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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는 충견' 망언, 친일작가 김완섭은 누구? | ||||
‘민비는 방중술의 대가’ 등 친일저작물로 수차례 처벌받은 대표적 친일파 | ||||
백범 김구 선생의 명예를 훼손한 친일작가가 기소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서울고검 정현태 검사는 27일 친일작가 김완섭씨를 백범 김구 선생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일선 지검에서 불기소 처분한 사건을 서울고검이 직접 기소하고 나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말 국회 과거사 진상 규명 공청회에서 김구 선생에 대해 "민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피한 조선 왕조의 충견"이라고 적은 문건을 방청객들에게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공소장에서 지적한 허위 사실은 크게 두가지이다. 우선 김구 선생이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살해한 쓰치다는 당시 조선인으로 위장한 일본 군인으로 밝혀졌는데도 이를 무시한 점과 또 김구 선생이 쓰치다를 처단한 뒤 관헌에 체포돼 사형 언도까지 받았다가 1919년에야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것임에도 곧장 도주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적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올해 3월 서울 남부지검에서 이 부분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그 내용이 김구 선생의 유족들을 모욕한 것은 인정됐지만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 검사는 "김구 선생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사실조회 결과와 백범일지 등 김구 선생과 관련된 내용을 검토한 결과 김씨의 발언 내용은 허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고 말했다. 김씨는 일제침략을 미화하고 일제강점하 피해자들을 폄하하는 내용의 책과 칼럼 을 펴내 수 차례 처벌을 받아 왔으며 지난해 2월에는 민비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번 기소건은 친일 청산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높아가고 있어 법원이 어떤 법적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친일파보다 더한 친일'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김완섭씨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지난 2003년 5월 20일 기사를 다시 올려 네티즌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민비는 방중술의 대가, 한국은 독도를 무단점유 한일시민단체, '친일파를 위한 변명'의 저자 김완섭 고소키로
이번 소송에는 소송대리인으로 한백합동법률사무소의 이건행, 이상익, 이충우 변호사가 참여하고, 원고단은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를 비롯한 한국의 5개 일본관련 시민단체와 일본 2개 시민단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및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고종황제 및 명성황후의 유족 등이 참여하고 있다. 소송의 핵심은 피고 김완섭이 저술활동을 통해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국권침탈의 범법행위를 정당화하여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일에 대한 것이며, 국가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옹호한 출판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피고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김완섭은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통해 본문에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하여 사실을 왜곡하여 저술함으로써 일본의 식민지통치과정에서 숱한 고통과 값없는 죽음을 강요당하였던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강제징용자 및 일본군 '위안부'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김완섭은 그의 책에서 ① 일본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종군위안부나 징용피해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이 마치 이전에는 굉장한 선진국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본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듯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부당한 주장이다. 그들이 겪은 고통과 비인간적인 처우는 충분히 비극적이긴 했지만 당시는 모든 사람들이 그만그만한 비극적인 삶을 영위한 시대였고, 게다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취급되는 전쟁기였다. 그런 시기에 전쟁터에까지 끌려가서 살아남았으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인 것이다. ② 3·1 운동만 보아도 국내 교과서에서는 당시 일본군의 진압을 과장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기 했지만 일본 경찰은 단지 만세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아무도 체포하지 않았으며, 폭동을 주도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훈방과 가벼운 벌금형으로 마무리했다. ③ 이처럼 일본이 먼저 전 세계에 전출하여 황인종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인들은 많은 혜택을 입고 있다. 그들은 일본사람과 한국인 중국인을 겉모습으로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도 일본인처럼 부유하고 친절하며 매너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대개 거칠고 매너가 좋지 않은데다 사기꾼도 많기 때문에 순진한 외국인들은 많은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④ 우리는 과거 1919년 3.1 독립운동에서 아무런 실익도 없는 자주독립을 선동한 사람들과 세계적으로 정세를 볼 때 독립은 아무 실익이 없으니 자중할 것을 호소한 이완용 백작 가운데 어느 쪽이 옳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⑤ 100년 전 한일합병을 반대하면서 자결하거나 의병을 일으켜 저항하다 죽어간 사람들은 지킬 가치가 없는 것을 위해 싸우다 개죽음을 한것이다. ⑥ 이같은 이완용의 호소로 인해 1919년 3.1운동은 6월초 군대에 의한 유혈진압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이다. ⑦ 한국정부는 편협한 역사 인식에 근거해 일본에 대해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하고 총리의 신사참배를 문제 삼는 등 반일책동을 계속하면서 양국의 문화교류를 방해하고 있다. ⑧ 조선 역사상 가장 뇌물을 좋아했던 임금이었던 고종은 모든 정부관직을 매매할 때 직접 돈을 받아 챙겼고 신하들이 인사차 방문할 때마다 가져오는 돈의 액수로 사람을 대했다고 하니, 조선판 전두환쯤 되는 인물이었다 하겠다. 혹은 전두환을 현대판 고종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지. ⑨ 우리는 왜곡된 교육으로 인해 흔히 을사조약과 한일합병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⑩ 한국 정부는 일본이 미군정 상태에서 아무런 주권이 없던 시절 독도를 무단 점거하여 아직까지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이웃나라가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에서 도둑질을 한 것이다. 