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2부 십계명
제 1장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제 1절 첫째 계명
2 "오직 하느님만을 섬겨라" 中
종교의 사회적 의무와 종교 자유에 대한 권리
2104
“모든 사람은 진리, 특히 하느님과 그분의 교회에 관한 진리를 탐구하며, 깨달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지켜야 한다.”
그 의무는 “인간 본성 그 자체”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 의무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여러 종교에 대한 꾸밈없는 존경을 배척하지 않으며,
“신앙의 오류나 무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과 지혜와 인내로 대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촉구하는 사랑의 요구와도 상반되지 않는다.
2105
하느님께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의무는 인간에게 개인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관련되는 것이다.
이것이 “참종교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도덕적 의무에 관한 가톨릭의 전통 교리”이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교회는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정신, 풍습, 법률, 구조 등을 그리스도 정신으로 충만하게 하도록” 힘쓴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의무는 각 사람 안에 있는 참된 것과 선한 것을 존중하고 일깨우는 것이다.
이 의무는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 안에 유일하고 참된 종교의 예배가 있음을 알릴 것을 그들에게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이처럼 교회는 모든 피조물, 특히 인간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왕권을 드러낸다.
2106
“종교 문제에서 자기의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강요받지 않아야 하고,
또한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혼자서나 단체로, 정당한 범위 안에서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데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이 권리는 인격 자체의 본성에 근거하는 것이며,
인간은 인격의 존엄성에 따라 세속의 질서를 초월하는 하느님의 진리에 자유롭게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에 따라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자유의 권리를 지닌다.”
2107
“국민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여 국법 질서 안에서 한 종교 단체에 특수 지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동시에 모든 시민과 종교 단체의 종교 자유의 권리를 반드시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2108
종교 자유의 권리는 오류를 지지하라는 허락도 아니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권리도 아니며,
다만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권리이다.
이 권리는 종교 문제에서 정당한 한계를 지킬 때 정치권력으로부터 외적인 구속을 받지 않을 권리이다.
이 타고난 권리는 “사회의 법적 제도 안에서 인정되어 국민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2109
종교 자유의 권리는 그 자체로 무제한적일 수 없고,
그저 단순히 “실증주의적으로나 자연주의적으로” 이해된 공공질서만으로 제한될 수도 없다.
종교 자유에 내재하는 ‘정당한 한계’는 각 사회의 상황에 맞게 정치적으로 신중하게, 공동선의 요청에 따라 정해지고,
“객관적인 도덕 질서에 부합하는 법률 규범”에 따라 국가 권위가 인정해야 한다.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경천동지할 교리들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십계명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계명인 첫째 계명.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에 속해있는 교리 입니다.
아니. 십계명에 따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위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이단'들을 섬멸하지는 못할 망정 존경을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뇨?
이에 대해서는 2106항이 아예 못 박고 있습니다.
종교 문제에서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2109항에서는 천주교를 포함한 어떤 종교든 그것이 객관적 도덕 질서에 의해 사회악으로 간주 된다면,
국가 권위에 의해 부정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대단히 놀랍기 그지 없는 교리들입니다.
가톨릭 신자인 저 역시 이 교리들을 접하고 난 후의 반응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였습니다.
충격 후에 온 것은 보편 종교로서의 가톨릭에 대한 깊은 신뢰와 자부심이었죠.
저는 단지 이 항목 하나만으로도 '가톨릭은 독선적이다.'라는 말에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비주류의 의견이거나 지역 교리서는 아니냐구요?
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주도로 교황청이 연구하고 편찬한 것입니다.
즉, 모든 가톨릭 교리서의 중심에 있으며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 입장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반박 받지 않기 위한 거의 필사적이다 시피한 노력들이 곳곳에 녹아 있죠.)
게다가 애초에 가톨릭은 '이단'이라는 단어를
'세례 받은 후 거룩한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할 어떤 진리를 완강히 부정하거나 완고히 의심하는 것'
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089항 中)
즉, 가톨릭 신자에게만 국한된 단어라는 거죠.
타 종교는 그냥 타 종교고 불신은 그냥 불신이며, 무신론은 그냥 무신론, 불가지론은 그냥 불가지론입니다.
물론 그것을 죄(무신론의 경우)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가톨릭에서의 '죄'의 개념이 무엇인지 파악하신다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죄'를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을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 있죠.
'동성애는 용납할 수 없는 죄이나, 결코 배척해서는 안되며, 이성애자와 동등한 하느님의 자녀이다.'
(교황이 인준한 교리성성의 서한 내용 요약=가톨릭의 공식 입장)
놀라운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음은 무신론에 대한 항목입니다.
무신론
(중략)
2125
하느님의 존재를 배격하거나 거부한다는 면에서 무신론은 경신덕을 거스르는 죄이다.
이 죄에 대한 책임은 의향과 정황에 따라 상당히 덜어질 수 있다.
무신론이 생겨나고 확산되는 데는 믿는 이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믿는 이들이 “신앙 교육을 소홀히 하거나 교리를 잘못 제시하거나 종교, 윤리, 사회생활에서 결점을 드러내어,
하느님과 종교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
'걔가 무신론인건 니 책임이 크다! 니가 잘했으면 신자 됐을 것 아니냐!' 라는 건데 아주 그냥 쇼킹의 연속이죠.
(저 언급은 '특정 종교'를 정조준한 것 같은 것은 느낌적인 느낌이...)
이처럼 천주교는 수동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대단히 능동적인 종교이죠. 이는 '하느님이 주신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기만 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알아가도록 자유의지를 받았으며(1743항) 그에 대한 책임 또한 받았습니다.(1745항)
(그러니 '세월호 참사는 하느님의 뜻'따위의 말은 천주교 입장에서는 신성모독 수준의 개소리입니다.
아니, 신성모독입니다. 신부님께서 그처럼 화내시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을 향하는 길 역시 다양할 수 있음을 존중합니다. (심지어 불가지론 역시 하느님을 찾는 행위일 수 있다고 하죠. - 2128항)
천주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한 교리서 서문으로 이 긴 글을 마치겠습니다..
무엇보다 앞서는 '사랑'
25
이 교리서에 대한 소개를 마치면서 옛 로마 교리서가 밝힌 사목 원칙을 다시 환기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도가 일러 준 대로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교리와 그 교육은 모두 끝없는 ‘사랑’을 향해야 한다.
믿고, 바라고, 꼭 해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늘 우리 주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이가 그리스도인 완덕의 근원이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목적도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