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khan.co.kr/view.html?artid=201408311907431&code=940100% 정규 근로자랑 똑같이 작업지시를 받고 동일한 업무를 했는데 ‘근로자성’이 문제 되니까 프리랜서는 인사팀에서 관리하는 인력도 아니고 프리랜서 비용은 ‘인건비’가 아니라 ‘제작비’로 나간데요. 한마디로 회사의 편의대로 쓰고 필요없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라는 거지요”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프리랜서로 컴퓨터그래픽(CG)업무를 하던 허모씨(34)는 지난달 29일자로 해고돼 실업자 신세가 됐다.
허씨는 “저를 왜 내보내시는건가요”라고 마지막까지 정당한 해고사유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인사팀장 권모씨는 “위임계약이 해지됐으니 나가는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권 팀장은 “내일도 나오면 에스원(경비업체)을 부를 수 있으니 절대 나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다.
“다른 종편과 달리 JTBC는 사회적약자를 대변하는 방송이라고 하지만 최근 수개월간 인사팀으로부터 온갖 억울한 일들을 겪은 저에게는 ‘악덕 기업’일뿐입니다”
▲ 권리 주장한 직원 때문에 해고되자 구제신청 제기
노동위서 근로자성 인정
▲ 사측, 태도 바꿔 복직통보… 6개월 계약직 카드 내밀어
거부하자 부당 대기발령
▲ “부당에 낙담보다 당당하게… 내 경험 ‘애니메이션’ 제작”
방송 CG 경력 10년의 허씨는 지난해 9월 SBS아트텍을 나와 JTBC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주로 각종 예능프로그램의 CG제작업무를 처리해왔다 사내에서 2D그래픽 모션 디자이너로서 그의 역량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인사팀 관계자들도 “ 담당 PD들로부터 ‘일 참 잘한다’는 평가가 많더라”고 했다. 하지만 허씨는 지난 4월 황당한 사유로 첫 번째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같은 팀에서 일하던 프리랜서 A씨가 노동청에 퇴직금 지급신청을 하자 회사에서 나머지 프리랜서 3명에 대해서도 해고통보를 한 것이다. 허씨를 SBS로부터 스카웃해온 디자인팀장은 ‘프리랜서A가 퇴직금을 달라고 한다. 불씨를 없애기 위해 너희들도 자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합리적이지 못한 회사보다 프리랜서 주제에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한 A씨를 원망하라는 식이었다.
허씨는 “프리랜서로서 방송사에서 온갖 차별을 경험해봤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가라고 하는 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허씨는 고민끝에 서울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방송사에 찍히면 일자리를 얻기 힘든 프리랜서들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한 방송사의 ‘갑질 횡포’에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허씨의 강경한 태도에 회사는 6개월 계약직카드로 화해를 시도하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허씨가 태도를 굽히지 않자 구제신청을 제기한지 근 2달만인 6월30일 JTBC는 복직명령을 내렸다. 사실상 ‘항복선언’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노무법인 로맥의 문영섭 노무사는 “허씨는 고정적 출퇴근,업무수행방법 등 정규근로자와 모든 면에서 구분없이 근무했고 월급도 고정급으로 받아 근로자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며“JTBC가 승산이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 전략을 바꾼 것 같은데 기본 생각이 변한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 노무사의 지적대로 복직명령은 노동위원회 판단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일뿐이었다. JTBC는 원직복직 대신에 대기발령과 함께 인사팀 통로 한 구석에 허씨의 책상을 배치했다. 수시로 상담실로 불러 선심쓰듯 ‘일하기를 원한다면 일단 12월까지 자회사인 jmnet에 6개월 계약직으로 취업을 알선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인사팀장은 “JTBC는 악덕기업은 아니고 순리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프로그램이 줄어들어 본사에는 더이상 일할 자리가 없다”며 “그래도 계속 본사에서 근무하기를 고집하면 징계위원회를 소집해 경영상 해고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허씨는 원래 직무가 없다면 OAP(브랜드디자인)등 유사업무라도 맡아서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처음 복직통보를 받고나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로 출근했어요. 부당해고 구제절차를 통해 회사와 직원들을 불편하게 한점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로 가 보니 자회사 6개월 계약직이라도 고맙게 받고 일하던지 아니면 인사과로 출퇴근하여 어디 한번 대기발령을 견뎌보라는 식이었어요”
심지어 한참 나이가 어린 인사팀의 20대 막내 여직원이 찾아와 ‘팀장님 지시인데 자리를 비울때는 나한테 얘기를 하고 가라’고 요구했다. 하루종일 아무런 일도 없이 앉아았다 화장실 갈때조차 막내직원에게 보고하고 가야하는등 어이없는 상황들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프리랜서를 정규직 ‘대용’으로 편법운영하다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해고하고도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처사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기에 외로운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
서울지방노동위 공익위원들이 지난 7월22일 심문회의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하면서 JTBC에 화해를 요청했을때 그가 요구한 것은 단지 돈 몇푼보다 문서로된 진심어린 사과였다. 하지만 인사팀 관계자들은 프리랜서 운영상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법에서도 판단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까지 왜 사과를 해야 하는냐”고 나왔다. 근로자성에 대해서도 인사팀 차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보는 각도에 따라 하나의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결국 원직복직도 아니고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를 듣고 싶어한 그의 마지막 요구를 JTBC가 거절하면서 화해는 결렬됐다. 그리고 서울지노위는 근로자성을 공식인정하면서도 복직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허씨의 구제신청을 각하했다. JTBC는 기다렸다는듯 허모씨에게 두번째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결국 복직명령은 노동위원회 판단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허씨는 두번째 해고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최근 노동법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희망을 품고 새로운 일을 준비중에 있다. 지난 4월부터 자신이 경험한 부당한 일들을 애니메이션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방송사의 횡포에 숨을 죽이며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방송사 프리랜서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부당함에 대해 낙담하지 말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말해보세요. 갑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저도 제 상황에서 방법을 찾아 대응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돈이 중심에 있고 오히려 사람이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려지는 비정상적인 이 상황을 우리가 조금씩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프리랜서뿐만이 아니라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께 내가 만들게 될 애니메이션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