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루리웹
(그냥 마구잡이로 글 적게 될꺼 같은 느낌이 드네요....이해를 좀 부탁하겠습니다..^^;;)
우선 차범근의 98년 월드컵 당시 배경을 좀 이야기 하겠습니다.
1. 98년 이전의 축협 및 주변과의 불협화음.
- 우선, 차범근이라는 선수 자체가..그다지 눈치빠르고, 사회성(?) 좋은편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서독에서의 선수시절...유럽에 온 네명의 기자가..취재를 이유로..
차범근에게 여비를 제공해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당췌 기자가 벼슬인지..;;)
국내에서 상당기간 안좋은 기사가 나간적이 있었죠. (거의 길거리 욕설 수준의 기사들..)
- 월드컵 예선 전 부터 축협, 자세히는 기술위원회(당시 기술위원장 조중연)와의 갈등은 유명했고..
기자들과의 사이도 그닥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자들이 대접받던 분위기에...
기자들의 선수 숙소 출입 제한, 감독 인터뷰는 지정된 시간에만 허용...등등의...기자들을 대접(?)을 소흘했던 탓이죠.
※ 차범근 감독이, 보란치 포지션을 첨으로 도입을 했더니..기술협이랑 기자들이 그런 수비적인 전략으로
어찌 세계무대에서 싸울꺼냐면서 죽어라고 까기도 했던 시절이였습니다..-_-;;
- 하지만 예선통과를 손쉽게 하고, 특히나 짜릿했던 도쿄대첩 이후로는 초절정의 인기를 받게 되니..
언론이니 축협에서도 그다지 손을 쓸수가 없었습니다..하지만 다른 한일전이 차범근 감독의 발목을 잡습니다.
- 98년 3월에 열렸던, 다이네스티컵의 한일전에서 패배를 하게 됩니다. 일본을 상대로 2연패를 하게 되니,
그다지 여론이 좋지 못하게 된데다가...축구협회는 이때구나 하면서 칼을 드리댑니다.
- 그간 선수선발 등에서 거의 전권을 가지고 있던 차범금 감독은, 다이네스티컵 이후로 많이 위축이 됩니다.
- 오죽하면 부인인 오은미씨가 기술위원회 사람들을 '파리떼'라고 부를 정도 였으니깐요.
※ 차범금 감독이 '다른 곳을 숙소로 해 달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기술위원회는 숙소도 대표팀과 같은 곳을 쓰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대표팀 분위기 더 망치는데 한몫 단단히 했죠.
※ 결국 차범근 감독의 월드컵 기간중도 경질은 기술위원회의 주도로 이뤄 졌습니다.
98년 월드컵
- "당시 네델란드는 막강 그 자체였다" 정도만 생각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우리 대표팀의 문제도 컸습니다.
- 당시 유별나게 개성(?)이 강한 선수들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대표팀의 분위기를 조금 비약을 하자면..
2010년 프랑스 대표팀 저리가라 할 수준이였다고 할까요?
이런것에 관해서는...세월이 지난 후 인터뷰 등으로 밝혀진..몇몇 선수들의 이야기를 빌리겟습니다.
"단 한번도 대표팀이 하나가 된 적이 없다."
"포지션 한두군데 빼고는 다들 시기와 질투 등으로 선수단 분위기가 영~ 아니였죠."
"대표팀 경험이 많은 고참들은 월드컵 시작 전부터, 애시당초 발빼는 분위기 였어요."
-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도 몰랐다는 겁니다. 차라리 이번 2010의 프랑스 처럼 까발리지도 못하고..
그저 속으로 고름이 쌓여만 가는 형국이였던 거죠.
- 뭐, 당시 차범금 감독의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어느정도였다는 말은 안하겠습니다만..
당시로서는...네델란드전 5:0 참패 라는것 하나만 가지고..언론과 여론이
비난을 퍼부었지만..여러가지 경기 외적 요소들이 더 작용을 하긴 했을껍니다.
(물른 선수단 관리 역시 감독이 최종 책임을 져야 하지만, 기술위원회의 월드컵 전후로의 태클은 억울 했을껍니다.)
