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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사건 직후인 2010년 봄 이명박 정부의 고위 인사가 조언을 듣기 위해 망명객 황장엽에게 물었다. “우리가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면 구석에 몰린 쥐처럼 북한이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지 않을까요?” 답답한 표정의 황장엽이 따끔하게 반문했다. “누가 고양이 신세이고, 누가 쥐란 말이요? 서울 불바다를 호언하고 핵을 가진 북한이야말로 고양이 아닌가요?” 한국사회의 안보불감증을 황장엽만큼 예민하게 감지하고, 또 걱정했던 이도 드문데, 그가 보기에 한반도 남쪽은 나라 전체가 얼빠진 상태다. 당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 국민이 무려 20~30%에 달했다는 게 단적인 사례였다. 타계(2010년 10월) 몇 개월 전의 황장엽은 그 사실을 언급하며 “죽어도 내가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개탄해야 했다. 평화 지상주의의 늪에 빠져 몽롱해진 사회, 그리고 결전(決戰)의지가 훼손된 한국군의 체질과 구조는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을 겪으며 또 한 번 나빠지고 있는 중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그 잘난 군 인권을 들먹이며 군 내부를 지옥으로 묘사하는데 경쟁적이고, ‘새가슴’장성들은 훈련을 접어둔 채 인권교육에 난리다. 물어보자. 당신들은 대한민국 군대를 나라를 지키는 무력으로 인식하는가, 아니면 청소년 휴양 캠프로 생각하는가? 이런 나쁜 상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한국군은 핵무기를 휘두르는 악당 북한에 대해 방아쇠 하나를 당길 줄 모르는 비겁자 집단으로 변질될 지도 모른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할 박근혜대통령(군 통수권자)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들먹이는 통일대박 타령도 미덥지 못하다. 좌파와 종교인들은 아직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훼방 놓는 미친 프로파겐더에 열중하고 있고, 언론의 마구잡이 군 비판은 아직도 가라앉고 있지 않다. “남북이 붙으면 우리가 패배한다”던 어느 똥별의 패배주의 이런 패배주의는 병사와 장성은 물론 한국군의 작전개념에까지 깊숙이 투영되어 있다는 게 이 글의 요지다. 우선 일부 장성들의 멘탈리티 문제. 기억하실 것이다. 지난해 말 국회 국감장에서 “남북이 일대일로 붙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의원 질의에 한 장성은 “우리가 패배한다”고 답했다. 뒷골목 건달이라도 싸울 때는 두려움의 기미를 드러내지 않는 법인데, 핵심보직을 가진 장성이 겨우 그 모양이었다. 그게 문제가 되자 며칠 뒤에 당시 국방장관 김관진이 같은 질문에 “북한은 멸망한다”고 수습을 했지만 주적(主敵) 북한을 보는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런 게 우연일 리 없다. 군 통수권자였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그럼 전쟁하자는 겁니까?”라는 발언으로 악명이 자자한데, 이후 우리는 “북한을 자극하면 전쟁 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국면에서 ‘아카데믹한 위선자들’의 무리인 많은 정치학자들과 다른 이춘근 박사의 발언이야말로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는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는 나라만이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럴 수 없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능히 전쟁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북한에게 지속적으로 인식시킬 때만이 무력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맞다. 그게 상식이다. 그의 책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책략>에 따르면, “국가의 이익과 정의를 위해 선제공격을 포함해 전쟁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미국인의 80%가 “그럴 수 있다”고 응답한다. 유럽인은 20%가 그렇다고 한다. 우린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대학 강의실이나 사석에서 그걸 물어보면 단 한 명도 그렇게 답하는 이가 없다. 외려 그걸 물어보는 사람을 전쟁광(狂)인 듯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국방을 미국과 미군에 아웃소싱해온 나쁜 관행도 뜯어고쳐야 역사 이래로 우리는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는 엉터리 신화(고구려나 신라의 상무(尙武)정신만 봐도 그건 잘못된 얘기다)를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방적으로 배워온 탓이고, 조선조 이래로 문약(文弱)에 찌들어 벗어나지 못하는 탓이다. 국제정치학의 상식대로 국가란 ‘전쟁하는 조직’인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도저히 국가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차라리 회사 혹은 협회에 불과하다. 여기에 좌파의 집요한 장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엉터리 신화에 조선조 문약의 나쁜 전통 그리고 국방을 너무 오래 미국에 아웃소싱해온 나쁜 관행 등이 겹치고 겹쳐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대한민국’ 오늘을 만들었다. 안보감각은 무뎌질대로 무뎌졌고, 나라 밖의 정세를 전략적으로 판단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외교안보 능력조차 잃어버렸다. 인식능력도 그렇지만, 국방비도 자꾸 줄어든다. 올해 대한민국의 국방예산은 35조(兆)원인데, 복지 부문 예산은 국방부문의 세 배 가까운 106조 원이나 된다. 이 수치야말로 적군을 코앞에 둔 채 대치하고 사는 우리가 얼마나 때 이른 가짜 평화주의와 웰빙주의의 꿈에 취해 몽롱하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복지예산과 국방비는 서로 어슷비슷한 수준이다. 군 전략을 선제공격을 포함한 공세 전략’으로 바꿔야 진정 큰 문제는 한국군의 작전개념이다. 이걸 바꿔야 우리가 산다. 육사 18기 출신으로 존경 받는 전략연구가인 권태영 박사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선제공격을 포함한 공세적 예방적 방위전략으로 바꿔야 옳다. (권태영-노훈 공저 <21세기 군사혁신과 미래전>) 지난 번 필자의 지적처럼 인민군의 기습공격을 허용하는 걸 전제로 한 실지(失地)회복 전략이란 적군이 핵무기를 가진 상황에서 더욱이나 옳지 않다. 문제는 이런 문제제기가 사회적 논의로 연결되지 못하는 구조다. 요즘 분위기라면 말도 못 꺼낸다. 지식사회가 온통 병든 탓인데, 최근 깨어있는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 번 언급했던 김성욱 박사의 책 <김정은 이렇게 망한다>의 이 대목이다.“나라는 군사력과 경제력이 약해서 망하지 않는다. 선악의 기준이 무너져 거짓· 선동· 탐욕의 야만이 양심과 지성과 문명을 누를 때 무너져 내린다. 한국은 그래서 위기다.” 내 판단은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는 선악 기준은 물론 군사력· 경제력이 함께 흔들리는 중이다. “자유의 파도로 평양 쓸겠다”던 박정희의 상무정신과 박력 아찔하다. 예전 고 박정희 대통령이 보여줬던 놀라운 결기와 박력 넘치던 상무(尙武)정신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조선조 이래로 문약에 찌들었던 한국인의 DNA를 바꾸려 했던 큰 정치인의 뜻을 누가 이을 것인가? 기회에 그의 명연설을 환기시켜드리고 싶다. 1966년 2월 당시 자유진영의 지도자이던 타이완 장개석 총통과 정상회담을 했던 박정희는 이런 연설을 했다. “누구는 대한민국과 자유중국을 자유의 방파제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유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가 파도에 시달리면서도 그저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그런 존재란 말입니까? 우리는 전진합니다. 폭정의 공산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야말로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입니다. 이 파도는 머지않아 북경과 평양까지 휩쓸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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