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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왜 서방으로 전파 안되었는가의 의문에 답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화삼투압 현상 때문 같습니다.
불교가 탄생하던 시기 인도지역 역시 고도의 철학화된 종교가 탄생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인접한 중동 지역이 종교가 없던 것이 아니죠.
서방으로 가기 위해 이른바 중동지방을 넘어서야 하는데
이 지역은 세계문명의 발상지로 그리 만만한 지역이 아니였습니다.
불교의 탄생시기 즈음이면 이미 중동지방의 종교는 다신교체제를 넘어 일신교 사상으로 진화하던 중이었고
실제 인도와 인접한 페르시아같은 지방은 이후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와 같은 체계화된 일신교가 지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누군가 이야기 하듯 다신교-일신교-무신 순서로 진화한다면 고등종교인 일신교의 영역이 보다 몰입도가 높고 종교적 전파력이 뛰어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다신교 문화를 곧 유입된 일신교에 흡수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고
실제로 이들의 다신교 신들은 일신교의 영역안에서 신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이른바 성인으로 추상화 되는 과정을 거쳤죠
일신교가 다신교보다 고등종교라는 증거가 아닌가 합니다.
반면 불교의 경우 다신교체제인 힌두교체제를 바탕으로 더 나아가 해탈이라는 방식으로
사실상 무신교의 철학적 영역으로 접근한 종교입니다.
이전에 불교의 경우 불타를 비롯해 각 제자들을 형상화한 보살의 개념으로 다신교화 되어 전파되었지만
그 깊은 사상으로 들어가면 종교의 경지를 넘은 자기수행의 철학에 이르게 되지요.
일신교가 가진 종교적 영역 광적인 맹신의 신비주의 부분이 많이 부족합니다.
이런 불교의 교리적 특성이 이미 일신교의 영역으로 진입한 중동지방에 전파되는것이 힘든게 아니였는가 합니다.
알려진바와 같인 중동지방은 사실상 세계의 종교의 탄생지와 다름 없는 문화선진 지역입니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도 영향을 준 풍부한 다신교 신앙의 발상지이자
최초의 체계화된 일신교인 마니교, 조로아스터교의 발생지이고
다시 이들의 융합을 통해 고도화된 일신교로 지금도 영향을 미치는
유대인의 유대교를 비롯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탄생지역입니다.
이런 세계사에서 가장 유서깊고 문화적 영향력이 큰 종교의 발상지에
인도의 형이상학 철학이 반영된 불교의 신앙이 침투할 힘이 되려 부족했던게 아닌지요
세계 종교의 대다수를 점하는 종교가 탄생한 지역이 바로 중동인데
이 지역을 뛰어넘는 문화적 영향력이 인도에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하는게 순서가 아닌가합니다.
반대로 불교가 왜 동방으로 전파되었는가
불교의 전파경로를 보면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 일본 또는 버마 인도차이나 동남아 순서로 전파됩니다.
아시다 싶이 이 지역은 불교의 전래 이전에 종교문화를 꽃피운 바 없는 종교공백지였고
그중에 문명권이라 불리워 지는 중국역시 제자백가의 정치이론, 철학이론, 형이상학적 사유의 구축만 이뤄졌을 뿐
불교와 같은 고등종교의 탄생은 없었지요.
문화는 그 영향력이 큰 지역에서 낮은 지역으로 확산되며 전파됩니다.
문화 삽투압 현상이죠. 중동지방은 불교가 비집고 들어가기엔 이미 너무도 많은 종교문화가 다투는 중이었고
불교는 자연 스럽게 종교문화의 공백지였던 동방으로 집중되어 전파된가 아닌가 하네요.
이슬람을 이야기 하시는데
이슬람의 전파는 이미 불교가 자리잡고 난 1천년 이후의 이야기죠
이슬람 역시 강력한 일신교 사상을 바탕으로 기존의 종교영역을 침투했습니다
중앙아시아지방을 거쳐 장안까지 전파된 바가 그러했고
이슬람상인들의 해상 무역로를 따라 지금도 이어지는 동남아 지방으로 전파도 그러했죠.
심지어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까지 이르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같은 국가도 있습니다
(인도와 이들 국가는 문화,역사적 경험은 같으나 순수하게 종교로 갈라선 국가죠)
일신교 신앙이 그 종교적 몰입을 바탕으로 다신교, 무신교 영역을 깊게 파고든 흔적이 아닌가합니다.
다만 서구의 경우 같은 또다른 강력한 일신교인 크리스트교가 이미 정착하였기에
양 지역의 일신교가 이른바 십자군전쟁으로 끊이없이 충돌하였고
이러한 문화투쟁은 지금도 지속중입니다.
아마 이런게 아닌가합니다.
*첨언하자면 불교가 일신교에 뒤쳐진 종교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불교자체가 종교적 성격과 철학적 성격을 공유하는 고등종교이기에
종교적 파급력이 일신교를 뛰어넘지 못한게 아닌가 하네요.
참고로 김용옥 선생의 경우 불교를 무신교의 종교라 정의했습니다.
그 종교적 영향력을 위해 윤회를 말하고 각종 보살을 통해 과거 다신교의 신처럼 숭배하지만
(서구의 다신교의 신은 성인으로 표상되며 흡수되었고 지금도 전해지죠. 중세 기독교 성인들이 신앙이 투영된 대표적 사례들입니다.)
그 본질은 개인의 해탈이고 이를 통해 달성되는 무의 영역입니다.
형이상학의 고민을 넘어서 인간실존의 문제를 건드린 사실상 철학의 영역이죠
서구의 일신교 종교가 이러한 영역에 오기까지는 수백년이 걸려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 선언함에서 보듯
서구의 철학적 사유가 진화하며
"진리의 추구" 이른바 형이상학이 종말을 고하고
실존주의 철학이 대세가 된 근대에 이르러야 도달했습니다.
문제는 대중으로의 전파는 이런 어려운 철학보다는
직관으로 설파하는게 더 파급력이 크다는 것이죠.
이성보다 감성이 더 깊게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오랜 진리입니다.
때문에 현대 실존주의 철학이 철학을 논하기 위해 감수성을 건드릴 매채체로
문학이란 도구를 적극활용했지만 이는 또한 문학적 감수성과 지성의 결합이기에
대중이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부분이기도합니다.
인류가의 더욱 발전하고 지식이 더욱 보편화되며 문명이 고도화되면
이런것 조차 익숙한게 될지 모르겠지만
21세기 현재에도 일신교가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그 성숙이 아직 멀었단 반증이 아닌가 하네요
하물며 2천년 전에는 더 심했겠죠.
불교가 일신교문명권을 돌파 못한 이유가 이런게 아닌가 하네요.
이런거죠
까뮈의 시지프스비유를 통해 인간이 왜? 살아가는가를 논하며
대중이 삶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기독교가 그러듯 목사가 예수님의 사랑을 설교하는 것과
기도를 통한 깨달음이 더욱 쉽게 와 닿으며
이슬람 시아파가 그러듯 알리의 희생을 설교하며 신비주의적인 의식을 통해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영적직관이 다 쉽게 와 닿는것이죠.
그런게 아닌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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