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08. 01. 금요일
정치불패 비더슈탄트
0. 재보선을 주목하라
7.30 재보선이 끝났다. 야권의 참패였다. 15석 중 11석이 새누리당에게로 돌아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마저 지키지 못 했다. 새누리당 과반을 저지하겠다는 목표는 헛된 미몽이었다. 157석이 된 새누리당이 다시 과반을 뺏길 위기에 처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적어도 1년 8개월 내에는 그렇다.
이번 재보선은 주목할 점이 많았다. 배경도, 과정도, 결과도 그랬다. 이번 재보선을 놓고 주목해야 할 점, 짚어 보자.
7.30 재보선 결과. 새정치민주연합은 4석, 새누리당은 11석을 가져갔다.
1. 민주당의 무능을 주목하라
이번 재보선의 판은 야당에 유리하게 짜여 있었다. 15석 중 호남이 4석이었고, 영남은 2석밖에 되지 않았다. 그 2석도 영남 안에서도 야당의 지지기반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부산과 울산에 각각 한 석이었다. 다른 지역구의 현황도 야당에 불리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정치적 의제도 야당에 불리하다고 할 수 없었다. 세월호 정국은 새누리당의 수사권과 기소권 거부로 파행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심재철 의원의 문자 사건은 큰 사건으로 비화되기 충분했다. 정홍원 총리의 유임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정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증명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질 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야권은 싸여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판세가 공천 과정을 거치며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략공천을 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지역이 있으면 유리한 사람을 공천해서 승리를 얻어내야 한다. 이번 판은 충분히 그럴 능력도, 명분도 새정치민주연합에 주어져 있는 판이었다. 문제는, 사람을 간수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허동준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동작을 지역위원장이다. 당연히 자신이 공천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광주에 캠프까지 차리고 있었던 기동민을 그곳에 공천했다. 허동준도, 기동민도 원하지 않았던 선택이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기동민을 공천한다는 선택이 그런 선택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고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허동준은 지도부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어떤 방법으로도 '사람'을 붙잡지 못한 것이다. 붙잡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로만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바깥에 보이는 공식적 활동도 정치지만, 정치인에게는 그 공식적 활동을 위한 비공식적 활동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뭐 불법 자금을 돌리고, 법을 어기고, 공작을 꾸미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붙잡으라는 것이다. 허동준은 분명 자신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낄 것이다. 이걸 몰랐다면 더 큰 문제고, 알았다면 지도부는 허동준을 설득해야 했다. 기동민의 출마 기자회견에 허동준이 난입하기 전에, 허동준을 만나 설득했어야 한다. 무엇이 더 큰 뜻인지 말했어야 한다. 붙잡고 끝까지 마음을 얻어냈어야 한다. 그게 지도부가 '뒤에서' 했어야 하는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도부는 철저하게 무능했다.
이제는 좋게 해결되었기에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불미스러운 과정이 있었음은 사실이다.
민주당은 사람을 잡지 못 했다.
김한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모두 사의를 표했다. 이제 새로운 당대표를 뽑을 것이고, 큰 선거는 1년 8개월 뒤에 있는 총선이다. 새로 민주당의 지도부로 누가 뽑힐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공천 실패를 교훈으로 삼으라. 민주당의 무능을 주목하라. 민주당, 정치 아닌 정치를 주목하라. 거기에 승리의 깃발이 있다.
2. 텃밭을 주목하라
6월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와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의 선전이었다. 광주시장 강운태 후보의 선전도 눈에 띄었다. 각 당의 지도부가 선거 며칠을 남기고 ‘텃밭’이라 불리는 영남과 호남으로 각각 내려가는 일까지 있었다. 광주의 강운태 후보는 어차피 민주당에서 탈당한 사람이니, 사실 지난 지방선거의 '텃밭' 수비에 있어서는 새누리당이 더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새누리당은 수비에 성공했고.