- 당시 차범근은 자진사퇴를 권유하는 기술위원회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결국 전격 해임을 당하고 마는데...해임 인터뷰에서 왜 자진사퇴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중도에 스스로 물러나는것은 책임회피라고 생각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승부조작 파문
- 당시 월드컵 네델란드전 이후, 차범근은 "역적" 취급을 받게 됩니다. 한때 "대통령감"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것만...;;
- 그런 와중 월드컵이 끝난 직후, 7월에 "K리그 팀들이 암암리에 승부 조작을 하더라" 라고
차범근이 이야기 했어효~!! 라는 월간 조선 8월호분 기사가 공개 됩니다.
- 안그래도 성난 민심인데...미_친듯이 차범근이 까였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ㅁ-;;)
- 거기다가 부인 오은미가 인터뷰 내도록 끼어들어서 미주알 고주알 했다는것이 더 큰 반감을 불러 오게 됩니다.
- 축구 협회는 98년 8월 12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차범근 감독에 대해 5년간 지도자 자격 정지 라는 중징계를 내립니다.
- 차범근 감독은 이후 중국으로 떠나 버립니다.
여기까지 표면상으로 보면...
1. " 월드컵에서 감독 해임 되었다고, 쪼잔하게 그걸 저런씩으로 까발리냐 " 라는 생각을 가지기 딱 좋은 정황입니다. (저도 그중 하나 입니다. -_-;; )
2. 그 정황이 드러맞아서 각종 언론과 민심에 뭇매를 맞았고, 축협의 징계도 민심은 타당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3. 결국 국내에서는 축구와 관련해서는 뭘 할 수도 없는 사태가 되어 버리니.....중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이걸가지고 또 민심은 "도망쳤네~!!" 라고 이야기 해 버립니다.
========== 여기까지가 표면상 드러난 차범근 승부조작 발언 파문 입니다. =========
========== 이후로는 그 당시 무시되었던 내용 세월이 지난 후 밝혀진 내용 입니다. ========
- 승부조작 발언은 월간 조선과의 인터뷰(?) 월드컵 이전에 이미 차범근 감독이 책을 출간하면서..그 안에 있엇던 내용 입니다.
- 이후 월드컵 전에 몇몇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단, 당시 차범근 감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런 이야기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 실상 승부조작이라고 칭했지만...외국처럼 도박이나, 금전이 오고가는 승부조작이 아닌... '자기네 팀이 지금 좀 급하니, 눈치를 막 주는데... 차마 난 못하겠더라' 정도의 내용이였으니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큰 문제로 삼을만한건 아니지 않나...싶을 정도이기도 하죠.
- 단지, 월드컵의 참패 차범근은 역적 시기상의 문제...등등이 복합되어서...저 발언의 문제가 커진거죠.
- 더군다나, 정식 인터뷰도 아니였습니다.(차후에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
"사실 차범근은 그에게 '은인'인 장덕진 전 축구협회 회장의 아들로 '인사차' 집에 온 <월간조선>의 장원준 기자를 믿고 미주알 고주알 축구계 사정을 이야기 한 것인데 이를 정식 인터뷰로 간주한 장 기자는 모든 내용을 기사화 했다. " (어디서 퍼왔습니다.)
- 정식 인터뷰가 아니니...부인 오은미가 옆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든거죠.
- 사실 축협은 저런 승부조작 보다.....'감히 정몽준 회장님을 까다니'라는게 더 컸을껍니다. 인터뷰(?) 중에 정몽준을 비롯한 축구계 내부 문제를 이런저런 것들을 이야기를 했거든요. 하지만, 표면상 문제시 삼은건...'승부조작'이라는 내용이였죠. (지금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당시의 정몽준은...국내 축구계에서는 '신'이였습니다..;;)
- 축구협회는 상벌위원회에서 충분한 조사를 마치고 차범근 감독에 대한 징계를 했다고 하지만.... "상벌위원장이 1박 2일의 일정으로 울산과 포항을 방문하여 관련 선수들과 지도자를 면담하고 몇몇 선수들에게 전화로 물어본 것" 이게 상벌위원회에서 조사한 전부 입니다.
(추가)
- 월간 조선에서 8월호분 기사를....7월달에 미리 인터넷에 띄워서...일어난 일인데.. 당시 월간 조선에서는....시작 부터 '파문' 이라는 단어를 썼고... 그게 정말 파문이 되어 버렸죠....;;;
조선일보쪽에서 '파문' 이러면 정말 '파문'이 되어버리는게 당시 현실이였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