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의 비해 젊었을 적 20대 초반에 겪었던 일이다.
지방에 살던 난 직장으로 인해 도시에 집을 구하게 되었다. '영수'라는 직장 형의 도움을 받아 전셋집을 얻게 됐는데 방도 2개에다 혼자 살기에 거실도 꽤 넓직
했다.
역세권에 직장도 인접해 있었다. 무엇보다 전셋집 치고는 보증금이 꽤 쌌다.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옮기던 중 침대를 놓을 방 벽 구석을 보니 모서리에 마치 위로 뻗어가는 듯한, 뾰족하고 새까만 곰팡이를 발견했다.
짐을 옮기고 얼마 안돼 집주인이 방문해서 보고는 벽지를 다시 발라준다 했다.
도배를 하고 며칠이 지났는데 어느날 보니 곰팡이가 또 생겼다. 집이 습한 편이 아니었는데 유독 그 자리 모서리에만 그렇게 곰팡이가 폈다.
그런 거에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고 집주인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그냥 그대로 놔두고 생활했다.
어느날 퇴근을 하고 돌아와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그 검은색 곰팡이가 더 커진 것 같았다. 마치 위로 더 뻗어나가는 것만 같은 모양..
회사는 무척 바빴다. 주말에도 쉴새 없이 일했고 항상 야근이었다.
집에 돌아와 대강 씻고는 쓰러지듯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잠들었을까.. 어느샌가부터 훅 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피곤했던 터라 무거운 눈을 겨우 반쯤 떴다.
내 방에 희끄무리한 물체가 훅 훅 거리며 방을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검은 긴 머리 흰 색 옷 어두웠지만 대강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다리는 없고 그냥 그렇게 상체만 방안을 돌아다녔다.
꿈인가... 난 너무 피곤해 그것이 꿈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갔다. 마치 기운이 빠져나가고 잠이 나를 끌어가듯 그렇게 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바쁜 나날들을 보내던 중 영수형이 집을 방문했다. 직장 얘기, 연애사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거실에 앉아 심심한 분위기에 말만 고르던 중. 며칠전 그 일이 번뜩 떠올라 영수형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영수형 얼마 전에 제가 꿈을 꿨는데 제 방에 다리가 없는 여자가 돌아다니지 뭐에요.."
"허 거참 시덥잖은 얘기도. 요즘 회사가 바쁘고 매일 야근 하느라 몸이 많이 허해졌나보다. 안색도 많이 안 좋아진 거 같고. 몸 관리 잘해 하하."
그렇게 영수형은 돌아가고 나도 곧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한 새벽 뭔가 중얼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슬쩍 돌려 방 안을 봤는데 전에 봤던 그 물체가 옆모습만 보이며 미동도 없이 방 한 가운데 떠 있었다. 무서웠다.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 남자 어딨어."
"그 남자 어딨어."
"그 남자 어딨어."
"그 남자 어딨어."
"그 남자 어딨어."
"그 남자 어딨어."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자는 서서히 몸을 돌렸다. 긴 머리. 해골처럼 들어간 볼. 귀까지 찢어진 듯한 새빨간 입술.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휑하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 창백하고 주름이 그득한 얼굴이 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걸 눈치챈 것 같았다. 난 숨이 텁 막혔다.
여자는 서서히 내가 누워있는 침대쪽으로 다가왔다. 몸이 굳었던건지 뭣 때문인지 난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소리도 못 지르는 공포에 짓눌렸기 때문인 것
같다.
여자는 그 흉측한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리곤 내 머리통을 집어 삼킬 듯이 입을 벌리며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남자 어딨어?"
"그 남자 어딨어?"
"그 남자 데려와."
"그 남자 데려와."
"그 남자 데려와!!!!!!!!!!!!!!!!!!!!!!"
난 누운 상태로 혼절해버린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등에서 난 땀 때문인지 침대는 축축해져 있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일어나 방 안 의자에 털푸덕 앉았다. 부쩍 더 커져버린 검은 곰팡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난 몸을 튕기듯 의자에서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
했다. 그날로 짐을 다 챙겨 고시텔에서 묵었고 며칠 뒤 영수형은 무단 결근을 했다. 전화도 통 받지 않고 종국엔 없는 번호가 되어버렸다.
몇 주가 지나 이력서에 있던 주소를 보고 영수형을 찾아갔지만 그곳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에 대해 물었지만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이사
를 오기전 집을 보러왔을 때도 이미 빈집이었다고... 몇달뒤 난 이직을 했고 내가 살던 그 집엔 다시 가지 않았다...
몇년 뒤 업무차 그곳을 지날 일이 생겼는데 내가 살던 빌라 자리엔 큼지막한 상가가 들어서 있었다.
1층 분식집에 가서 음식을 시키고 앉아있는데 저기 반대편 정수기 옆 벽 모서리에 많이 보던 자국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뾰족하고 새까만 곰팡이...
난 나오지도 않은 음식값을 계산하고선 그곳을 허둥 지둥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