이번 선거에서는 '텃밭' 수비에 위기가 왔던 건 민주당이었다. 다른 곳은 괜찮았지만, 순천ㆍ곡성 지역구가 문제였다.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는 정무수석에 홍보수석까지 한 친박계 거물인데다 정치인생 시작부터 호남에 올인했던 인물. 광주에서 30% 넘는 지지율을 얻은 돌풍까지 일으킨 적 있는 인물이었다. 거기에 ‘예산 폭탄’을 가져오겠다는 구미가 당기면서도 친박의 핵심 인사인 이정현이 말하면 현실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야당에서도 이정현의 공천 소식을 듣고 나서 분명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 것이다. 이정현은 드물게 호남에서 먹히는 여당 인사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호남에 맞는 슬로건이 있었어야 했고, 호남에 맞는 전략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런 것을 내놓지 못 했다. 아니, 애초에 호남에서 새누리당에 밀리는 상황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호남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호남에 먹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를 못 했다. 그 말은, 민주당이 이제까지 호남에 해주려고 노력했던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야 민심이 돌아오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순천 곡성 지역구,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어쨌든 소선거구제 도입 이래 최초의 보수정당 호남 지역구 의원이 탄생했다. 1년 8개월짜리 임기의 이정현은 그래서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정현이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잘 아는 바이다. 하지만 호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나와 봐야 민주당도 호남 소중한 줄을 알고, 호남도 민주당 소중한 줄을 안다. 지역 구도가 깨지려면 언젠가는 있어야 했던 일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1년 8개월짜리 재보선이라 다행일 뿐이다.
텃밭을 주목하라. 이제 텃밭이라고 무조건 안심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집권'하고 있던 수십 년간 민주당이 호남에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라. 그리고 상황을 역전시키라. 호남을 바탕으로 영남으로 진군하라. 본진을 빼앗기면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호남까지 신경 쓰면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호남을 지키라. 지역주의가 아니라 정책주의로 지키라. 그렇게 호남을 지키면 대한민국을 얻는다. 멀리 갈 생각 말라. 혁명은 바로 여기서 시작이다.
3. 박광온을 주목하라
트위터에서는 '박광온 열풍'이 돌았다. 'SNS로 효도라는 걸 해보자 (@snsrohyodo)'라는 계정(이 글을 보는 현재에는 계정이 없어져있을 가능성이 높다.)이 아버지를 홍보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뒤따라서 같은 지역구의 천호선 후보나, 해운대구의 윤준호 후보가 비슷한 계정을 열었지만 그만한 열풍을 일으키진 못 했다. 결국 호남을 제외하고는 박광온 후보 하나만 당선되었고, 천호선 후보는 사퇴, 윤준호 후보는 낙선했다.
박광온은 그 딸이 직접 언급했듯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애매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손학규가 떨어지고 김두관이 떨어졌지만 박광온은 붙었다. 물론 상대편인 임태희 후보의 말도 안 되는 공약도 역할을 어느 정도 했겠지만, 스스로를 '랜선 효녀'라 칭하는 이제는 당선자가 된 박광온의 딸이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듯하다. JTBC 등 여러 언론사에서 인터뷰까지 할 정도의 이슈였으니 말이다. 특히 박광온 후보의 지역구는 평균 연령이 31세라는 젊은 지역이니 영향력이 더 컸을 테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미없는 계정이 후보의 아들딸을 통해 등장할 것인가 하는 우려도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후보가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때 후보의 가족들이 나서 후보의 입이 되어준다면 정치인과 국민의 소통은 늘어날 것이다. 재미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리고 영향력도 크겠지만, 재미가 없으면 또 어떤가. 그 존재 자체가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는데. 선거판에 후보의 가족이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있던 일이지만, 지난 지방선거부터 이는 적극적이 되어갔고, 이번 선거부터는 SNS를 이용한 후보 가족의 지속적 선거 운동이 확산되었다.
다음 선거부터는 이러한 형태의 선거 운동이 큰 추세가 될 것이다. 지금보다는 더 다양한 형태의 계정이 운영될 것이고, 뭐 별 영향력 없을 이들도 있겠지만 또 큰 열풍을 불러일으킬 이들도 있을 것이다. 중간중간 문제 일으키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가슴 뛰지 않는가? 박광온을 주목하라. 이미 변해버린 선거판을 주목하라. 유세차와 선거 운동원의 수로 선거하는 정몽준이 아니라, 배낭 하나 매고 움직이는 박원순을 주목하라. 무엇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지를 주목하라. 시대는 그렇게, 바뀌고 있다.
