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있는 곳은 도시 번화가와 흙밭인 시골이 공존하고 있는 뭔가 오묘한 곳이다. 시골이래봤자 도로변에서 멀찍이 떨어진 작은 동네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새벽 3시면 시골집 아침이 시작된다. 어젯밤 뜨다 잠든 손뜨개를 마저 하다가 쌀쌀한 공기에 커피물을 올린다. 호록호록 마시면서 티비에서 틀어주는 홈쇼핑 또는 아침드라마 재방송을 시청. 입이 심심해질 즈음엔 건넌방으로 가 과일(오렌지나 사과) 또는 지난 설에 들어 온 한과를 꺼내어 먹는다. 귀찮지 않으면 수수부꾸미를 해먹기도 한다. 그렇게 해가 뜨길 기다린다. 요즘은 아침 다섯시면 해가 뜬다. 부엌문을 열고 나가 멍멍이 사료를 채워주고 먹는 걸 가만 지켜보고 앉았다가 빨래를 걷는다. 차곡차곡 정리해놓고 아침을 준비한다. (중략) 오늘은 할머니와 둘이서 뒷산엘 다녀왔다. 쌓인 낙엽이 원체 많아서 발이 푹푹 빠졌다. 가시나무나 발에 치이는 나무 잔가지들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날아드는 꽃가루는 조금 견디기가 힘들다. 한걸음 멈추고 재채기하고 또 한걸음 내딛으며 재채기를 한다. 할머니는 참두릅과 지름(기름)나물을 뜯으셨다. 나는 뭔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도토리와 부러진 가지들을 주웠다. 파란 단풍과 붉은 단풍나무씨가 곳곳에 벌써 뿌리를 내려 쑥쑥 크고 있었다. 산을 오를 때 귀에 칡넝쿨을 잘라다 꽂으면 하루종일 뱀이 가까이 안 한다는 할머니 말씀을 들으며 산 곳곳을 쏠쏠히 구경했다.
아침 점심 저녁까지 준비하고 차리고 먹고 치우고 산에도 다녀오고 강아지 산책에 텃밭 관리까지 배우고 잔심부름 하고. 침대에 몸을 눕히니 이제야 온갖 피로가 몰려온다. 뿌듯한 피로라고 한다. 진짜 시골서 몇십년 동안 농사 짓고 사셨던 분들이 들으면 뭐 그까이것 일로 피로해하냐 고 코웃음치실지도 모르지먼. 운동부족 체력부족인 나는 죽겠다아! 그래도 개운한 기분. 오늘도 바지런히 살았다. 다른 이유보다도 점심 저녁때 나물 네가지 넣고 소불고기 넣고 장국 넣어 슥슥 비벼먹은 비빔밥 덕택에 이리도 기분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