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전 9시 등교 찬성하는 고딩입니다.
8시에 등교하든 9시에 등교하든 전 어차피 10시까지 야자를 하기 때문에 집에 가는 시간이 같기 때문이죠.
전 9시 등교를 찬성하는 친구들이 많을거라 생각했는데 방학 끝나고 학교 와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더라구요.
적어도 저희 학교는 반반 정도로 갈립니다.
제가 아까 9시 등교에 찬성하는 이유로 '언제 등교하든 하교 시간은 같기 때문'이라고 했죠?
다른 입장을 가진 친구들은 위와 반대의 이유를 꼽습니다.
저희 학교는 일반적으로 8시 10분에 등교하고 조례와 쉬는시간 각각 10분씩 해서 8시 30분에 1교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7교시 동안 수업을 하고, 정규 수업은 4시 10분에 끝납니다.
그리고 4시 40분에 방과후 보충수업(신청자에 한해)을 실시해 5시 30분에 저녁을 먹습니다.
그리고 6시 30분부터 야자를 하는 식이죠.
그런데 9시에 등교하게 되면 이 과정들이 전부 한 시간정도 뒤로 밀리게 됩니다.
만약 등교시간이 9시 정각이라면 9시 20분에 수업이 시작할테고, 정규수업은 5시에 끝나게 되겠죠.
그럼 청소,종례 등등 후 5시 반에 저녁을 먹고 6시 반부터 보충, 야자는 7시 반에 시작하게 되겠네요.
저는 어차피 10시에 하교하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야자나 보충을 안하고 집에 가는 아이들은 학교가 늦게 끝나게 되고,
그로 인해 그 아이들의 방과 후 일과들까지 한 시간 씩 뒤로 미뤄지게 되는 것이죠.
그 중엔 학원을 가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집에서 노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예체능 실기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겠죠. 더 다양한 일과를 가진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이런 아이들이 타의로 한 시간씩 자신의 일과를 미뤄야 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그걸 원치 않는다면 9시 등교는 또다른 피해가 되겠죠.
오유 내 여론은 노소를 불문하고 9시 등교 찬성이라는 흐름을 보이길래 이런 입장들도 있다,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 써봅니다.
저도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어보니까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제 친구 중 한 명이 수영을 하는데, 종례가 끝나는 4시 반이면 칼같이 연습하러 갑니다.
하지만 등교시간이 미뤄져 종례가 5시 반 쯤에 끝나게 되면 이 아이는 한 시간의 연습시간을 뺏기게 되거나, 연습시간을 지킨다고 해도 집에 한 시간 더 늦게 가겠죠.
이 밑부터는 제 사담인데, 저희 학교는 경기도 소재라 1,2학년은 1년에 모의고사를 6월, 11월 두 번만 봅니다.(사설 모의고사 금지)
그리고 선행학습 금지라 해서 학원은 선행학습한다는 광고를 못하게 됐고 학교는 진도를 빨리 빼는 것 (문과의 경우 1학기 동안 수1을 끝내고 2학기에 미적분과 통계 기본을 배우는 것 등. 원래 미통기는 3학년 과정입니다.)을 자제하도록 권유받았습니다.
그래도 모의고사 볼 애들은 다 알아서 봅니다. 학원이든 어디든요. 저희 학교는 신청자에 한해 휴일에 사설모의고사도 봅니다.
그리고 이 인근 학교들 중 선행 안하는 학교 거의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인근 학교 중 한두개 학교만 2학년 동안 내내 수1을 배웁니다.
결국 할 애들은 다 하고 시킬 곳은 다 시키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고생 좀 더 하고 좋은 대학 가게 된다면 차라리 고생 좀 더 하겠다'라는 심리가 깔려있습니다.
결국 9시등교고 뭐고 학생과 가정이 느끼고 있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대학 부담이 없어지기 전까진 기대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만약 대학 부담이 없다면 돈주고 사설모의고사를 왜 보겠습니까? 왜 굳이 이해 못하는 애들 데리고 2년치 수학을 몰아서 배우겠습니까?
왜 대학 부담이 큰지는 각자의 대답들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그 대답이 어떻든 우리는 고통받고 있습니다. 대학 때문에 울거나 마음고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주위에선 '유럽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노는데 어른 돼서 돈은 더 많이 번다.'라는 우스개까지 합니다.
교육은 현대의 보이지 않는 신분층을 뚫고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층을 뚫지 않고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걸까요? 꼭 아등바등 상위층이 되어야만 행복해지는 걸까요?
그 대답을 모르시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처지를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투표권이 없으니까요.
전 학생들도 투표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투표권을 가지기 전까진 학생들의 여론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겁니다.
대학 부담이 존재하는 한 학부모들과 학생 의견이 어느정도 갈리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는 다른 의견을 내십니다. 내 자식 조금 더 고생하면 나중에 나처럼 살지 않아도 되니까.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니까,라는 마음으로요.
(그것의 잘잘못을 떠나서 명백히 사실이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슬플 뿐입니다.)
학생들에게도 투표권이 생긴다면 정치인들은 하교시간 각 학교 앞에 유세차량 끌고와서 한명한명 악수하며 허리를 숙이고,
포퓰리즘 공약이든 아니든 진짜 학생들이 원하는 공약들을 많이 내세우겠죠.
하지만 투표권이 없다면 정치인들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만 허리를 숙일 것이고, 우리 부모님들이 원하는 공약을 내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손으로 결정하고 책임은 우리가 지는 시스템을 반대합니다.
학생들을 위한 정치인이라면, 학생들의 손으로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학생들과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