4. 김종철을 주목하라
새누리당의 신승으로 끝났던 동작을 지역구를 보자. 나경원 38,111표, 노회찬 37,382표였다. 전체 유효표수가 7만 5천표를 넘는 이 지역구에서 1위와 2위의 차이는 929표였다. 여기서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얻은 표가 1,076표였다. 김종철 후보를 뽑은 표만 노회찬 후보를 뽑았어도 동작을의 당선자는 노회찬이었다.
동작을 선거의 결과. 나경원 후보의 신승이었다.
김종철 후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노동당을 이 건으로 비판할 생각도 없다. 지금의 통합진보당 세력과 정의당보다 훨씬 먼저 결별했었던 노동당을 지지하고 사퇴한 통합진보당 유선희 후보에게 의문은 있지만 비판은 없다. 다만, 일말의 가능성을 논할 뿐이다.
민주당은 '종북' 딱지에 민감하다. 그 딱지가 붙을까봐 노동당과의 단일화는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 했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종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다 부르고 다니긴 하더만, 뭐, 민주당의 선택은 어쨌든 그랬다.
노동당은 '개량주의' 딱지에 민감하다. 바깥사람은 아무도 그 딱지에 신경 쓰지 않는데, 그 내부에서는 단일화라느니, 통합이라느니 하는 이야기에 대단히 민감한 듯하다. (나도 내부인은 아닌지라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사실 대중성을 포기하고 어떤 정당이 살아남기를 기대하고 있겠냐만은, 어쨌든 그들은 그렇다.
사실 나는 어느 쪽에게도 서로를 끌어안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선거 때에는 어느 정도 연대의 형식은 있을 수 있겠지만, 별로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평시에는 더더욱 그렇고. 그리고 사실 서로가 완전히 같은 세력이 되어버리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방향도 아니다.
내가 김종철을 주목하라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친일, 친독재, 부패세력 (즉, 새누리당)을 몰아내는 것이 '우리'라 총칭할 수 있는 야권 전체의 일차적 목표이다. (아! 이럴 때는 선진통일당이 없어져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목표가 이루어지고 나면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민주당도, 안철수도, 정의당도, 노동당도 그렇다. (여기서 통합진보당을 진보의 축에 끼워주지 않는 것은 이해하길 바란다. 진보하지 않는 보수도 없어져야 하지만, 진보하지 않는 진보도 없어져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분열은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나는 김종철을 보며 말한다.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아주 잠깐은 손을 잡아야 한다. 손을 잡아 물리쳐야 한다. 노동당은 이번 선거를 보며 나경원의 승리에 기분이 좋았을까? 아니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손을 잡을 필요성이 있음을 절감했으리라 믿는다. 손을 잡다 보면 어쨌든 후보는 한 명이어야 하고, 그렇다면 노동당도, 정의당도 민주당에 비해 분명 손해를 볼 것이다. 어쩌면 민주당도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원하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모두 조금은 양보하기로 하자. 노회찬 후보가 스스로의 사퇴를 언급하며 했던 말을 여기서 인용하자. "선민후당(先民後黨). 국민이 먼저이고 당은 나중입니다."
5. 김득중을 주목하라
이번 선거, 평택에는 아주 특별한 후보가 하나 출마했다. 대한민국에는 2천5백만의 노동자가 있지만 노동자 국회의원은 하나도 없다. 바로 그 '노동자 국회의원'이 되겠다던 후보, 김득중 후보다.
김득중은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이 모두 지지한 진보단일후보다. 그가 가진 노동자 후보라는 특수성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내가 그를 주목하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가 ‘진보단일후보’였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세 정당이 지지한 후보이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는 점 때문이다.
진보단일후보 김득중은 그 자체로 진보진영의 연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노회찬과 김종철은 손을 잡지 못했지만, 김득중으로 모인 세 개의 진보정당은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게 김득중이 가진 상징성이고, 김득중이 가진 힘이었다. 득표율 5%는 진보정당의 연대가 가져온 힘이었다.
하지만 무소속 김득중은 그 자체로 진보진영 한계의 상징이었다. 김득중이 정의당 후보였다면 어땠을까. 김득중이 통합진보당 후보였다면 어땠을까. 김득중이 노동당 후보였다면 어땠을까. 과연 다른 정당이 지금처럼 선뜻 김득중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었을까.
