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편자는 땅에 떨어진 낙엽들과 풀잎들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그 끔찍한 학살에 항거하듯 피살자들은 비명을 질렀으나 그 소리들은 바스락거리는, 웃음거리로 밖엔 안되는 소리들이었다. 포니들의 행군은 참으로 장대했으나 그 소리만큼은 조용했다.
암습은 조용해야하는 법이다.
병사들의 갑주는 대체적으로 소박하고 단조로운 것이었으나 앞으로 갈수록 그 갑주의 장식과 모양은 더욱 복잡한 형태를 띠었고 선두의 갑주는 대장장이의 실력이 잔뜩 묻어난 듯 아름다웠다. 쇠의 날카로움이 달빛에 비쳐 시리도록 빛났고 그 안의 눈빛들은 고요했다.
투구 속에서 말소리가 베어 나왔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이리도 완벽하게 채비해주신 점, 대단히 감사합니다. 팬시 총사령관.”
팬시는 순식간에 얼굴을 붉혔다. 어찌 이리도 변함이 없는지.
“아, 아닙니다. 어차피 제가 해야 했을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리도 갑작스러운 출정은, 어쩐 일입니까?”
솔직히 자신도 궁금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스마트 쿠키였지만 팬시에게 차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저 소심한 작자에게 그런 말이라도 했다간 당장이라도 회군하자고 펄펄 뛸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그럴싸한 말을 지어내야만 했다. 스마트 쿠키는 부디 자신이 이름에 걸맞는 자이길 빌면서 머리를 쥐어 짜냈다.
“체인질링들이 우리를 침략할 야심을 품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체인질링들이 우리들의 땅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하,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공격당할 이유가 없을 텐데요?”
“전쟁이 꼭 정당한 이유 아래서 이루어지지만은 않았지요. 알고 계시잖습니까, 팬시 총사령관.”
팬시는 입을 다물었다. 유약한 심성의 그녀였지만 전쟁이 어떠한 것인지는 팬시 또한 알고 있는 바였다. 전쟁을 잊기에는 팬시는 너무나도 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왔다. 그 사실을 스마트 쿠키 또한 알고 있었기에 가끔, 그녀는 팬시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어떻게 그 일들을 겪고 저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것이 팬시 나름의 전쟁에 대한 처세술이었던 것일까. 이렇게 되어버려서야 이미 지난 일에 불과해져버린 것이었지만.
달빛 아래서 군인들은 묵묵히 행군을 계속했다. 절그럭 거리는 군장들의 부딪히는 소리와 억눌린 긴장들 사이로 그들은 앞만을 노려보았다. 어느 곳에서도 여유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체인질링의 성이라는 미답지를 최초로 공격하는 자들이었다.
거의 전설에 가까운 존재와의 역사적 첫 대면이 전쟁이라는 사실에 스마트 쿠키가 약간의 씁쓸함을 느낄 무렵, 팬시의 투구 사이로 목소리가 비저 나왔다.
“전쟁은......, 전쟁은,”
“네?”
“전쟁은, 정당성 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퀘스트리아의 총사령관이라는 작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저런 것이라니. 말 하나로 한 포니를 정의하는 것은 스마트 쿠키가 경멸하는 행위였지만, 저 정도의 헛소리라면 넘치도록 충분한 팬시 총사령관을 판단하는 증거였다.
더 이상의 발언은 듣지 않겠다는 의미로 스마트 쿠키는 고개를 홱 돌렸지만 그 모습은 팬시 총사령관의 말을 막지는 못했다.
“전쟁은, 전쟁 나름의 윤리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쟁은, 그 자체로 참혹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전쟁은 윤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건 공리입니다. 살인이 용인되는 유일한 사건이 바로 전쟁이더라도, 그렇기에서라도 전쟁은,”
스마트 쿠키는 정말 열심히 참았다. 마음 같아서는 멱살을 틀어쥐고 윽박질러주고 싶었다. 전쟁의 유일무이한 윤리는 승리라고. 단순하고 언뜻 천박하기까지한 윤리관이었지만 그 이상의 윤리는 전쟁을 고상한 탁자위의 대담으로 밖엔 만들지 않는 것이다.
