겹의 해자가 둘러쳐져 있었고 총길이는 무려 1천미터가량이다. 이 규모는 이집트 피라밋의 절반에 달한다.
일본왕의 한국 부여족 혈통을 보다 일본적인 화족 혈통으로 변조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720년 쓰여진 일본의 공식 역사서 일본서기에도 닌또꾸왕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 기록자들은 그같은 변조를 뒷받침하기위해 부여족이 일본을 정벌하여 생긴 왕권교체기에 어떤 일본왕들은 몇백년씩을 살았다고 조작해놓고 있는 것이다. 8세기 일본사가들은 오진(應神)왕을 ‘神功황후가 한국을 정복한 뒤 12개월만에 출산한 아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공이 한국을 정복했다’는 이 기록은 물론 완전히 뒤집혀져 날조된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로 부여기마족들이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가 우선 규슈를 정복하고 연이어 서부 혼슈를 점령하여 지금의 오사까-나라일대 대평원에 수도를 건설했다. 부여족은 기마족으로서 매우 월등한 전투력을 지녔기 때문에 신속히 정벌을 이뤄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미개한 일본 원주민들은 쉽게 굴복했다. 부여 기마족은 505년에 이르러 내부분열로 부여족 왕권이 끊길 때까지 일본을 보다 조직적으로 통합되고 개선된 군사력을 갖춘 국가로 이끌었다. 부여족들은 무속을 신봉하고 있었으며 불교는 그때까지 전래되지 않았다.
(일본 오사까에 있는 후기고분시대의 仁德王(닌도쿠천황)릉. 한반도에서 간 부여족의 무덤으로 간주되는 이 능의 발굴은 금지되어 있다. 능 주변에는 해자가 둘러쳐 있다. ⓒ프레시안)
이들 부여족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고구려에 인접한 한반도 북방계 부족으로 낙랑이 망한 뒤 남쪽으로 이동해 왔으며 일부는 선비족에게 정복되었다. 부여의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한강까지 접했으며 부족 일부는 백제와 합쳐치고 일부는 가야를 거쳐 부산으로 이주, 정착했다.
일본이 ‘만세일계’ 혈통의 첫 왕으로 떠받드는 유명한 신무왕(神武王), 즉 진무덴노에게는 규슈에서 나라로 정벌했다는 이야기가 따른다. 이 사실은 바로 부여족의 일본 정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8세기 들어 기록에 나선 일본사가들에게 일본에 문자가 등장하기 이전 시기의 역사란 매우 까마득한 것이었다. 이들은 신무왕의 거사를 서기전 660년의 일로 돌려놓았다. 어느 나라나 초기의 역사기록은 개국이 오랜 옛날 이루어졌음을 역설하고 있으며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규슈에는 한반도에서 해협을 건너 일본에 상륙한 부여족을 묘사한 벽화가 남아 전한다. 규슈는 그런대로 발굴이 가능했지만 일본 나라의 고분은 발굴이 금지되어 있다. 만일 닌또꾸왕릉이 발굴됐을 때 가야양식의 금관이나 귀걸이가 나오든지 가야나 백제토기와 같은 유물이 나오면 일본왕실로서는 난처한 일이 될 것이다. 일본은 보다 자유로와져서 20세기 식민정책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중들이 진실을 알 수 있도록 나와야 한다.
5세기 일본의 부여족들은 가야출신의 귀족가문과 혼사를 맺었다. 부여족 후손들은 신라가 가야를 합병한 562년까지 가야에 대한 영향력을 지녔다. 7세기말 일본이 처음으로 실시한 호구조사에서 귀족층의 30%가 외국인 성을 지닌 사람이었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인, 특히 660년 백제가 신라에 함락되자 유민이 되어 조국을 떠나온 부여족 후예들이었다. 백제 인구의 상당부분이, 그것도 지적으로 뛰어나고 유능한 전문가그룹이 조국을 떠나 동맹국 일본으로 피신해온 것이다. 한국으로부터의 이러한 다량의 두뇌유입은 7세기들어 불교국가를 표방한 일본이 불교예술과 건축기술 등 차후 자국문화를 일궈나가는 데 크나큰 힘이 되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본 불교예술의 번영과 중앙집권제같은 정부구조법 등은 지속적으로 한반도로부터의 유입에 크게 의지한 것이었다. 한반도로부터의 이러한 유입은 서기전 330년 석기시대의 일본사회에 논농사법을 전파한 이래 시대가 지나면서 수많은 영향의 전래로 이어졌다. 이런 영향 가운데 가장 중대한 두 가지는 4세기 부여기마족에 의한 상당수의 지배층 유입과 대형 고분장제의 도입, 그리고 7세기 후반 수많은 백제 유민들의 일본사회 편입에 따른 영향이다.
규슈국립대학 다무라교수는 최근(1982년) 출판된 저서에서 8세기 이후 중국이 일본문화의 종주국으로 나서기 전까지 한국은 수백년 동안 일본문화의 모체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다무라교수는 이 책을 출판한 직후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일본에서는 그런 사실이 듣기 싫은 것이었을 수 있다.
원문; Japan's Culture Rooted in Korea 1 : Puyo, Kaya and Paekche
1982.5.10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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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은 왠지 삐뚤어져있다...
저들은 그 역사의 근원이 우리나라에 있다는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한 꼬투리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그들은 뿌리를 찾는게 아니라 뿌리를 감추고 또 뿌리를 바꾸는데에만 투자할 따름이다.
그들이 발굴하지 않는 고분이 본문에도 나와있지만 여러군데이다.
그이유는 그 형태나 나올만한 유물이 뭐란걸 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기때문이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역사를 품고 사는 일본애들이 불쌍하다.
사실을 얘기하면 (일본의 고대역사가 우리나라에 영향받았다는 사실이나 우리가 그들에게
문화를 전해주었다는 사실, 그리고 고대의 지배자들이 우리선조였다는 사실) 그들은 애써
외면할 뿐이다...이제는 쏙 들어가버린 임나일본부설과 더불어...
일본의 한학자가 유물을 위조한 사건도 있었고, (얼마나 자기네 역사가 부끄러웠으면)
역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면 위에서 본바와 같이 매장당해버리고,
전에 전방후원군형식이 일본땅에만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발견이 되지않는다면서 자랑스레 떠들던일도 얼마전엔가 우리땅에서 더 이전의 전방후원군이 발견되는 바람에 것두 물건너 가버렸다.
정말 보고있자니 가관인 노릇이다...
그냥 일본 너희들은 하늘에서 뚝떨어진 별종민족이라고 내뱉어 주고만 싶다...
저들의 배은망덕과 표리부동의 다테마에와 혼마에가 다른 것은 저런 역사인식에 근원한바 클것만같다.
사자처럼 용감하고 풀처럼 누울줄 알라
물유본말하고 사유종시하니 지소선후면 즉근도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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