무소속 김득중 후보의 상징은 진보진영이 어느 한 정당을 가지고는 연대할 수 없는 진보정당 서로 간 악감정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손을 잡기에는 상처가 너무 많았던 역사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노동자 후보를 안을 수 있는 진정한 노동 중심 진보정당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아픈 현실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땀이 정의다’라고 외치는 정의당도 그렇고, 노동을 최선의 기치로 내세운 노동당도 그런지 모른다. 노동보다 민족문제를 앞세우는 통합진보당은 더더욱 그렇다.
김득중을 주목하라. 진보정당의 현실은 김득중에게 있다. 진보정당의 가능성도, 한계도 모두 김득중이 안고 있다.
진보단일 노동자후보 김득중. 기호 5번 속 작게 쓰여있는 '무소속' 글자가 아프게 울린다.
6. 거물들을 주목하라
이번 재보선은 거물들이 꽤나 많이 출연한 선거였다. 새누리당에는 나경원과 이정현, 임태희가 출마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김두관과 손학규를 내보냈다. 정의당은 천호선과 노회찬, 이정미를 내세운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이 거물들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 야권에서 그랬다.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의 거물들은 모두 사퇴 혹은 낙선했다. 거물과 거물이 맞붙은 선거구에서는 어느 한 쪽이 분명 패배해야 하는 것이지만, 거물과 그리 유명하지 않은 후보가 맞붙은 선거구에서 거물들의 패배는 그 상처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거물들의 패배가 아니다. 거물들을 어디로 돌리느냐, 하는 전략의 문제다. 특히 총선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많은 곳을 다니며 지원유세를 해야 하는 거물들을 비례대표에 어떻게 넣고 어디로 지원을 보내느냐 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라던가. 새누리당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민주당은 지피는 물론이고 지기도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문재인은 부산으로 가야 하고, 손학규는 경기도로 가야 한다. 김두관은 경남으로 가야 하고, 정동영은 호남으로 가야 한다. 그게 거물을 돌리는 전략이다. 여기서 언급한 것은 지역뿐이지만, 사실 더 구체적으로 나눌 수도 있다. 젊은이에겐 누구, 노인에겐 누구,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더 확실한 전략이 필요하다. 나 같은 사람이 봐도 눈에 띄고, 거기에 비판할 지점까지 숭숭 뚫려있는 그런 전략 말고, 더 세부적이고 전체적으로는 큰 그림을 이루는 전략이 필요하다. 오바마의 선거를 보라. 선거 홍보 이메일도 이민자에게는 이민자 정책, 소수인종에게는 소수인종 정책, 나눠서 보내는 오바마를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부적인 전략을 짜기 위한 열성적인 소규모 자원봉사 그룹, 그것을 확보하기에는 여당보다는 야당이 훨씬 유리하다. 유리한 점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거물들을 주목하라. 거물이 어디를 가야 하는지를 주목하라. 거기에 선거의 승패가 있다. 거기에 민주당의 전략이 있고, 민주당의 미래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거물' 손학규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저녁이 있는 삶!' 한 세대가 그렇게 진다.
7. 정의당을 주목하라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졌다. 천호선과 이정미는 각각 박광온 후보와 손학규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지만 손학규 후보는 낙선했고, 기동민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한 노회찬 후보는 나경원 후보에게 졌다. 남아있던 다른 후보들은 하나도 당선되지 못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정의당을 주목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6월에 있었던 지방선거의 참패에 이번 선거의 패배까지 겹쳐 정의당은 위기에 처했다. 사실 언론이 말하는 정도의 '존폐 위기'까지 논하기는 좀 성급하다. 정의당에는 아직 다섯 명의 의원이 있다.
여전히 정의당은 야권연대의 가장 현실적인 파트너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다른 진보정당의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정당이다. 선거가 끝나고 아직 개표가 시작되기 전, 노회찬에게 손석희가 물었다. "이번에 패배한다면 그것이 야권연대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자 노회찬은 대답했다. "오히려 이번에 패배한다면 야권연대를 더 빨리 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가 될 것이다."라고. (실제로 표차보다 무효표가 더 많았다. 이건 투표용지 인쇄 이전에 야권연대를 해야 하는 근거의 하나가 되어줄 수 있다.)
