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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을 의미하는 villain [vilən]은 1.000년전에는 단순히 '농부'라는 뜻이었습니다.
중세를 거치며 농노들의 반란과 약탈이 늘어나며 안좋은 의미로 굳어진 것입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여성을 좋은 의미로 여신, 요정. 나쁜 의미로 공주라고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는 공주도 좋은 쪽에 속하는 단어인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노예라는 단어에 어떤 이미지가 투영되시나요?
아마 미국의 노예를 생각하실겁니다.
노예의 이미지가 안좋은 쪽으로 굳어진 것은 16세기 유럽의 노예무역때 입니다.
수천년 인류역사에서 노예가 지금처럼 비참한 이미지화 한것은 불과 몇백년 사이의 일입니다.
물론 노예의 어원이나 실상이 여신이나 공주처럼 좋은 의미의 단어나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비참한 모습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그리스 노예나 1~2세기 로마시대의 노예들은 법적신분이 노예일 뿐 여러가지 일상은 자유민과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주인이 부유하면 노예도 부유했고, 주인이 가난하면 노예도 가난했을 뿐입니다.
일단 노예는 법적으로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또 노예 뿐 아니라 아내나 자식도 고대에는 가족보다는 소유적 개념에 가까웠습니다.
로마시대 시골 노예는 대부분 농사나 힘든 광산 일을 했지만,
도시 노예는 교사, 요리사, 상인, 의사 등 광범위한 직업에 종사했고 입는 옷도 자유민과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노예지만 경호원, 노예지만 가정교사, 노예지만 주택관리인 등 아마 영화나 소설 등에서 보셨을 겁니다.
역사학자 스코트 발트치는
"1세기 노예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각자 주인이 있었다는 점 뿐이다." 라며 그 시대 노예들의 다양한 삶을 설명합니다.
노예가 누리는 삶의 질은 주인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고대의 노예는 16세기 유럽이나 19세기 미국의 노예보다는 오히려 노동자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주인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만약 권력을 지닌 주인의 노예라면 그 삶의 질이나 사회적 대우는 일반 자유민보다 우월한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1세기 노예는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실수나 실패에는 징계가 성공에는 보상이 있었습니다.
그 보상중에는 해방도 포함됩니다.
특이한 것은 해방된 노예들이 전 주인과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 주인이 사회적 명사일 경우 그것은 자유민으로서도 큰 메리트가 되기에
자신을 누구의 노예였다고 소개하거나 심지어 묘비에 기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단순한 노예근성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인이 노예를 공식적으로 해방시키면 노예는 법적으로 로마시민권자가 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주인은 이 노예가 자유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지속적으로 후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노예는 로마시민이 되어 매매, 결혼, 고문면제, 사형면제 등 로마시민으로서의 특권과 전 주인의 후원을 받습니다.
물론 후원을 받을 경우 자유민이 된 노예는 전 주인에게 의무적 봉사를 실행해야 합니다.
노예들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전 주인이 자유민이 된 노예의 법적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전 주인은 자유민이 된 자신의 노예가 법정에 서면 그를 정죄하는 증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해방이 아니라 입양이 되어 상속자가 되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이 경우 단순히 신분만 변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종결시키는 변화였습니다.
이전 사회적 법적 관계가 소멸되고 주인의 가족구성원으로 모든 것이 변합니다.
아버지가 된 주인의 죽음 이후 일어날 모든 법률적 문제를 입양 당시 결정해 두고 입양을 선언합니다.
마치 일본의 가신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주인을 섬기고 봉사하고 주인에게 생사여탈권이 있지만
가족처럼 가깝고 주인의 선택에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관계.
물론 모든 노예가 저렇게 장미빛 인생을 살았다거나
노예라는 단어가 본질적으로는 좋은 뜻이다 이런 말은 아닙니다.
본문에 그런 표현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지닌 내력과 상징이 계속 변하는 것처럼
그 단어를 지칭하던 본질도 역사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고 - 존 맥아더 著 SLAVE
국가기록원 청와대 브리핑 다큐멘터리 참여정부의 5년의 기록 동영상 보러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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