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은 2년 전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현실 정치를 시작한 날입니다. 출마선언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2년간 현실 정치 속에서 실제로 경험해보니 부족했던 점들이 많았습니다. 정확한 실상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값진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출발하겠습니다.
보람 있었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정치 입문 이전부터, 제가 무엇이 되기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대신에 백신 프로그램 V3를 만들게 된 것도, 벤처기업 사장을 계속하기보다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된 것도, 제가 가진 재산을 기부해서 공익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였습니다.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고, 대선후보 단일화를 위해 내려놓는 결단을 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장현 광주시장 공천도, 호남정치의 변화를 열망하는 광주시민의 마음에 개혁공천으로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당내경선을 통한 공천은 참신하고 능력 있는 정치신인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기초연금법 통과 과정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안은 잘못된 것이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찬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연금지급을 미룰 수는 없었습니다. 먼저 연금을 지급한 뒤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기로 하고, 당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아쉬운 점들도 많았습니다. 민주당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기로 한 것은 대한민국 정치를 이끄는 거대 양당 중 한축을 개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탄생의 명분이기도 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무산되면서 동력을 잃었습니다. 정당공천 폐지 여부를 여론조사에 부치기로 했던 것은, 대표가 된 직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론조사의 승리를 통해 튼튼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국면을 하나씩 돌파해나가면서 인정받는 방법을 택했어야 했는데, 단기간에 안정을 이루려고 했던 것은 제 과욕이었습니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의 두 선거 공천 작업을 하면서 개혁적인 공천과 선거 승리 가능성의 두 가지를 함께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신인은 승리 가능성이 낮고 중진은 개혁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점이 고민이었습니다. 특히 7.30 재보궐선거의 경우에는, 선거 이후 본격적인 정당개혁을 시작할 생각으로, 선거의 승리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합니다. 공천도 중요하지만 과정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도 절감했습니다.
또한 두 차례 큰 선거를 치른 이후로 미뤄두었던 정당개혁을, 대표를 그만두게 되면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창당때 새롭게 당헌당규를 만들면서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가 당무혁신실 신설이었으며, 이곳을 통해서 정당개혁을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낡은 정치와 치열하게 경쟁해서 새정치를 구체화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는 참담한 비극이며 어린 생명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변화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했음에도, 정치권의 잘못으로 정쟁으로 비판받게 만든 점에서 정치권 모두는 역사에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저도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대표로 있는 동안 잘 마무리 짓지 못한데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최근에 정치입문 전에 출간했던 ‘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읽으면서 당시의 초심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인으로서 의학, IT, 경영, 교육의 여러 분야에서 일하면서 한결같이 소통하고, 혁신하고, 나누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지난 2년간 정치에서의 값진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이제부터 다시 뚜벅뚜벅 한걸음씩 내딛겠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국민을 만나고 국민께 듣고 함께 길을 찾겠습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나씩 구체화해나가고, 격차를 해소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정치를 실현하겠습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14. 9. 24 안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