이 후 국교수립을 위한 한일회담이 열렸을 때 한국 측에서는 이 같은 일본의 입장을 배려하고 일본인 학살과 재산 강탈 등에 대해서는 사죄나 최소한 유감표명이라도 해야 했으며, 우리를 조선왕조의 학정에서 해방시키고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해 문화 개화시켜 준 데 대해서 공식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해야만 했다. ⑪ 우리 선조들은 대동아전쟁에서 일본의 승리에 기뻐했으며 미국의 침략에 분개했다. 또한 많은 젊은이들이 애국심에 불타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지원했던 것이다. ⑫ 조선총독부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탄압한 것은 초기 10년뿐이며 그 이후 조선에서는 일본의 헌법이 그대로 적용되었으며 당연히 일본과 똑같은 수준의 출판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⑬ 수상이 국립묘지를 참배하겠다는데 시비를 거는 주변국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이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될 수 있는 일이다.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되어 있어서 안된다고 한다는 것인데, 그게 다른 나라가 보기에 전범이지 일본 입장에서는 모두 애국자들이니 도대체 말이 안되는 논리인 것이다. 2만명의 조선출신 일본군 전사자들에 대해서 한국정부는 위패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 또한 잘못된 일이다. 전사시점에서 일본인이었고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이므로 그 영혼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본의 권리다. ... 위패를 돌려달라는 유족들은 자기 조상이 일본에서 신으로 경배받고 있는 것이 뭐 그리 불쾌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라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나아가 2001년 7월경부터는 (주)다음커뮤니케이션 인터넷 컬럼방에 포재팬(http://colum.daum.net/forjapan)이라는 카페을 개설하여 '민비와 조선말기 친일파 애국자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선시대 고종의 왕비로서 일본인에게 살해당한 명성황후 민자영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고, 칼럼을 통해 민영환 등 한일합병 당시의 애국지사의 명예를 훼손하여 지난 2003년 2월 사자명예훼손죄로 벌금 700만원을 판결 받기까지 하였다. ① "이즈음 민비도 장안의 섹시 미남들을 불러다 들여 은밀히 동서고금의 온갖 방중술을 익힌 덕분에 고종을 밤마다 뽕가게 만들 수 있었다, 민비는 유랑생활 중 한층 업그레이드한 섹스테크닉으로 고종을 뽕가게 만들어 놓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라고 기술 ② 칼럼을 통해 '한일합병의 과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민영환은 상소로도 조약체결이 원점으로 되돌아가지 않자 유서로써 전국민에게 경고하면서 자결하였고 뒤이어 조병세, 전참판 홍만식 학부주사 이상철, 평양대 일등병 김봉학, 주영공사 이한응 등도 죽음으로써 일본에 항거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들이 과연 정치적인 이유로 자결한 것인지 다른 이유로 사망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라고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당시에 한일합병에 반대하면서 자결한 망 충정공 민영환의 명예를 훼손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완섭은 2002년 8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를 높이 평가하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하여 일본 극우파의 입장을 옹호했다. [관련기사] 박태견, '김완섭 망언' 파문, "과연 한국인인가", 프레시안(2003. 2. 5) 위와 같은 저술, 언론매체 활동 및 일본극우파 옹호발언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한편 이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거나 일본 극우단체들의 입장을 열렬히 옹호함으로써 한국의 독립운동자,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자, 고종황제 및 명성황후 등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원고들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서 한국과 일본의 원고인단은 상호 연대하여 한·일간의 불행하였던 과거의 역사를 올바르게 조명하고, 청소년과 미래의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의 교훈을 상기시킴으로써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아니하게 하기 위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역사바로세우기 활동의 일환으로 김완섭을 고소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원고단 명단] 1.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서중석, 이남순, 이수호 2.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김윤옥 이경숙 3.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 최봉태 4.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 대표 송현섭(법명 원행) 5.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장완익 이종진 6.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 두 리 7.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 군 자 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 순 덕 9.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 옥 련 1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 금 주 1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 필 기 12.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유족 김 인 환 13.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유족 이 윤 재 14.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유족 임 서 운 15.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유족 조 무 연 16.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유족 이 희 자 17. 고종황제 후손 이 석 : 고종황제 둘째아들 의친왕의 아들(43세손) 18. 명성황후 후손 민 병 호 : 명성황후 친가 종증손(5촌) 19. 명성황후 후손 민 병 덕 : 충정공 민영환의 손자 20. 명성황후 후손 민 선 기 : 의병대장 민종식의 손자 21. 일본 : 어린이와 교과서전국네트 21 대표 타와라요시후미 22. 일본 : 역사교육아시아네트워크재팬 대표 노히라 신사쿠 23. 일본 : 에히메 교과서 소송 소송대리인 변호사 테루오 이쿠타
참고 :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Civilian Movement for Correcting Japan-distorted Textbook | ||||
2003/11/22 [04:12]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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