분명 스마트 쿠키는 현재 법무대신이었지만 그 이전에 군인이었다. 저런 얼빠진 소리를 늘어놓는 총사령관이라니, 이 전쟁이 과연 승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과는 무관하게 스마트 쿠키의 입이 열렸다.
“입 닥치십시오, 팬시 총사령관. 전쟁의 유일한 윤리는 승리입니다. 결국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전쟁의 윤리도 결국 승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스마트 쿠키는 말하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스마트 쿠키는 계속 팬시를 힐끗거렸으나 팬시는 그 말 이후로 완전히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눈은 투구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로 반들거리고 있었다.
무엇일까.
고요한 행군이었다.
풀숲의 새들은 나지막이 울어댔고 달빛은 나뭇잎들의 장막을 노닐었다. 스마트 쿠키는 저도 모르게 이 모습들이 참으로 낭만적이라고 생각해버리고 있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절로 들어버리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이제 저 뒤의 병사들을 사지에 들이밀어야 하는데 무슨 낭만이고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그 때, 조용했던 팬시의 투구가 울렸다.
“전쟁의 윤리는,”
“네?”
“전쟁의 도덕은, 부도덕(不道德)이지요?”
“무슨, 말씀...?”
대답은 들리지 않고, 난데없는 ‘스읍,’하는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강고히 내지르는 목소리, 스마트 쿠키는 난데없는 공포에 허우적거렸다. 무엇인가, 알 것 같았다. 방금 전 팬시의 눈에서 반들거리던 것은,
분노였다.
“쳐라!!!”
도저히 팬시의 목소리라곤 생각하기 힘든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빛들이 땅위로 쇄도했다. 그것은 마치 우레마냥, 근사하고도 아름다운 것이었고, 그렇기에 끔찍한 것이기도 했다.
허나 그뿐이었다. 도대체 땅에 퍼붇는 마법의 집중사격이라니, 이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의문과 동시에, 끔찍한 비명소리가 땅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당연하게도, 포니와 체인질링의 생태는 그 근본부터 차이가 난다. 어스포니인 스마트 쿠키가 낮고 긴 읍성 (높아봐야 페가수스들을 막기엔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을 어스포니들은 옛날에 알고 있었고 낮고 복잡한 성벽을 쌓는 것이 어스포니들의 기본적인 성벽 건축이었다.) 을 상상한 것은 언뜻 자연스러운 일이다. 허나 그것은 스마트 쿠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 일뿐, 체인질링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체인질링은 유일무이한 개체이며 동족상잔을 벌이지 않는다. 한 개의 통일된 국가라는 개념이 이미 옛날에 성립되어있었고, 그렇기에 외적의 침입을 막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외적들은 미노타우루스와 그리핀들. 지상에서의 최강종족과 하늘의 최강종족을 이웃으로 둔 체인질링들은 땅을 파고 들어간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거대한 엄폐호라고 불러도 좋을 체인질링들의 도시였고, 문을 찾기가 지극히 까다로운 도시였기에, 팬시는 위에서 공격을 내리 붇는다는 공격방식을 선택하였다.
공격의 다른 의미는, 매몰이었다.
스마트 쿠키는 순식간에 알아챘다. 이것은 한 도시의 완전한 매몰이 목표인 공격이라고. 스마트 쿠키는 항변하기 위해 팬시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낙담했다. 팬시의 일그러진 얼굴은 외치고 있었다.
‘이것이 당신이 말한 전쟁의 유일무이한, 절대의 윤리인 승리 아닙니까!’
스마트 쿠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퀘스트리아력 4년 1월 33일. 체인질링의 지하도시 레베타토스는 하룻밤 사이에 매몰 당했다. 레베타토스의 시민은 대다수가 자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절명했으니, 크게 서글픈 죽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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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