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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관점에서 전란 중에 종교서적이나 목판으로 파고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일로 보여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의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 했으면 합니다.
근대 이후 국민국가 체제에서 국가의 의미를 사회계약으로 이해하고 구성원을 민족, 언어의 유사성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로 이해한 것은 채 200년이 안된 개념이죠. 이전의 국가란 통치자와 피지배자간의 힘의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구성사회도 단순하기 힘의 관계로 유지되는 것은 힘들기에
이들의 사상적 통합을 위한 정신적 정비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것이 고대국가의 종교가 가진 역할이었습니다.
중국의 경우 법치에 의한 힘의지배가 가진 한계를 인식한 진의 통치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유교를 채택한 바 있습니다.
유교는 춘추시대 단순히 예법의 차원을 넘어 증자의 효경을 바탕으로한 정치이데올리기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이른바 충-효의 사상이 그것이죠
동아시아의 가족중심의 생활양식을 기반으로 자신과 부모 가족 조상으로 어어지는 효를 국가로 확장하여 부모에 대한 효도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양식은 가족에 대한 이념으로 사회에대 이념으로 나아가 국가에 대한 이념이 충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단순히 힘에 의한 통제가 아닌 삶의 생활양식 저변 부터 사상적인 통제를 가미한 국가의 통치가 시작된 것이죠.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최초로 등장하고 나타난 현상입니다.
즉 효와 충의 결합을 통해 예법인 유교의 종교화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상이든 그것이 종교화가 진행되면 구심점이 되는 사상의 정립이
우선시 되고 더불어 믿는 종교의 정확한 교리가 무엇인가의 권위 논쟁이 촉발됩니다. 정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믿는 대상이 무엇인지 그에대한
권위가 세워진 다음에야 이를 전파할수 있으니 말이죠. 한나라 건국 초기 훈고학의 탄생이 배경도 이런 것이었습니다.
진나라때 진의 통치과 전란과정에서 멸실된 유교의 경전들 유학자들을 통해 정확하게 복원하는 과정었고 이것이 진위가 맞는가 정확한 어구인가를
두고 주석이 달리며 유학자간에 논쟁으로 유교가 크게 발전하던 시기였죠. 이렇게 정립된 유교의 경전을 바탕으로 유교의 가르침이란 이것이다
라는 구심점이 생기고 이것에 권위를 부여하며 국가는 이를 통해 이념적 사상적 통합을 진행하였습니다.
불교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한나라 말에 들어온 인도의 종교 불교는 그것이 가진 형이상학적 가치와 깊은 철학적 의미로 인하여 당시 예법과 생활제도의 규율에 불과하였던 유교가 지니지 못한 철학적 사유의 공백을 메워주었고 더불어 불교의 교리가 내포한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는 사상은 이것이
중앙집권적 통치체인 동아시아 정치에 접목되어 왕권을 중심으로 국가통합을 이루는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 역시 내포한 종교였습니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치며 불교는 국가적인 종교로 크게 부흥하였고 이전의 국가통치 사상이던 유교가 그러하였듯 불교 역시 교리의 정확한 정립화 과정과 그 교리가 지닌 귄위를 높이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른바 초기 불교를 의미하는 교종이 그것입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한말 인도승려를 통해 전래된 불경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인 것이죠.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즉 경을 해석하는 과정이 당시 불교가 가진 중점적인 연구대상입니다.
특히 경전이 인도의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한것인가의 논쟁은 끊이지 않았는데. 산스크리트어를 한어로 해석하는 과정도 어렵거니와 이를 비교해 비판할 원전이 매우 희귀하기고 또 구할수 없는 것이기에 수백년 동안 정확한 경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과 연구가 지속되었죠.