야권연대는 필요하다. 그 필요성은 위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 시발점은 어디인가. 나는 그것이 정의당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민심이 등을 돌린 정당도 아니고, 자신만의 독단에 빠진 정당도 아니다. 민주당과 손을 잡을 준비가 된,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의 지지기반을 확실하게 잡고 있는 정당은 정의당밖에는 없다.
패배했지만, 정의당을 주목하라. 다시 일어서려 하는 정의당을 주목하라. 거기에 야권연대의 시작이 있고, 새누리당을 몰아내는 공동 목표 성취의 시발점이 있다. 정의당과 손을 잡는 것부터, 야권의 연대는 다시 시작이다. 야권의 승리는 다시 시작이다. 다시 일어선 정의당과, 손을 잡자. 그리고 웬만하면, 쪼끔 일찍 잡기로 하자. 시작부터 쫌 잘 같이 굴러가보기로 하자.
31일 정의당 지도부의 굳은 표정. 하지만, 아직 여기에 희망이 있다.
(왼쪽부터 이정미 부대표, 박원석 의원, 심상정 원내대표, 천호선 대표, 정진후 의원)
8. 여전히, 안철수를 주목하라
안철수는 몰락하는 중이다. 지난 대선 문재인 파와 안철수 파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잡음이 심하게 일었고, 민주당과의 합당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다. 점점 안철수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로 들어간 뒤 있었던 두 번의 선거에서 패배하며 더더욱 그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안철수는 주목해야 할 정치인이다.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그가 발간했을 때를 상기해 보라. 그의 책은 서점 매대에서 사라져 당장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팔렸다. 그런 열풍을 일으켰던 인물이었다. 그는 아주 단기간에 거물로 성장한 정치인이다. 젊은이의 열광적 지지를 등에 업고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다. 그 열풍이 이제는 점차 식어들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7.30 재보선에 패배한 안철수 대표는 사의를 표했다. 이제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 백몇십명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다. 그는 애초에 지도부에 맞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정치에 입문했던 때를 기억해 보라. 그가 가장 먼저 발굴한, 박원순 시장을 기억해 보라. 박원순이 만든 서울의 모습을 보라. 나는 그래서, 여전히 안철수를 놓을 수 없다.
안철수가 지도부에 있으면서, 혹은 그 이전에도 분명 많은 것을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를 온전히 지지해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전히 안철수에게 희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철수를 주목하라. 안철수가 주목하는 사람을 주목하라. 거기에, 다시 새로운 박원순이 서 있을 것이다. 박원순의 서울시 구상을 듣고 단번에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던 안철수를, 주목하라. 문재인의 마지막 유세에 나와 목도리를 둘러주던 안철수를, 주목하라.
김한길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의 두 대표는 오늘 (31일) 사퇴했다.
9. 지역을 주목하라
야권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 향방을 묻는다면 나는 바로 '지역'이라 말하겠다. 골목이라 말하겠다. 동네라 말하겠다. 정치인이 가야 할 곳은 바로 그곳이다. 작은 지역에서부터 정치는 시작된다.
지금은 진보신당과 합당해 노동당이 된 사회당에서 이런 일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사회당이 규모가 작았고, 그 활동 범위 또한 한정되어 있어서 크게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야권이 손을 잡으면 할 수 있다. 골목으로 갈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은 SNS를 통한 시민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것은 그가 골목을 누비는 방식이다. 다른 지역의 일꾼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SNS로 누비든, 직접 발로 뛰든, 지역의 일꾼은 지역으로 가야 한다. 골목으로 가야 한다.
한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일꾼의 등장이 전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지역의 거점으로부터 지지를 쌓아나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출발하는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시점이다. 지역을 주목하라. 그곳으로부터 출발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을 주목하라.
사회당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 크게, 더 좁은 골목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안철수에 대한 부분은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박원순 시장을 발굴 했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안철수를 주목해야할 이유가 고작 목도리 걸어 준것이란 부분에서 씁쓸합니다.
그리고 박원순시장에게 양보했고 그 박시장이 서울시정을 잘하고 있는것이 안철수의 양보만은 아니잖아요.
박시장은 민주당 박영선의원과 경선을 거치고 야권 단일후보가 되신분이고 서울시정을 잘 펼치는건 박시장
개인의 철학과 아이디어지요.