당나라때 삼장이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간다는 일화가 민간에 서유기라는 소설로 까지 창작되며 유명해 진 것 역시 바로 이런 연유입니다. 한나라때 전승된 이후 불경이 당나라때 이르러 한인에 의해 적극적인 2차 유입의 과정을 거쳐 재차 인도의 불경이 전해졌고 이러한 교차검증을 통해 불교가 애초 설파한 정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완전한 해석이 가능하여 졌습니다. 원경전을 연구한 경, 이에 파생한 종파간 율법,가르침,제로를 연구한 율, 이런 경전에 대한 주석과 해설 그리고 연구논쟁을 담은 논까지 불교 교종의 완성을 이룬거죠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완전한 불교사상에 중국 특유의 토속종교인 도교와의 융합을 거치며 중국불교인 선종으로 발전하는 과정역시 거치된 것은 이러한 경전의 연구 이후 이야기죠
대장경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런 당나라 이후 완성된 경전연구의 총 집대성을 말합니다. 대장경이 바로 경, 융, 론을 집대성한 것이죠.
불교사상이란 것은 불교사상의 총대성이자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이를 제어하는 권력인 황제는 이러한 경전의 출판을 통해 그 권위를 세웠고
또한 이를 통해 국가의 사상적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이런것입니다. 남송이후 정치적 예법에 머무르던 유교가 불교의 형이상학을 흡수하여
성리학이라는 종교적 철학화를 이루기 전까지는 유교가 정치의 예법이라면 불교는 유교가 하지 못하는 이런 사상의 공백을 채우며
그것이 가진 철학적 깊히와 종교적 영향력으로 정치와 피지배층을 연결하는 사상적 통합의 연결체이자 구심점의 역할을 한것이죠.
때문에 당나라 이후의 통일 국가는 모두 대장경을 국가에서 수십년에 걸친 노력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중원의 황제였던 송나라도 대장경을 제작하였고 북의 황제로 군림한 요나라도 대장경을 제작하였죠.
그리고 고려 역시 송나라 대장경을 받아들인 이후 자체적인 연구와 수집을 통해 대장경을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고려 초조대장경이 그것입니다.
전란으로 이것이 소실된 이후 대몽항쟁 과정에서 고려가 왜 팔만대장경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가는 위에 설명한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대장경이란 존재가 지닌 사회적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시리라 봅니다.
몽골의 침략에 쫓겨 강화도로 도망한 국왕과 정부는 육지의 피지배층과 단절된 채 몽골이 물러가면 세금이나 뜯으러 오는
무력한 통치자이자 수탈자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옥과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고려의 백성들에게는
국가라는 것이 이념적으로 나마 그래도 존재를 하는 것이 아예 없이 황야에서 버림받은 백성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 보다야 나은 상황인 거죠
그렇다면 그 국가는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면 그 상징적인 귄위를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함 합니다
소실된 대장경의 재건이 바로 그것이죠.
기록에 보면 고려는 팔만대장경의 제작을 위해 16년에 걸쳐 2만 4천명이 동원되는 대규모 역사를 행하였다고 나옵니다.
고려의 팔만대장경은 전란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종교를 통해 국가를 아직 수호하고 있음을 알리는 중앙을 인식하게 하는
매개체이자 불교가 애초 가졌던 역할인 종교를 통한 국가의 통합을 통해 몽골에 대항하는 힘의 원천이었던 것이죠.
또한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는 16년간의 장기적인 사업의 진행은 그 자체만으로 강화도 섬의 정부와 육지의 피지배계급을 연결하는 사업으로
귄위가 실추된 섬의 정부에서 육지의 백성이 이탈하는 것을 종교사업으로 막는 역할인 동시에 사업의 진행을 통해 육지에서의 재료의 공급
인력의 동원 등을 필수로하는 통치력의 범위를 실질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이 가진 의미가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첨언하면>
지금으로 보면 전란중의 종교경전의 제작 자체가 미신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가장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통치술의 하나였던 것이죠.
오늘날 비유하자면 이런게 아닌가 합니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상해로 도피한 민족지도자들은 나라도 국토도 국민도 없는 정부를 구성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민주주의 헌법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정부를 통해 국내와 연결해
독립자금을 얻었지요.
수백년 뒤 후손들이 우리가 팔만대장경을 바라보듯 . 아무런 실질적 힘도 없는
민주주의 헌법을 이들이 대체 왜 만들었는가 의아해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헌법이란 가치관과 사상으로 국가를 이해하는 우리는
이것이 왜 중요했는지를 알지요
팔만대장경이 바로 이런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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